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본연의 얼굴이 떠오르기보단 캐릭터가 먼저 스치는 배우들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 본인을 희석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난 배우들은 작품마다 얼굴을 달리하며 본인의 이름보다도 캐릭터를 빛나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쥐어지지 않기에 더욱 가치 있는 이 재능을 데뷔 초부터 가감 없이 드러내 모두의 시선을 붙든 배우가 있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로 스크린 정중앙에 선 배우 최성은이다.

여전히 최성은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일 테지만, 영화 <시동>(2019)과 드라마 <괴물>(2021)을 본 이들이라면 단번에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배우 최성은은 데뷔작부터 형형한 흔적을 남겼다. 2019년 영화 데뷔작 <시동>을 통해 빨간머리 숏컷이 강렬했던 캐릭터 '소경주'를 탄생시키고, 그로부터 2년 후 만난 드라마 <괴물>에선 소경주와 는 또 다른 얼굴인 '유재이'를 꺼내들며 '완성형 신인'이란 타이틀을 몰고 다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내 폭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한 최성은이 <시동>과 <괴물>을 들고 세상 밖에 나오기 전, 그 앞에 영화 <십개월의 미래>가 있었다. 한예종 재학 시절 남궁선 감독의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에너지로 <십개월의 미래>에 캐스팅된 최성은은 감독의 안목에 박수가 터져 나올 만큼 '미래'라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인생의 방향이 180도 뒤틀린 한 여성의 삶을 유쾌하고, 패기 있게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도록 만든 최성은의 연기는 <십개월의 미래>를 봐야 할 가장 큰 이유로 남았다. 매 순간 털털하면서 솔직하게, 모든 대답에 진실과 진심이 녹아있던 배우 최성은과의 인터뷰를 씨네플레이에서 독점으로 전한다.


<십개월의 미래> 개봉을 앞둔 요즘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고 계실 것 같은데요. 동시에 차기작 두 편을 연달아 촬영 중이기도 하고요.

네, 맞아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안나라수마나라>을 끝내고 영화 <젠틀맨> 촬영에 들어갔어요.

<십개월의 미래>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을 통틀어 가장 비중이 많은 작품입니다. 개봉을 앞두고 기대되는 마음과 부담되는 마음이 같이 들 것 같아요.

사실 이 작품은 제가 22살, 그러니까 거의 4년 전에 촬영한 영화여서 개봉을 한다는 게 잘 실감은 나지 않아요. 너무 오래전에 찍었어서. (웃음) 또 이미 여러 영화제들에서 선보였던 작품이기 때문에 개봉하는 느낌이 색다르게 느껴지진 않고, 어려운 시국에 개봉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많은 분들이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말씀한 것처럼 이 작품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에는 22살, 대학생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났고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와 지금 완성된 작품을 볼 때 다르게 느껴지는 점들이 여럿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는 읽었을 때는 마냥 재밌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이런 영화 작업을 해보지 않았던 그냥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시스템을 하나도 몰랐어요. 학교에서는 주로 연극 연기를 하다 보니까 이런 영화 현장 자체가 되게 낯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때 당시에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부딪히는 마음으로 촬영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또 타이트한 기간 안에 모든 촬영을 마무리해야 해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는데... 그러다 보니 아쉬운 것만 보이는 것 같아요. 또 지금 와서는 <십개월의 미래>가 저예산 독립영화다 보니까 좀 더 자본이 투자돼서 지금보다 더 좋은 그림을 담아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해요. 큰 환경에서 몇 번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런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남궁선 감독이 이야기한 첫 만남 에피소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최성은 배우를 두고 "내가 태어나서 만나본 여인 중 최고의 철벽녀"였다고 말을 하던데, 남궁선 감독과 처음 만났을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웃음) 아,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긴 한데 제가 낯을 많이 가립니다. 또 약간 제가 가진 이상한 지점이긴 한데, 엄청나게 가까워지기 전에는 여자분보다 남자분을 더 편하게 대하는 게 있어요. 남자 형제들이 있어서 그런지 친구 관계가 아닌 이상 여성분들을 대할 때 좀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감독님이 느끼시기엔 얘가 낯도 가리고 말수도 없으니까 그렇게 느끼시지 않았을까요. (웃음)

남궁선 감독이 직접 겪은 임신 과정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품인 만큼, 두 분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미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갔을 거 같은데요. 남궁선 감독이 연기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요청한 부분이 있을까요.

