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의 엔딩을 보고 난 뒤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이별한다는 말도 없이 고향과 이별했던 거라고.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내가 ‘고향’이라고 인식하는 동네는 서울 남서부에 위치한 신시가지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조성된 중산층 밀집 거주지역 아파트 대단지에서, 나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과거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터를 잡고 살았다. 아주 좋은 기억만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중산층의 ‘여유’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웃들의 시선은 다소 버거웠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혼 가정은 흔치 않았고, 인생의 오점이나 결격 사유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 이혼 가정에, 집안 내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는 집이라. 모든 이웃들이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더러는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대놓고 동정하는 이웃들이 있었다.

그렇게 답답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좋았다. 80년대 지어진 대단지 파트답게, 단지 안에 목적 없는 공터나 유휴공간이 많고, 울창한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것도 좋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아파트 단지 안에 함진애비들이 들어와서 함을 팔았고, 때로는 집 앞에 조등을 걸어두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이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나무라지 않았다. 같은 동네 사람이면 그게 임대아파트 주민이든 자가소유 주민이든 구분 없이 단지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고, 그렇게 적당히 섞여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다. 덕분에 난 그 동네를 ‘고향’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아주 가끔 꿈에서 그 대단지의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걷던 골목들,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그사이를 못 참고 뛰어오르던 아파트 층계참 같은 광경들. 물론 내가 내 ‘고향’을 다시 찾는 일은 좀처럼 없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굳이 찾지 않게 된다. 가까이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그 동네를 가보는 일은 계속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점점 그 동네를 생각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한때는 날 키워냈던 곳이었는데, 내 유년의 환희와 절망이 모두 있었던 곳이었는데, 그렇게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이별하게 되는 거겠지.

뜬금없이 고향 이야기를 한참 했던 건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때문이다. 이미 <논스톱>과 <커피프린스 1호점>, <전원일기> 등의 출연자들을 데리고 자사의 레거시 프로그램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MBC <다큐플렉스> 팀의 다음 작품이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요 에피소드들을 다시 챙겨봤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결국 한때 수많은 식구들과 객식구들로 북적거리던 집이 천천히 활력을 잃으며 비어가는 과정, 그렇게 ‘고향’이라 여겼던 곳과 이별하는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마지막 회를 곱씹어보자. 이씨 집안의 객식구이자 명실공히 그 집안의 ‘여섯 번째 남자’로 인정받은 범이(김범)는, 미국 이민을 위해 출국을 앞둔 날 절친 민호(김혜성)와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해 민호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범이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해줄 사람은 할머니 문희(나문희)밖에 없다. 할아버지 순재(이순재)는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부쩍 잠이 늘어서 계속 자고 있고, 윤호(정일우)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다며 일찌감치 집을 떠나 여행 중이고, 자리를 비운 민호는 휴대폰이 고장 난 탓에 연락도 안 된다. 민호의 부모님인 준하(정준하)와 해미(박해미)는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러 외출했고, 민호의 삼촌이자 풍파교 선생인 민용(최민용)은 전처인 신지(신지)의 녹음실에 가 있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니까, 하필이면 범이와 이별하는 날 모두가 제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던 거니까. 계속 누군가와 제대로 격을 갖춰 작별할 기회를 기다리던 범은, 결국 문희하고만 눈물의 작별을 하며 자신의 학창시절 보금자리가 되어줬던 집을 떠난다. 고향을 떠나는 일은, 그렇게 변변한 이별의 의례도 없이 멀어지는 일이다.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중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엔딩은 그나마 비교적 해피엔딩인 축에 속한다. ‘하이킥’이라는 제목을 물려받은 차기작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의 냉정하기 짝이 없는 엔딩이나, 예고도 없이 주요 등장인물을 위암으로 퇴장시키는 결말로 사람들을 당혹케 했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의 엔딩은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다. 왜 웃으려고 보는 시트콤에서 이런 슬프고 당혹스러운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는 순간보다 고단하고 지겹고 서러운 순간들이 더 많고, 대부분의 슬픔과 상실은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의 우리를 급습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단한 일상과 갑작스러운 상실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즐거운 시간들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좋은 것들이 영원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데 그 끝마저도 제대로 맺지 못할 수 있으니까. 김병욱 감독이 자기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마 그런 거였겠지.

가끔 내가 고향을 떠났던 날들을 떠올려 본다. 살던 동네에서 큰길 두 번 건너면 나오는 동네로 이사를 갔던 거였으니까, 나는 내가 이별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날 키워낸 동네와 멀어지게 되는 거라는 생각 대신 “아, 동선이 조금 복잡해지겠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사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큰마음을 내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엔딩을 보고 난 뒤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이별한다는 말도 없이 고향과 이별했던 거라고. 어쩌면 그랬기에, 그곳은 더 소중했던 곳으로 기억될 수 있는 거였다고.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