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이 흘렀다. 최근엔 윌리엄스의 삶을 돌아본 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이 개봉했다. 생전 로빈 윌리엄스에 관한 사실들을 정리했다.
* 로빈 윌리엄스는 포드사의 경영진이었던 아버지와 모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엔 뚱뚱하다고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혼자 여러 목소리로 대화하면서 노는 버릇을 들였는데, 할머니와 어머니 앞에서도 그 연기를 선보이곤 했다.
* 캘리포니아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뉴욕의 줄리어드 스쿨로 학교를 옮겼다. 줄리어드 시절 훗날 슈퍼맨을 연기하는 크리스토퍼 리브와 친했고 그가 2004년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정을 나눴다. 둘을 지도했던 배우 존 하우스먼은 학교를 벗어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 보라며 윌리엄스의 재능을 높이 샀다. 재학 시절 생계를 위해 센트럴 파크에서 마임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한 사진가가 찍은 작품에서 그 당시 모습을 담겼다.
* 1978년부터 방영된 ABC 시트콤 <모크 앤 민디>가 출세작이다. 게리 마샬의 시트콤 <해피 데이즈>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외계인 캐릭터 모크로 급하게 캐스팅됐다가 반응이 워낙 좋아 독자적인 시리즈로 제작돼 5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디션에서 마샬이 앉으라고 하자 윌리엄스는 의자에 머리를 처박고 앉아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될 수 있었다.
* 로빈 윌리엄스의 애드리브는 신인 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던 것 같다. 대본에 충실하기보다 애드리브를 적극 활용하는 그를 보고 <모크 앤 민디> 작가진은 대본에 빈틈을 많이 두어 그가 즉흥적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했다.
* 모크가 내뱉는 감탄사 “샤즈봇”(Shazbot)을 만들었다. 이 단어는 <심슨 가족>, 게임 <트라이브스>, 그리고 록 밴드 AC/DC의 노래 'Night Prowler'에서 인용됐다.
*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로빈 윌리엄스는 심각한 알콜 중독이었다. 친구 존 벨루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첫째 아들 재커리가 태어나면서 중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었다.
* 스탠리 큐브릭은 <샤이닝>의 주인공 잭 역에 윌리엄스를 고려했지만 <모크 앤 민디>를 보고 그가 너무 사이코 같아 보여서 생각을 접었다.
* 첫 영화 주연작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만화를 실사로 영화화한 <뽀빠이>(1980)다. <샤이닝>의 히로인 셜리 듀발이 올리브 역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촬영 시작하기 전에도 뽀빠이의 우람한 팔뚝 모형이 만들어지지 않고, 촬영을 마친 후에야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걸 발견해 대사만 다시 녹음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개봉 당시 뚜렷하게 호불호가 갈렸다.
* 1986년부터 홈리스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빌리 크리스탈, 우피 골드버그와 함께 HBO의 <코믹 릴리프>를 진행했다. 마이클 키튼, 리차드 드레이퍼스, 페니 마셜 등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 1986년 작 <굿모닝 베트남>으로 '영화배우’로서 궤도에 올랐다. 본래 1979년부터 제작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계속 수년간 미뤄진 끝에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게 됐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서 이 작품이 자신의 재능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 애드리언 크로나우어가 방송에서 하는 멘트는 전부 윌리엄스의 애드립이었다. 실제 크로나우어는 영화 속에서 윌리엄스는 자신과 45% 정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 처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출하려고 했던 제프 카뉴 감독은 리암 니슨에게 존 키팅 역을 맡기려고 했지만, 피터 위어가 메가폰을 잡게 되면서 윌리엄스가 존 키팅을 연기하게 됐다. 윌리엄스는 존 키팅이 학창 시절 선망하던 선생님 같은 인물이라 캐스팅을 수락했다. 그는 훗날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출연작이고, 피터 위어가 여태껏 작업한 감독들 중 최고였다고 밝혔다.