근데 사실 제가 감독님을 만나고 몇 주 있다가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과 미래에 대한 캐릭터에 대해서 오래 그리고 깊게 이야기할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많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님은 조금 더 멍청하고 약간은 나사 빠진 느낌의 미래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영화 속 미래는 최성은이라는 사람의 결이 더 묻어있는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미래라는 캐릭터에 대해 감독님과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작업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감독님은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웃음) 미래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감독님의 생각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지 않았나 싶은 거죠. 저는 연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이다 보니까 미래가 처한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상황 자체가 너무 크고 혼란스럽다 보니까 지금의 연기가 나온 건데. 그거에 대해 상호 간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좀 들긴 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건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는 최성은 특유의 '골나있는' 표정이었어요. 미래라는 캐릭터가 겪는 분노와 황당함을 응축해낸 표정 연기가 극을 이끄는 원동력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모든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미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걸 느끼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대리 만족할 게 없어요. 왜냐면 현실에서 제가 참고 사는 사람이 아니어서. (웃음) 차분하고 그런 면도 있지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감정적으로 대리만족을 한다? 이거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가장 많이 화가 났던 장면이나 대사가 있었나요.

임신을 했다고 하니 회사 대표가 "왜 나를 배신하냐"고 화를 내던 장면이 제일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최성은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뭐라고 하고 나왔을 것 같긴 한데, 미래처럼 막 회사에 있는 컴퓨터들을 부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대표한테 한마디는 하고 나왔을 것 같아요.

침착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불같은 면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연히 미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연기하면서 나와 다르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음, 할 말은 하면서 앞뒤 생각 안 하고 밀어붙이는 지점들이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른 점이 있다면, 미래가 되게 엉뚱하잖아요. 임신 테스트기를 몇십 개씩 사서 테스트를 한다든지, 산부인과 의사한테 가서 내 배 속에 외계인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든지. 그런 부분이 미래에겐 장난이 아니라 되게 심각한 거고 자기가 정말 믿어질 때까지 하는 행동인 거잖아요? 약간 엉뚱하면서 4차원 같기도 하고, 멍청하면서도 귀여운 모습들이 공존한다면 저는 그런 부분에서 미래랑은 다른 것 같아요. 좀 더 현실적인 편이죠. 또 저는 미래라는 캐릭터를 보고 읽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저는 좀 더 현실적이고... 긍정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뻔한 질문이지만, MBTI가 궁금해집니다.

제가 MBTI를 잘 믿지는 않는데, 검사를 해 봤을 때는 ISFP(호기심 많은 예술가)가 나오더라고요. 그 밑에 ISFP 사람들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 나오잖아요. 근데 그걸 보면서 이게 나라고? 그런 문항들이 많아 가지고 확실히 딱 맞는 거 같다고 느끼진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다큐멘터리와 유튜브 영상들을 참고하면서 임신부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다고 들었어요.

촬영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임신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던 상태였으니까 임신부가 되어 가는 과정을 많이 참고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모든 엄마들은 정말 위대하구나, 라는 걸 느꼈고요. 정말 모성이라는 건... 강요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드라마 <괴물>을 준비하면서도 실종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고 들었는데. 가상의 이야기에서 레퍼런스를 찾기보다는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캐릭터를 찾아가는 편인 것 같습니다.

