철저한 고증과 유려한 연출. '믿고 보는 시대극 맛집'이라는 타이틀로 남다른 품격을 자랑하는 BBC 드라마가 또 하나의 명품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현지 평론가들의 후한 점수에 이어 500만 명 이상의 시청자 수를 기록한 3부작 드라마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이다. 미드/영드의 팬이라면 아마도 국내 제목인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보단 원제 <The Pursuit of Love>가 익숙할 것이다. <The Pursuit of Love>를 직역하면 '사랑의 추구' 정도가 될 텐데. 이렇듯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사랑 말고 또 뭐가 있는데?"라 물으며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 여성, 린다(릴리 제임스)가 걷는 사랑의 길을 쫓아가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납작한 설명만으론 이 드라마의 미덕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이 시청자와 평론가의 마음을 끌어당긴 매력들을 짚어보며 이 드라마의 껍질을 벗겨보자.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오직 왓챠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이 드라마, 대체 어떤 장르를 갖다 붙여야 할까. 로맨틱 코미디, 로맨스, 시대극, 버디(Buddy), 역사, 드라마.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이 모두에 속해 있으면서도, 어떤 한 가지 장르에 속박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드라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이념적 갈등을 그리면서도 사랑이란 주제를 탁자 위에 올리고.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로맨스가 아닌 우정과 인생에 대해 논하는. 쉽사리 한 가지 맛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매력적인 드라마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이란 제목만 놓고 보면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그랬듯, 한 명의 주인공을 쇼의 중심에 세워 그의 성장을 원동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 같지만.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는 린다만이 이야기가 아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린다 그리고 페니(에밀리 비첨)가 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이자,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반대 위치에 서 있는 극과 극의 인물이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친구로 지낼 수 있었고. 드라마는 린다와 페니의 불균형을 끊임없이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드라마의 오프닝 시점은 1941년. 만삭의 임산부인 린다가 누워있는 침대가 건물 바닥으로 떨어지고, 먼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린다 앞에 페니가 나타난다. 이 둘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41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14년 사이 두 사람에게 벌어진, 서로 다른 일들을 하나씩 짚어 나간다.


사랑밖에 난 몰라, 린다

"사랑 말고 또 뭐가 남는데?" 린다의 인생 목표는 간결하다. 사랑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남자와 사랑에 대한 욕망을 부풀린다. 하루라도 빨리 운명의 상대를 만나 아름답고도 답답한 시골 동네를 '탈출'하기를 꿈꾼다. 여성에게 교육은 사치요, 무언가를 저돌적으로 해나가기보단 제 뜻대로 순응하길 바라는 상류층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린다는, 그 뜻과는 정반대의 욕망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를 '영국 남성다움의 기준'으로 삼으면서도 혐오와 폭력을 일삼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 린다는 첫눈에 제 마음을 뒤흔든 토니(프레디 폭스)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물론, 첫 번째 결혼 생활이 순탄했다면 이 드라마의 제목이 <The Pursuit of Love>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바보 같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고 과감했던 린다는 육체와 마음을 뜨거운 불구덩이에 던져 '진짜 사랑'의 감각을 찾아 헤맨다.

세상엔 사랑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페니

페니를 린다와 정반대 꼭짓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성향과 성격은 물론이요. 같은 집안 사람임에도 가정 환경 마저 다르다. 페니는 린다와 달리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현명하고 지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온 페니는 매사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이렇게만 보자면 사랑에 있어서도 페니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인물일 것 같으나, 사랑 앞에선 안정을 택한다. 물론 이는 시대의 억압이 스며든 탓이다. 아무리 교육 수준이 높다 한들, 결국 한 여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누군가와의 결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니까. 더욱이 어린 시절 사랑과 자유를 찾아 나서겠다며 자신을 보모에게 버린 제 엄마를 떠올리며. 린다는 욕망을 좇는 '도망자'가 되기보단 머무르는 사람이 되기를 택한다. 결국 린다의 방황을 뒤치다꺼리하는 건 안정을 택한 페니의 몫이 되었다. 사랑에 실패할 때마다 린다를 구원해내고, 때론 린다에게서 자신을 내팽개친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린다와 이야기를 나눈 지 30분 만에 그녀를 또다시 용서하고 말았다"다는 페니는 늘 린다 곁을 지킨다.


