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합천에 갈 일이 잦았다. 여름 방학이라서, 명절이라서, 고향 어르신 중 세상을 떠난 분이 계셔서 장례를 치르러… 잊을 만 하면 어김없이 합천에 갈 일이 생겼고, 아직 입시 준비를 할 만큼 바쁘지 않았던 나는 1+1 상품처럼 아버지 옆에 딸려 합천에 가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전형적인 도시 아이였던 나는 경이로움과 불편함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느끼곤 했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합천의 밤은 하늘 가득 별들이 무서울 만큼 선명하게 보였고, 큰집 뒷산에 빽빽하게 심긴 대나무의 숲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파도처럼 소리를 냈다. 집집마다 온돌에 불을 떼기 위해 장작들을 아궁이에 넣고 잔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뒤적거리고 있자면, 마당 가득 나무 타는 향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자연이 일군 경이로움에 취할까 하면 불편함도 찾아왔다. 길 한복판에 소가 똥을 싸고 지나간 흔적이 떡하니 있고, 개다리소반에 차린 밥상을 파리들과 겸상해야 하는 환경은 도시 아이였던 내겐 봐도 봐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공부는 잘 하냐, 부모님은 요새 안 싸우시냐 묻는 어른들의 질문들은 어딘가 모르게 선을 넘어오는 것 같았고, 어린 나는 반가움과 친근함을 과하게 표하느라 그 선을 자주 넘나드는 친족들이 불편했다.

합천의 친족들도 그런 내가 아주 조금은 괘씸했을 거다. 서울 화장실은 깔끔하고 좋은데 여기는 화장실이 비위생적이라며 투덜대고, 기껏 상다리가 부러져라 밥상을 차려줬는데 입맛이 안 맞는다며 젓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깨작하는 모양새가 마냥 예쁘게만 보이진 않았겠지. 먹는 거로 호작질(‘손장난’의 영남 방언) 하면 복 날아간다는 핀잔에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고, 툭하면 아버지에게 가서 우리 서울 언제 가냐고 물어 대는 나를 보며 다들 생각했으리라. 내 조카, 내 사촌동생, 내 조카손자라서 예쁘게 봐주고 챙기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 사람이라 아끼기는 하지만, 그래도 쟤는 확실히 여기 사람은 못 되겠구나. 되도 않은 깔끔을 떠는 걸 보면 영락없이 서울사람이구나. 마치, 내가 합천이 경이로우면서도 끝내 조금은 불편했던 것처럼.

한국영화 102년 역사 중 두 번째로 긴 제목을 지닌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을 리메이크한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보다가, 나는 경이로움과 불편함이 공존하던 나의 합천 방문을 떠올렸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페이닥터로 일하던 치과에서 잘린 치과의사 혜진(신민아)은 홧김에 강원도 바닷가 어디쯤으로 설정된 가상의 지역 ‘청호시 공진동’에 자리를 잡는다. 마침 치과 커뮤니티에 ‘원장 들이받은 이상한 애’라고 소문이 쫙 나서 취업도 안 되는 자신의 사정이, 변변한 치과가 없어서 이가 아프면 차를 타고 대처로 나가야 하는 공진동 주민들의 사정과도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자라 서울에서 학교를 나오고 일하고 생활했던 혜진과, 소금기 가득한 바다를 터전 삼아 오징어를 손질하고 회를 썰며 살아온 공진동 주민들 사이엔 쉽게 넘지 못할 문화의 차이가 있다. 혜진은 맨손으로 턱턱 수육을 집어 김치에 돌돌 말아 입안에 넣어주려는 공진동 어르신들의 위생관념이 의심스럽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서로를 알고 지내며 한 마디씩 참견을 거들고 너나들이하는 분위기도 적응이 어렵다. 공진동 주민들도 자기 잘난 척 자기들을 우습게 보는 서울 깍쟁이 혜진이 쉽지 않고, 크롭탑에 레깅스 차림으로 조깅을 하는 혜진을 보고 ‘배는 맨살을 이렇게 내놓고 아랫도리는 속옷바람인 채로 뛰어다니는’ 망측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살아온 세계가 다르니, 일단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하고 보는 것이다.

그런 두 세계 사이를 이어주고 메워내는 건, 원작이 그랬던 것처럼 ‘홍반장’ 두식(김선호)의 몫이다. 서울에서 공부했지만 모종의 일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와 마을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홍반장’으로 살고 있는 두식은, 동네 어른들에게는 ‘저건 그냥 운동복이다. 요새 다들 저렇게 입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사람이 예민해져서 그렇다’라고 혜진의 입장을 설명하고, 혜진에게는 ‘서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반상회도 나오고 해야 치과에 손님도 올 거 아니냐’고 공진동의 질서를 배려하라 귀띔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품은 불편함 대신 좋은 점에만 집중할 수 있게, 길거리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초등학생이 이가 빠진 걸 보고는 주저없이 달려와 응급치료를 해준 혜진의 마음과, 그런 혜진에게 보답하겠다며 솜씨 좋게 미역국을 한 대접 끓여서 대접한 화정(이봉련)의 마음 같은, 서로의 좋은 점들만 곱씹으며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혜진이 완전히 공진동 사람이 되는 일도, 공진동 사람들이 혜진을 온전히 자기 동네 사람으로 생각하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더라도 끝까지 바뀌지 않는 부분은 늘 존재할 테니까. 혜진의 어떤 면들은 끝내 서울사람인 채로 남을 테고, 마을 사람들도 혜진을 ‘서울에서 온 치과 선생’으로 생각할 테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이해하고 적응할 시간을 허락해준다면, 보다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우리는 다른 두 세계의 충돌이 야기하는 불편함을 잠시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여전히 불편하더라도, 서로에게 발견한 경이로운 면들의 힘으로 그 불편함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치 내가 늘 투덜투덜대면서도 막상 합천에 도착하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경이를 다시 떠올리는 것처럼.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