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봉준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 한·일 두 차세대 거장의 만남은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시네필들에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필람행사로 손꼽히던 두 거장의 대화는 말 그대로 예매 지옥 중의 지옥이었다. 예매에 성공했다는 기쁨의 소식보다 순식간에 찜한 자리가 증발해버린 실패의 기록들이 더 많이 회자할 정도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2019년 최고의 영화를 묻는 한 매체의 질문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2018)를 빼놓지 않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영화 해설과 <기생충>(2019)의 일본 개봉에 맞춰 방문한 봉 감독과의 대담회를 진행하는 등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해 이전부터 존경과 애정을 표명해왔다. 대담의 시작에 앞서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저 자신이 궁금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욕심을 가지고 질문할 것”이라며 “관객분들께 질문할 기회가 있을지 장담을 못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른 아침부터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을 연속으로 관람하며 오랜 시간을 기다린 관객들과 함께한 긴 대화를 정리했다.


“대화, 특히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있나”

봉준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인물과 인물 사이를 연결한 촘촘한 관계와 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균열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영화에서 관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주요한 장치는 바로 인물 간의 대화다. 봉준호 감독은 비단 <드라이브 마이 카> 뿐만 아니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에서 대화, 특히 자동차에서의 대화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대사를 쓰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의 특징이자 약점이다” “대화를 하며 움직임이 있지 않으면 영화에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대화를 할 때 차에 탄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조금 뜸 들이는 부분이라던가 침묵하는 부분이라던가 전부 포함해서 더 좋다고 생각됐다”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으로 시작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차 안에서 할 수밖에 없는 대화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전했다.

“나도 봉준호 감독처럼 배우들에 대한 모순된 욕망이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봉준호 감독은 <우연과 상상>과 <드라이브 마이 카>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상 깊은 연기를 언급하며 캐스팅 과정에 대해 궁금함을 털어놨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오디션을 할 때 연기를 보는 오디션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한 시간 정도 그 사람과 수다를 떠는 식으로 오디션을 본다”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진심이 느껴지는 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봉준호 감독도 “저도 제일 싫어하는 게 시나리오의 어느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배우에게 주고 갑자기 해보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다. 너무 불편하고 민망하다”며 “일단 배우분들과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얘기를 해본다” “사실 연기 능력이나 표현력은 그분이 했던 다른 독립영화나 단편, 연극 공연 같은 것을 보면 되는 것”이라며 <기생충>의 박명훈 배우도 좋아했던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한 경우라 화답했다.

봉준호 감독은 <해피 아워>(2015)의 캐스팅은 거의 대부분 비전문 배우였다고 들었다고 하며 자신은 직업 배우와 비직업 배우가 한 프레임에 섞여 있을 때 기본적으로 되게 불안한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물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기본적으로 숙련된 좋은 연기를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연기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튀어나올 수 있는 다른 좋은 점들이 있다”며 거기에 승부를 거는 것이라 대답했다. 봉준호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을 언급하며 세심하게 디렉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본능을 믿는 편인지 물었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기본적으로 세밀한 지시나 디렉팅은 하지 않는다”며 대신 대본 리딩과 리허설을 반복적으로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 이것은 동작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들이 대사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취지고 그 이후엔 좀 더 자유롭게 하도록 두는 편이라며 봉 감독의 경우는 어떤지 되물었다. 봉준호 감독은 “그냥 연기 잘하는 분들을 모셔오려고 애를 쓴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수십, 수백 가지의 정의가 있을 수 있겠다” “배우가 내가 계획한, 또는 구상한 뉘앙스를 아주 정확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또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갑자기 보여줘서 나를 놀래켜 줬으면 하는 모순된 욕심이 있다”고 밝히며 배우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 말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봉준호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모순된 욕망이 있다”며 “제가 연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연기하는 분들 안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만 짐작하기로는 대본을 읽는 작업을 수없이 하기 때문에 연기하는 가운데 어떤 타이밍에서 어떤 움직임을 할지에 대한 전망을 조금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위한 노란색 차를 보러 갔는데 빨간색 차가 나왔다”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던 중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원작에서는 노란 차던데 왜 빨간 차냐”는 봉준호 감독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를 찍다가 카메라가 움직이면 일본 풍경이 보인다” “노란색 차를 찍고 나서 산이나 나무 같은 녹색 배경이 나오면 대비상 조금 별로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일단은 차를 보러 갔는데, 차량을 수배해 주시는 분이 노란 차를 보러 가자 하시곤 빨간 차를 타고 오셨다. 그래서 이걸로 하라는 뜻이네 하고 그냥 결정을 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그 스태프가 이 영화에 큰 흔적을 남기셨다”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예를 들어 화답했다. 부잣집 거실에서 난투극이 벌어질 때 이탈리아 대중가요 칸초네 음악이 나온다. 그런데 그건 시나리오 쓸 때부터 준비했던 것이 아니라고 밝히며, 소품팀에서 준비한 LP 중 하나 골라 보는데 과거에 아버지가 들으셨던 것 같은 내 귀에 익숙한 음악을 하나 선택했고, 이게 이탈리아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탈리아 영화가 서울에서 개봉을 했는데 갑자기 남진 씨나 나훈아 씨의 노래가 나오는 것”이라며 영화라는 공동 작업을 해나가며 생긴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빨간색 차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말하며 웃었다.

“내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 감독은 확신의 감독”

마지막 두 질문의 기회는 관객들에게 돌아갔다. 한 관객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쓰나미, 산사태 등 항상 재난이 있었던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 공간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면 했냐고 물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들으면 안 믿으실 수 있지만, <파도의 소리>(2011)는 동일본대지진이 있었던 곳이 맞고, 처음부터 의도가 있었던 장소의 선정이 맞다. 그 외에는 모두 우연이다. <해피 아워>의 고베 지역도 사실은 협력자가 고베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원래는 교토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도 히로시마 지역이 된 것은 또한 우연이다. 원래는 부산에서도 찍을 생각이었다. 여기 ‘영화의 전당’을 ‘연극의 전당’이라고 바꿔 연극제가 전개되고 있는 식으로 구상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객의 질문은 봉준호 감독에게로 향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본인의 약점이라고 생각한 지점은 대화를 하며 각본을 써 내려가는 방법이라 했는데, 봉준호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연출의 약점이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저는 기본적으로 불안감이 되게 많은 사람이어서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불안감의 표현이다”고 말하며 “내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류스케 감독은 확신의 감독”이라고 덧붙였다. “매 순간 불안하기 때문에 어디로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회피적인 생각을 하는데 그 과정을 관객분들이 좋다, 재미있다 하시고, 이상하고 특이한 것을 독창적이라 해석해주시는 것 같다”며 그 불안감 자체가 약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더해 “내가 이 얘기를 아무리 절실하게 해도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때문에 나 자신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 그게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자기는 어때? 라고 화제를 바꾸자 “저도 불안해 죽겠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애쓰고 배우들과 리허설을 반복적으로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도 불안 덩어리라고 말했다. 봉 감독이 “거짓말”이라며 웃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정말이다”고 받아치며 두 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은 관객들의 유쾌한 웃음 속에 마무리됐다.


글=부산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