페니의 눈을 통해 보는 린다의 삶

페니와 린다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건 이 드라마가 두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앞서 언급한 린다와 페니의 다름을 그저 병렬하고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페니를 내레이터 자리에 앉히며 서사의 입체성을 더한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페니의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린다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에밀리 모티머 감독이 린다가 아닌 페니의 시선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페니는 우리 모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욕망에 솔직하기보다는 머뭇거림이 앞서는 삶에 익숙한 우리들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페니의 입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국 보편적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린다의 삶은 시청자들에게 답답함과 부러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안기며 린다와 페니의 마음을 모두 이해시킨다. 페니에게 숨겨진 욕망, 린다에게 숨겨진 진심을 발견하게 하는 페니의 내레이션에 귀 기울이며 드라마를 시청해보자.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이름을 소환하는

그 어떤 요소일지라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것은 없을 테지만, 이 드라마가 만장일치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있다면 단연 시각적 쾌감일 것이다.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 많은 평론가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이름을 올리며,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이 웨스 앤더슨 세계관과 똑 닮은 컬러 팔레트(Palette)를 연상시킨다는 극찬을 보냈다. 색상 변태(!)라고도 불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장면 장면마다 한 폭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색감을 뽐낸다. 연출적인 완성도는 미학적인 즐거움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프닝부터 검색 욕구를 건드리는 모던팝 음악, 시대적 분위기를 실제처럼 전하기 위해 중간중간 삽입한 흑백 다큐멘터리 등 영리하고 독특한 연출로 러닝타임 내내 오감을 쥐고 흔든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이 작정하고 공을 들인 요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두둑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밀리 비첨 그리고 릴리 제임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배우 릴리 제임스와 에밀리 비첨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순수하다 못해 새하얗고, 밝다 못해 눈부신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이미 도가 튼 릴리 제임스는 이번에도 주특기를 살려 극의 화려함을 도맡는다. 물론 그 화려함은 배우 에밀리 비첨이 있었기에 더욱 도드라졌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린다를 연기하는 릴리 제임스의 종잡을 수 없는 얼굴을 포착하는 재미가 큰 작품이지만, 결국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검은 화면에 떠오르는 얼굴은 페니를 연기한 에밀리 비첨이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린다가 쏟아내는 인물이라면, 페니는 흡수하는 인물이다. 표현해야 할 감정은 린다보다 많았지만, 조금이라도 과한 지점이 생겨선 안 되는 캐릭터였는데. 이 지점을 완벽하게 알아차린 에밀리 비첨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감정을 속으로 집어넣으며 담백하게 극의 균형을 맞췄다. 이미 <리틀 조>를 통해 그녀의 내공을 발견한 이들도 많겠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그 내공의 두께가 얼마나 두터운지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조연 배우들의 앙상블에 있다. 린다와 페니를 둘러싼 인물들 속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고, 이들의 훌륭한 연기는 극의 풍부함을 더한다. 특히 곳곳에 유쾌한 포인트를 흩뿌린 배우 앤드류 스콧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킬링 포인트'를 여럿 탄생시키니. 앤드류 스콧의 몸짓 하나하나에 주목해봐도 좋겠다.


낸시 밋포드의 소설 '사랑의 추구(The Pursuit of Love)'를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각색하는 데 성공한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린다와 페니가 번갈아 써 내려간 우정 일기이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종착지에는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두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두 여성의 삶을 차근차근 조명한다. 여성의 욕망과 자유가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 낭만을 찾아 떠나는 린다의 삶과 그녀를 바라보는 페니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시대로 시청자를 초대한다. 단 3화 분량, 3시간만 투자한다면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드라마의 미덕 중 하나.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은 오직 왓챠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