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부터는 복작거리는 가족 모임이 확연히 줄긴 했지만, 그래도 추석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마음은 모든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을 만날 명절이 오면 근황 토크에서 잔소리로 이어지는 루트가 두려운 사람도 있을 터. 현실 못지않은 잔소리, 눈칫밥으로 미리 멘탈을 단련시켜줄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시바 베이비>

감독 엠마 셀리그만|출연 레이첼 세노트, 몰리 고든|15세 관람가|77분

'시바'란 사망한 친족을 기리는 유대교의 장례문화를 이른다. 주인공 대니엘(레이첼 세넷)은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누군지도 모른 채 시바에 참석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때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거리를 두는 마야, 장례식에 오기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슈가대디(젊은 여성에게 돈을 주며 만나는 중년 남성) 맥스를 바로 이 시바에서 마주친다. 주변 어르신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잔소리, 당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동갑내기 친구, 서로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비밀스러운 관계의 남자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니엘은 맥스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시바 베이비>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대니엘과 주변인들의 눈치싸움은 웃기지만, 그렇다고 폭소하기 어렵다. '원조교제'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만 뺀다면, 이상하리만큼 젊은이들에게 과한 관심을 주는 가족 모임은 우리도 명절마다 경험하는 시간이니까. 특히 동갑내기인 마야와 대니엘을 두고 두 엄마가 벌이는 기싸움은 보는 사람까지 진절머리 날 지경이다. 이런 과한 관심을 느껴봤다면 영화가 어떻게 이 상황을 마무리할지, 대니엘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 한 번 지켜보시라.


<엑시트>

감독 이상근|출연 조정석, 윤아|12세 관람가|103분

클라이밍 하나는 기막히게 잘하는 용남(조정석), 그렇지만 몇 년째 취업도 못해 눈칫밥만 먹는 백수다. 대학생 시절 산악부의 에이스로 날렸지만 취업 준비생에겐 그런 경험도 무용지물. 용남은 엄마 현옥의 칠순잔치에 갔다가 자신을 찼던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와 마주친다. 연회장 직원인 의주에게 벤처기업 과장이라고 거짓말만 늘어놓던 그 순간, 도시 전체에 유독가스가 퍼지며 용남과 의주는 위험에 빠진다.

2019년 최고의 다크호스였던 <엑시트>는 코미디와 재난 영화의 긴장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용남을 연기한 조정석의 전매특허 능청스러운 리액션은 영화 전반에 큰 거름이 됐는데,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백수에게 퍼붓는 '근황 토크' 장면에서도 그의 리액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취업 준비 중이거나 그런 시간을 오래 보냈다면 이 장면에서 웃으면서도 '맴찢'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B급 며느리>

감독 선호빈|출연 김진영, 조경숙|12세 관람가|80분

아름답게만 보였던 것들을 아주 날 것의 현실로 보도록 시선을 바꿔주는 작품이 있다.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도 그런 유의 작품 중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 결혼이란 일견 로맨틱해 보이는 순간이 생판 남이었던 상대방의 집안과 '가족'으로 묶이는 과정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서로가 바라는 것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아들이자 남편도 중재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가 봐도 한숨만 나올 상황인데, 신기하게도 세 사람은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로 한다. 시어머니 조경숙과 며느리 김진영의 고부갈등을 촬영하는 아들이자 남편 선호빈.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겪으면서도 쉽게 얘기하지 못한 걸 작품으로 승화한 용기가 가상하다. 단순한 '명절 잔소리' 수준을 넘어선 고부갈등을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에 멘탈 단련 수준이 아니라 가족이란 관계에 대해 고찰할 계기가 될지도.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감독 도이 노부히로|출연 아리무라 카스미,이토 아츠시|12세 관람가|117분

쿠도 사야카(아리무라 카스미)는 어릴 적 왕따를 당했지만 중학교 때 인생 친구들을 만나 매일 즐겁게 살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사고를 치고 무기한 정학을 받는다. 아들만 애지중지하는 아빠와 달리 항상 사야카를 위해 물심양면 힘쓴 엄마의 추천으로 사야카는 츠보타 선생님(이토 아츠시)에게 수업을 받으며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된다. 목표는 게이오 대학교, 전교 꼴등 사야카는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모두가 나를 칭찬하고 있는데, 가까운 가족이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지' 같은 말로 초를 친 적이 있는가. 우군인 줄 알았던 가족이 (의도가 어쨌든) 나를 깎아내릴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사야카는 끊임없이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 가능성을 믿어주는 츠보타 선생님과 엄마와 달리 아빠는 틈만 나면 '네까짓 게 게이오라니'라고 깔아뭉개기 일쑤다. 사야카 또한 지지 않고 '뭐라는 거야, 망할 영감이'하고 받아치지만 그 속이야 당연히 씁쓸함이 가득할 터. 명절이든 평소에든 이런 경험을 해봤다면 사야카의 노력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보자.


<에브리바디스 파인>

감독 커크 존스|출연 로버트 드 니로, 드류 베리모어, 케이트 베킨세일|15세 관람가|99분

아내를 떠나보낸 프랭크 굿(로버트 드 니로)은 오랜만에 집에 올 두 아들과 두 딸을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자녀들 모두 찾아뵙기 어렵게 됐다는 연락을 했고, 프랭크는 자신이 직접 아들들과 딸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주치의도 만류하는 여행을 몰래 떠난 프랭크는 아이들을 만나며 자신이 쓴 편지를 전한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 멘탈을 단련할 영화들을 소개했으니, 멘탈 케어해 줄 영화로 마무리한다. 프랭크의 방문기를 쭉 따라가는 <에브리바디스 파인>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가족끼리도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음을 담백하게 전달한다. 로버트 드 니로의 묵직한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케이트 베킨세일, 샘 록웰, 드류 베리모어 또한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으로 마치 현실에 있을 듯한 가족의 표상을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적이 있거나 '내가 왜 그랬지'하고 자책했던 사람들에겐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따듯한 기운이 필요할 듯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