영화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면 보는 편인데, 영화는 누군가의 해석이 걸러서 나온 거잖아요? 어쨌든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인 거고요. 진실에 가닿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던 것 같아요. <십개월의 미래>는 임신부에 대한 내용이니까, 그래도 그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막 크게 어떤 낯선 느낌을 받진 못했는데. <괴물>과 관련된 실종 다큐멘터리를 찾아봤을 때는 아, 내가 모르는 세상이 또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자료를 참고하는 것 이외에도, 한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을까요.

캐릭터를 준비할 때는 해도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연기할 캐릭터와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 인물처럼 살아보려고 한다거나 그런 건 너무 제 일상까지 해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렇게 해보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인물의 성격, 전사, 극 중에서의 상황들, 감정을 느끼는 방식들을 직시하며 인물을 만들어가는 편인 것 같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자신만의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요.

노래도 많이 듣고. 그리고 사진? 인물의 분위기를 훅-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사진들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만약에 재이(드라마 <괴물>에서 최성은이 연기한 캐릭터명 - 편집자)라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재이의 얼굴, 재이의 분위기, 재이가 살 것 같은 환경을 떠올리며 사진들을 찾는 거죠.

<십개월의 미래>는 임신이라는 변수로 인생의 방향이 뒤틀린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선택에 관한 영화 같기도 한데, 지금까지 배우 최성은의 인생을 뒤바꾼 가장 큰 변수는 무엇이었나요?

자취요! 아주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지만,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부모님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위아래로 오빠랑 남동생이 있는데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살다가, 21살에 자취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도 굉장히 잘 지내고 있는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됐어요. 같이 연기하는 동기인데요.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나는 어떤 유리 벽에 갇혀서 살았구나,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친구는 인생을 스펙터클 하게 살았던 사람이라서. (웃음) 제가 겪고 있던 늦은 성장통을 이미 이른 시기에 겪었던 친구여서 저한테 도움이 되는 말들을 굉장히 많이 해줬어요. 혼자 살게 되고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났던 21살 때가 지금까지 살면서는 가장 좋은 변수가 아니지 않았나 싶어요.

뜻밖입니다. 조승우 배우를 따라 계원예고에 입학한 일을 가장 큰 변수로 꼽을 줄 알았거든요. 조승우를 따라 무작정 계원예고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가요?

사실 제가 그것 때문에 조승우 선배님 팬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제가 왜 그 시기에 조승우 선배님 때문에 계원예고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가 기억이 안 나요. 지금 기억나는 건 조승우 선배님이 계원예고를 나오셨으니까 나도 계원예고를 갈 거야, 이 생각까지는 나는데. 어떤 작품을 보고 빠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정말 좋은 선배님이고 너무, 너무 존경하는 배우 선배님이지만 막 정말 "팬이에요" 할 만큼의 정보라던지 그런 엄청난 팬심이 있지는 않아서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싶어요.

배우가 되고 나서 좋아하게 된 배우가 있다면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을 능력을 지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같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아, 저 배우랑 연기해보고 싶다.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구교환 배우, 전종서 배우를 보고 나서 였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기를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차기작 <젠틀맨>과 <안나수마나라> 모두 공개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린 작품인데요. 배우로서 점점 더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하시나요?