* <죽은 시인의 사회>를 찍고 난 후 학교로 돌아간 에단 호크는 촬영 당시 자신을 미워했다고 오해했던 윌리엄스의 추천을 받은 소속사와 계약해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 평소 만화 애호가인 윌리엄스는 잭 니콜슨이 출연을 망설이는 사이 <배트맨>(1989)의 조커 역을 제안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역할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은 니콜슨이 돌연 워너 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윌리엄스의 출연은 무산되고 말았다. 니콜슨을 위한 간 보기에 이용당했다고 생각한 윌리엄스는 이후 몇 년간 워너의 모든 영화를 거절했다.
* 톰 행크스가 <후크>(1991)의 피터 팬 역에 고려됐지만 결국 윌리엄스에게 돌아갔다. <대부> 시리즈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한 <잭>(1996)에도 <빅>(1988)에서 13살 소년을 연기했던 행크스가 캐스팅 될 뻔했는데, <빅>의 캐스팅 후보에 윌리엄스도 포함돼 있었다.
* <후크>를 작업하며 친구가 된 스티븐 스필버그가 다음 작품 <쉰들러 리스트>(1993)를 찍을 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전화해 <알라딘>의 지니 목소리로 만담을 선보여 배우들과 제작진의 사기를 북돋웠다.
<쉰들러 리스트> 촬영 현장
*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스릴러 <환생>(1991)에 출연했지만, 코미디 영화라고 착각할까 싶어 오프닝 크레딧에 자기 이름이 뜨지 않길 원했다.
<환생>
* 시나리오 단계부터 <알라딘>(1993) 지니 역의 물망에 올랐고,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도 지니를 윌리엄스의 얼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알라딘> 속 지니의 대사는 ‘역시’ 애드립이 대부분이었다.
* <알라딘>의 지니 목소리를 녹음할 때, 무려 16시간이 넘는 분량을 즉흥연기로 소화했다. 지니의 대사에 워낙 애드립이 많아 오스카 각색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 <알라딘> 머천다이즈에 그의 목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적은 개런티를 받았는데, 당시 디즈니 수장이었던 제프리 카젠버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는 디즈니와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카젠버그가 퇴출된 후 디즈니의 새로운 CEO가 된 조 로스는 그에게 당시 100만 달러였던 피카소 그림을 보내며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알라딘과 도적의 왕>(1996)엔 다시 윌리엄스의 목소리가 사용됐다.
* 윌리엄스가 ‘하드캐리’한 <알라딘>의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들도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알라딘> 전후에 나온 <미녀와 야수>(1991)와 <라이온킹>(1994)의 출연진만 봐도 그 변화가 확연히 보인다.
* 크리스 콜럼버스는 윌리엄스가 LA의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서 공연하던 시절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홀로 집에>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킨 콜럼버스는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에 처음 윌리엄스를 캐스팅해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수십 번씩 다른 즉흥연기를 선보이는 것에 매우 만족해 <나인 먼쓰>(1995), <바이센테니얼 맨>(1999) 등 꾸준히 그를 기용했다.
*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틀니가 와인잔에 빠지는 설정은 윌리엄스가 사전에 공유하지 않고 선보인 거라 상대 배우들의 반응은 연기가 아닌 실제였다. 얼굴이 흘러내리는 신 역시 조명 열기 때문에 분장이 흘러내리는 걸 놓치지 않고 코미디로 소화한 윌리엄스의 임기응변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윌리엄스의 딸을 연기한 배우 리사 제이컵은 14살이던 당시 촬영 일정 때문에 5개월 동안 결석해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제이컵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윌리엄스가 직접 학교 측에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 <배트맨 포에버>(1995)의 리들러 역에 관심을 보였고, 팬들도 윌리엄스를 1순위로 생각했지만, 조엘 슈마허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콘셉트를 매만져 결국 짐 캐리가 캐스팅됐다.
* 1995년, 크리스토퍼 리브가 말에서 떨어지는 치명상을 입었을 때 윌리엄스는 마스크를 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원복을 입은 채 러시아 의사인 척하며 리브를 찾아갔다. 익살스러운 방문 덕분에 사고 후 처음 웃었던 리브는 가까스로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마음의 위로뿐만 아니라, 막대한 치료비를 보태기도 했다.
