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와 뗄 수 없는 삶을 사는 아이들. 자연스레 이들은 전자 기기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이 우정, 과연 안정적일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현실의 풍경과 정확히 맞닿아있어 더 눈이 가는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이 곧 국내 스크린을 찾는다. 지난 7월, <고장난 론>의 연출을 맡은 진 필리프 바인, 연출과 각본을 맡은 사라 스미스, 프로듀서 줄리 록하트가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각국의 프레스들을 초청했다. 화상으로 만나 그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를 전한다.


아이들의 절친 B-BOT,

그런데 고장난 로봇을 선물 받았다?

“새로운 우정의 세계를 경험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완벽한 최첨단 로봇, 비봇이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세상. 매끈한 타원형의 몸체를 지닌 비봇은 친구를 만드는 데 최적화된 기기다. 친화력까지 챙긴 이 귀여운 로봇은 때 아이들의 백과사전이 되고, 말동무가 된다. 아바타처럼 시시때때로 외형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비봇은 사용자들의 개성을 투영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신형 기기를 누구나 손에 넣을 순 없는 법. 집안 형편이 어려워 비봇 마련은 꿈도 못 꾸고, 때문에 어울리는 친구도 없었던 바니(잭 딜런 그레이저)는 생일을 맞아 아빠에게 비봇 론(자흐 갈리피아나키스)을 선물 받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론을 작동시킨 바니. 그런데 이 기계, 조금 이상하다. 제목과 같이 ‘고장난’ 비봇이었던 론은 어디로 튈지 모를 엉뚱한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바니를 당황시킨다. 사용자 마음대로 제어가 가능한 보통의 비봇과 완전히 다른 론. 바니는 거침없는 성격의 론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녀>에서 영감 얻은 제작진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며 <고장난 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스크린만으로 진정한 우정, 관계를 맺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 사라 스미스

사라 스미스 감독, 각본가

<윌레스와 그로밋> <숀더쉽> 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 <고장난 론> 제작진의 만남 역시 이곳에서 시작됐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사라 스미스는 각본을 맡은 피터 베인햄과 오랜 친구였고, 두 사람은 함께 아드만 스튜디오의 크리스마스 영화 <아더 크리스마스>(2011)를 만들었다. 당시 제작을 맡은 이가 프로듀서 줄리 록하트였고, 진 필리프 바인은 <아더 크리스마스>의 스토리보드 업무를 맡으며 제 필모그래피를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안정적인 팀워크를 이뤄낸 이들은 사라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고장난 론>을 만들었다.

“이틀 정도 작동이 되지 않는 노트북을 사 본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라며 말을 꺼낸 사라 스미스는 “어울리진 않지만 <그녀>를 보면서 <고장난 론>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인공지능과 관계를 맺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본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곤 한다. 온라인 세상의 모든 것을 필터 없이 믿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어른들보단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가상 놀이터에서 관계를 형성한다. 아이들이 스크린만으로 진정한 우정, 관계를 맺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 사라 스미스


스티븐 스필버그 필름 속

유대감과 모험을

우린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열광한다. 특히 <E.T.>에서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 사이의 유대감, <스탠 바이 미> 속 여정과 모험이 <고장난 론>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 진 필리프 바인

진 필리프 바인 감독

그렇다면 제작진이 레퍼런스로 삼은 <고장난 론>의 한핏줄 영화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이에 대해 감독 진 필리프 바인은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영화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우리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팬이다. 아마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E.T.>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을 거다. 낯선 존재와 형성하는 유대감, 스티븐 스필버그의 세계에서 우리가 발견한 감정적 진실의 실체를 기초 삼아” <고장난 론>의 세계를 구축해갔다고 설명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낯선 존재인 론과 함께할 바니의 성장담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에 더해 <스탠 바이 미>를 언급하기도. “10대들이 자신이 품은 세계의 경계를 벗어나는 여정, 모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힌 그는 이런 대작들을 레퍼런스 삼아 “<고장난 론>만의 길을 찾고 싶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배우들이 어떻게 모였지?

제작진 감동시킨 초특급 라인업

캐스팅에 관련한 질문에 진 필리프 바인 감독은 두 손을 관자놀이에 대며 이렇게 운을 뗐다.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해냈을까?” <고장난 론>은 목소리 연기에 도전한 배우들의 믿음직한 이름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영화다.

