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판(Director’s Cut), 확장판(Extended Cut), 최종판(Final Cut). 굳이 따지자면 뜻이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모두 어떤 식으로든 감독의 본래 의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편집된 판본을 말한다. 본편과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재편집본을 만날 수 있는 왓챠 작품을 소개한다.


미드소마 감독판

스웨덴에서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열리는 하지제(夏至祭), 미드소마(Midsommar)에 초대된 대니(플로렌스 퓨). 끔찍하게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뒤로하고, 백야가 일던 여름 대니는 친구들과 함께 호르가 마을로 떠난다. 축제가 시작되자 기괴한 의식을 아무렇지 않은 듯 벌이는 광신도 집단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공포는 서서히 극으로 치닫는다. 첫 장편 <유전>으로 오컬트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아리 애스터 감독은 그 명맥을 이어갔다. 언뜻 힐링 영화를 방불케 하는 <미드소마>의 전원 풍경은 암흑 속의 지옥을 그렸던 전작과 상반되지만, 그 섬뜩함은 같거나 더하다. 애스터는 4년에 걸쳐 야심 차게 <미드소마>를 준비했고 초기 편집본의 러닝 타임은 4시간에 달했다. 감독은 본편에 23분이 추가된 <미드소마 감독판>으로 아쉬움을 덜 수 있었는데. 크리스티안(잭 레이너)과 대니의 갈등의 감정선을 더 세세하게 쪼개 보여주었고, 대니의 운명을 암시하는 절벽 자살 의식 전후 장면 등을 담았다. 남자친구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대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이한 숲속 공동체에 동화되어 끝내 웃음을 보인다. 이 웃음의 의미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지 못했다면, 개연성을 보완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납득시키는 감독판을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윈드 리버: 감독판

와이오밍주 윈드리버 원주민 보호구역. 야생동물 헌터 코리(제레미 레너)는 설원을 정찰하던 중, 맨발을 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이 마을에 도착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단서는 눈에 점점 파묻히고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코리가, 3년 전 윈드리버에서 벌어진 비극과 이번 사건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공조하며 둘은 진실을 밝혀나간다. 개봉 당시 <윈드 리버>의 국내 배급사는 임의로 특정 장면을 덜어내 비판을 받아야 했다. 40초가량의 삭제분은 피해자 나탈리(켈시 초)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배급사 측은 ‘집요함이 불편했다’는 이유로 제작사를 직접 설득해 편집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개연성을 해쳤다는 반응이다. 개봉 일주일 후 내놓은 <윈드 리버: 감독판>은 극장판과 러닝 타임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앞서 언급한 장면과 더불어 몇몇 장면이 추가됐는데. 가장 큰 차이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감독판의 마지막 장면은 본편에 없었던 문구를 포함한다. ‘실종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들의 실종 신고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실종됐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문구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작품을 통해 미국 사회가 망가트린 원주민 커뮤니티와, 열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이들의 의지를 조명하고 관심을 촉구했다. 이 메시지는 감독판을 봐야만 더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인남(황정민)은 마지막 청부살인 임무를 끝내고 은퇴하려 했다. 하지만 하필 그 마지막 임무의 타깃은 야쿠자 레이(이정재)의 형이었다. 복수심을 불태우는 일명 인간 백정, 레이는 형을 죽인 인남을 바짝 추격하고. 인남은 뜻밖의 조력자 유이(박정민)의 도움을 받아 달아난다. 한국과 일본, 태국을 넘나들며 주인공들이 벌이는 뙤약볕 아래의 육탄전은 오락적 쾌감을 선사했고. 지난해 여름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6만 관객을 기록하며 팬데믹 이후 최고 흥행작이 됐다.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을 장르로 내건 이 영화의 강점은 역시 그 타이틀에 걸맞은 강렬한 액션과, 이를 현란하면서도 세련되게 담아낸 홍경표 촬영감독의 앵글. 영화는 흥행에 힘입어 본편 개봉 약 세 달 후 액션 시퀀스가 돋보이는 확장 버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을 내놓았다. 단 6분 14초 분량의 미공개 컷이 더해져 본편에서는 15세 관람가였던 시청 등급은 청불로 바뀌었는데. 역시 타격감을 한 겹 더 얻은 액션 덕분이다. 이외에도 인남과, 전 연인의 딸 유민(박소이)의 관계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몇몇 장면이 추가되어 서사의 빈틈도 메웠다.


미스터 노바디: 감독판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그 말을 안 했더라면? <미스터 노바디>는 이런 가정에서 시작된다. 죽음을 앞둔 노인 니모(자레드 레토)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인생의 첫 번째 선택 순간을 떠올린다. 이혼한 부모 중 어느 가정에 살 것인지에 대한 9살 니모의 결정을 시작으로, 그는 각기 다른 아홉 가지 인생을 살게 된다.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길이 얽힌 니모의 시공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보는 데 벅찰 수 있지만, 끝에서 “모든 길이 다 올바른 길”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는 <미스터 노바디>는 결국 삶의 모든 순간을 응원하는 이야기다. 본편보다 17분 긴 감독판에는 니모가 가장 사랑했던 안나(다이앤 크루거)와 관련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장면 등이 추가됐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때는 1979년. 연기 실력은 물론이고, 일종의 반항심에서 비롯된 급진적 성향, 그리고 타깃과 접촉한 경험까지 있는 영국인 배우. 스파이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찰리(플로렌스 퓨)는 이스라엘 정보국의 눈에 들어 비밀 프로젝트에 연루된다. 주연 배우 섭외까지 마친 이들은 이제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을 잡기 위해 NG가 용납되지 않는 연극을 시작한다. <리틀 드러머 걸>은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된 박찬욱 감독의 첫 TV 시리즈다. 이후 왓챠에서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공개했는데. 감독에 따르면 감독판은 컬러, 음향디자인부터 방송판과 다른 부분이 있으며, 미공개 컷도 포함됐다. 일단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였던 첫 에피소드의 첫 장면, 칼릴이 폭탄을 제조하는 장면이 방송판엔 없었다. 같은 에피소드에 이스라엘 요원 마틴(마이클 섀넌)이 칼릴의 형제 둘을 죽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오랫동안 일에 집중해온 마틴이 오히려 생명 같은 가치에는 무감각해졌다는 걸 드러내는 이 장면도 본편엔 없었다고. 편집이 같더라도 어떤 테이크를 최종본에 썼는지도 다르다. 이미 종영된 지금 시점에서 애초에 감독판으로 이 시리즈를 봤거나 볼 이들이 더 많겠지만,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이 박찬욱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구성됐다는 걸 알고 보면, 한 장면 한 장면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겠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