* <쥬만지>(1995) 속 절대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스의 분량은 28분 남짓이었다. 개봉 당시 아이들이 보기엔 꽤 무서운 영화가 가족영화로 홍보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꽤 많았는데, 윌리엄스 역시 자기 아이들에게 <쥬만지>를 보지 못하게 했다.
* 윌리엄스 주연의 <쥬만지>와 <버드케이지>(1996) 두 편 모두 같은 주에 1억 달러 수익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 <햄릿>(1996), <파더스 데이>(1997) 등 네 작품에 같이 출연한 절친 빌리 크리스탈과 함께 드라마 <프렌즈>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프렌즈>가 촬영 중이던 건물에 갔다가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것. 물론 두 사람의 연기는 즉흥이었다.
* <굿 윌 헌팅>(1997)에서 숀이 들려주는 아내의 방귀 이야기는 윌리엄스의 애드립이었다. 맷 데이먼이 빵 터진 것도 실제 반응. 화면을 자세히 보면 그 순간 카메라도 살짝 흔들리는 것도 알 수 있다.
* 윌(맷 데이먼)과 숀 교수(로빈 윌리엄스)가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신은 거기에 그들만 있다는 걸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 카메라 뒤엔 윌리엄스를 보러 온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 목소리 출연이라는 이유로 <알라딘>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5년 후 <굿 윌 헌팅>으로 받았다. 수상 후 독일어 더빙을 한 피어 어구스틴스키에게 “독일에서 저를 유명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오스카 트로피 모형을 보냈다.
*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1999)의 주제가 ‘Blame Canada’가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윌리엄스가 시상식에서 직접 그 노래를 불렀다. 사실 작품 속에서 이 노래를 부른 건 메리 케이 버그먼이었는데, 행사 몇 달 전 버그먼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윌리엄스가 무대에 서게 됐다.
* 7만 5천 달러밖에 받지 않은 <알라딘>은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었으나, 윌리엄스 커리어 사상 최고의 개런티인 2천만 달러를 받은 <바이센테니얼 맨>(1999)은 제작비를 밑도는 성적을 거뒀다.
* 워낙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선보여 왔지만 윌리엄스가 참여한 장편 애니메이션은 <푸른 골짜기>(1992), <알라딘>(1992), <알라딘 3 : 알라딘과 도적의 왕>(1996), <로봇>(2005), <해피 피트>(2006), <해피 피트 2>(2011) 여섯 작품이다. <에이 아이>(2001)의 닥터 노는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그가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역할이다.
<해피 피트> 프로모션 중
* 윌리엄스가 가장 성대모사 하기 좋아했던 배우는 잭 니콜슨이다. <알라딘>이나 <미세스 다웃파이어> 같은 대표작에서도 니콜슨을 따라하는 윌리엄스를 볼 수 있다. 한편, 자신‘을’ 가장 잘 따라하는 건 데이나 카비였다고.
*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제네시스(Genesis)다. 위대한 밴드를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 <VH1 Rock Honors>에서도 윌리엄스가 제네시스의 소개를 맡았다. <후크>에서는 제네시스의 드러머 필 콜린스와 함께 한 프레임에 잡히기도 했다.
* 게임 <젤다의 전설>의 열성팬이다. 1989년에 태어난 딸 이름까지 젤다라고 지었을 정도. 2011년엔 젤다와 함께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 광고에도 출연했다.
* 두 영화에서 대통령을 연기했다. <맨 오브 더 이어>(2006)는 가상인물 톰 돕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2013)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역을 맡았다.
* 세상을 등지기 전 샌프란시스코 만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시신은 화장돼 샌프란시스코 만에 뿌려졌다. 아내 수잔 슈나이더는 그가 우울증과 불안, 그리고 아직 대중에게 밝히지 못했던 파킨슨병 초기 증상을 견뎌왔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검 결과, 그는 알츠하이머로 오인되는 루이소체치매 앓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윌리엄스의 유작은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앱솔루틀리 애니씽>이다. 그의 1주기에 맞춰 개봉했다. 생전에 윌리엄스가 존경하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의 (당시 살아 있던) 모든 멤버들이 30년 만에 다시 모여 작업해 더욱 뜻 깊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