작품의 중심에 선 바니를 연기한 배우는 잭 딜런 그레이저다. 최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 픽사의 애니메이션 <루카>에 출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배우. <그것>의 촬영을 마치고 <고장난 론>에 합류한 그는 <샤잠!>을 촬영하며 <고장난 론> 속 바니 캐릭터 개발에 힘썼다.

진 필리프 바인 감독은 잭 딜런 그레이저와의 녹음 경험을 회상하며 “늘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바니를 연기할 땐 감정을 쏟아내며 제작진의 넋을 빼놓더니, 녹음이 끝난 뒤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배우 본인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만지곤 했다는 것. 이어 그는 잭 딜런 그레이저에 대해 이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매우 다재다능하고 예민한 배우다. 어떤 면에선 그가 <고장난 론>과 함께 성장한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바니에게 불어넣어 준 감성 덕분에 더 멋진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 ‘잭은 바니 그 자체야’”

고장난 론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는 자흐 갈리피아나키스다. <더 행오버>에서 기가 막힌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 그는 <장화신은 고양이> <레고 배트맨 무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에서 인상 깊은 목소리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가 합류한 것 자체가 큰 희망이었다”고 털어놓은 제작진은 그간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론에게 “초현실적인 접근을 하길 원했고”, “그를 표현해 내기에 자흐 갈리피아나키스보다 더 나은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론의 개성 있는 말투를 위해 작가들이 “섬세히 구축한 대사들을 정확히 소화함과 동시에, 그에 미묘한 매력까지 더해냈다”는 그의 놀라운 목소리 연기는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배우가 있다면 바니의 할머니, 돈카를 연기한 올리비아 와일드다.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추길 즐기는 괴짜 할머니 돈카의 대사 대부분은 샤차 바론 코헨 주연 <보랏> 시리즈의 각본을 맡은 피터 베인헴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고장난 론>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고, 올리비아 와일드는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노퍽에 위치한 본인의 집에 직접 스튜디오를 꾸려 녹음을 진행했다.


이렇게 인간적인 로봇 봤어?

'고장난 론'의 독보적 매력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론일 것. <고장난 론>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사라 스미스는 론을 구상하며 “아무런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로봇”이라는 점에 중점을 뒀음을 밝혔다.

다른 로봇들은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심어둔 상태다. 상자에서 나오자마자 ‘안녕 제인, 앤드류…’, 하며 인사를 건네는 식이랄까. 하지만 론에겐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아니라, 제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자신의 방향대로 성장해나간다. 어떤 면에선 조금 더 인간적인 것 같기도 하다.(웃음)

- 사라 스미스

친구를 만드는 것이 비봇의 기능. 우정의 알고리즘(?)을 미리 계획한 다른 비봇들과 달리 비어있는 상태로 바니에게 도착한 론은 또 다른 방식의 우정의 능력을 발휘해 바니와 친구들을 성장시킨다. 그 진정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라 스미스의 답을 들어보자.

론은 바니가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된다. 우리가 온라인에 올리는 프로필과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놓인 정보들이다. 보통 SNS 프로필엔 반짝반짝 빛나는, 베스트 모먼트만 모아놓기 마련이니까. 바니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조차 론에겐 배움이다. 바니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론의 능력이 이들의 진정한 우정을 이뤄낸다.

- 사라 스미스


소셜 미디어의 강점에

진실된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더하다

제작진에겐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고장난 론>을 탄생시킨 영화인이다. 동시에,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전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두 발을 걸치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부모이기도 하다. “<고장난 론>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사라 스미스는 “너무 많은 테마가 있다”며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아이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완벽한 친구를 원한다. 그들의 마음에 동의하고, 그들이 원하는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비봇, 론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이 원하는 친구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이뤄낼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관계, 훨씬 더 보람 있는 우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사라 스미스

동시에 소셜 미디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방식을 제의하는 데에도 힘을 실었다. 사라 스미스는 위 답변에 이어 “우리 모두, 세상 어느 곳에 있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는 온라인 관계를 맺고 있다. 심지어 이번 영화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은 탓에) 온라인을 통해 만들 수 있었다. 우린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는 연대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는 장치”라고 전했다. 세계를 연결하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 <고장난 론>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의 삶에도 적용되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을 작품이다. 우리의 삶에 꽤 복잡한 영향을 미치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흥미로운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은 10월 27일 국내 개봉한다.


글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