저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과 남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이 너무 달라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거든요? 저를 잘 모르시거나 겉모습만 봤을 때는 소위 말하는 단아한 느낌? 참하고, 차분한 느낌을 많이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래도 목소리도 차분하고 이렇다 보니까. 근데 사실 저는 되게 욱하는 기질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데 남들이 보는 제 이미지는 그런 게 아니었을 때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주된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그리고 저란 사람의 특징 같기도 한데, 일로서 만난 사람들, 감독님이라든지 같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제 모습을 바꾸려고 하는 게 있어서 제 스스로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그럴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연기를 할 때뿐만이 아니라 제가 일상에서 연애를 한다든지, 친구를 만난다든지 회사 분들을 만난다든지... 제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모습들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큰 문제로 다가올 때가 많아요. 뭔가가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데뷔작인 <시동>부터 <괴물>까지. 데뷔 초부터 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올렸어요. 신인 배우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기회였지만, 갑작스레 관심을 받다 보면 스스로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 저는 제가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웃음) 사실 막 어떤 관심? 때문에 느끼는 고민은 아닌 것 같고요. 오히려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가면서 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것 같아요. 아 내가 과연 왜 연기를 하나, 이 작품을 하면서 나에겐 뭐가 남았나, 이런 고민들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데. 정신줄 똑바로 잡고 살지 않으면 그저 쳇바퀴 돌듯이 한 작품 끝내고 다음 작품하고 그냥 이렇게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엔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갔는데, 동시에 두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까 어디 가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사이에 있는 나도 내가 누군지를 잘 모르겠고…. 조금 혼란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요즘 들어 앞으로 연기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라는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왼쪽부터) 영화 <시동>, 드라마 <괴물>

굉장히 솔직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십개월의 미래>와 <시동>, <괴물>을 거치면서 연기가 '재미있다'기 보다는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말을 한 걸 본 적이 있어요. 계속 연기를 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다고 했는데, 그만한 이유를 찾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오늘 제가 우연히 여기를 오다가 2019년에 메모해 놓은 걸 발견했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연기가 이렇게 재미없으면 안 되는데" 이런 내용. 물론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마주쳤을 때의 쾌감과 뿌듯함이 있기 때문에 계속 연기를 하고 있지만 지금 저에게는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는? 모색할 수 있는? 그런 체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거든요. 재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면, 누가 연기를 하냐에 따라 정말 수많은 답안지들이 있지만, 저는 하나의 답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매번 인생을 문제지 풀듯이 이건 틀렸어, 이건 잘했어, 이건 아니야, 이건 좀 괜찮았던 것 같다며 점수를 매기듯이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까 연기를 할 때도 흥미로운 순간에 마주치는 경험들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의외의 순간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이게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거 되게 흥미로운데?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죠. 결국 내가 준비한 걸 현장에서 잘 해냈을 때 베스트였던 순간들이 많고, 내가 예상치 못했는데 이런 게 나왔네?라고 느낀 기쁨들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내가 연기를 남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하나? 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뭐든 두려움 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깡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아직은 생각만 많아서. (웃음)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쉴 때는 영화를 즐겨 보긴 하지만, 영화 보는 걸 즐거워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때문일까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아 오늘 영화나 볼까? 하고 왓챠를 들어가도 아, 지금 내가 이런 걸 볼 때인가? 여성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그 배우에게서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그래도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은데? (웃음) 이런 갈등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실 영화가 보기 싫어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좋은 영화들을 보면 확- 환기가 되면서 힘을 얻는, 아니 힘을 얻는다기보다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최근엔 어떤 영화가 그 느낌을 가져다줬을까요.

제가 최근에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작품도 임신한 여성에 대한 영화였거든요? 극장에서 다른 관객분이랑 단둘이 봤는데 (웃음) <아담>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사실 영화 자체는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있었지만, 여자 주인공이 젖을 물리는 장면에서 아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 장면의 임팩트가 너무 센 거예요. 영화 자체는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 한 장면 때문에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좋은 장면을 보고 나면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충동이 드는 것 같아요.

많은 팬분들이 최성은의 SNS 개설을 기다리고 있어요. SNS를 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안 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는 최성은의 SNS 계정을 만나볼 수도 있을까요?

사실 제가 SNS를 안 하는 이유는 제가 막 제 자신을 드러내거나 그러질 않고,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SNS를 안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냥 안 하는 건데. 남들은 약간 쟤 뭔데 요즘 시대에 SNS를 안 하냐고, 신비주의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셀카도 20대 초반에는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아예 사진 자체를 안 찍어요. 만약 뭔가 소통을 해야 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할 수도 있겠죠? 어떤 필요성을 느끼면?


글·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사진 제공·에이스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