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직한 상상이죠. 하지만 그 소설의 주인공이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거나 혹은 불치병에 걸렸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소설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슬픈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런데 운이 없게도 그런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남자가 있습니다.
주인공 해롤드 크릭(윌 페럴 분)은 국세청 중견 직원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숫자에 강한 그는 12년 동안 한결같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32개의 치아를 좌우로 38번, 아래위로 38번 총 76회 닦으며 정확히 8시 17분에 회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고 큰 변화가 없는 그의 삶은 모든 행동이 계량화된 듯 보입니다. 이런 해롤드에게는 매일 들여다보는 손목시계만이 유일한 친구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확히 서술하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게다가 이 목소리는 그에게 “해롤드는 이 사소롭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 그의 임박한 죽음을 예고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목소리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그는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그녀는 비극적 결말만 쓰는 소설가, 캐런 아이플(엠마 톰슨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공백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10년 만에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이 바로 ‘해롤드 크릭’ 이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놀란 건 그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이 실존하다는 사실에, 자신의 글이 그를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거죠. 하지만 한편으론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비극으로 끝나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 대사는 그리스 신화나 소설 등에서도 이미 수차례 비극을 위한 복선 장치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알아보지 못해 비극이 시작됐고,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도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15년 동안 독방에 갇혀 군만두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거죠. 이 말은 모든 비극의 시작입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 했던 해롤드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기엔 운명의 열쇠를 쥔 여인, 안나(매기 질렌할 분)가 등장합니다. 명문대 법대를 다녔지만 법보다는 굶는 사람이 없도록 빵을 굽는 게 더 즐겁고 사회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투사 같은 여성이죠. 해롤드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안나의 생각은 점점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합니다. 이탈리아 소설가 칼비노는 “모든 소설이 내포하는 궁극적인 주제는 삶의 연장 또는 필연적인 죽음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영화는 이 말을 빗대어 해롤드가 겪고 있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비극이라면 자넨 죽고 희극이라면 살겠지.” 주변에서 많은 힌트를 주었던 덕분에 해롤드는 인생에서 거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10초면 충분했습니다. 단 10초의 반전을 여러분도 발견해보세요.
영화 속 메뉴 따라 하기
영화 중반부, 세무조사를 나온 해롤드와 안나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녀는 곧이곧대로 일을 처리하는 고지식한 해롤드에게 시종일관 쌀쌀맞은 태도를 취하지만, 그게 미안했던 모양인지 늦게까지 영수증과 씨름한 그를 위해 쿠키를 구워 건넵니다. 쿠키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거절하다가 억지로 맛을 보는 해롤드는 남은 쿠키를 싸주려는 안나에게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맙니다. 뇌물을 받을 수 없으니 차라리 값을 지불하겠다면서요. 이렇게 센스 없는 남자가 또 있을까요? 누군가를 생각하며 반죽해 구운 쿠키 안에는 진심과 애정, 환대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제는 해롤드도 그 마음을 알고 있겠죠?
<마카다미아 쿠키>
재료
무염버터 65g 피넛버터 20g 황설탕 55g 달걀 1/2개 박력분 120g 베이킹파우더 1/2작은술 마카다미아 넛 50g
만들기
1. 실온에 둬 말랑해진 무염버터를 볼에 담고 피넛버터를 넣어 거품기로 섞는다.
2. 1의 반죽에 황설탕을 분량대로 넣고 섞다가 달걀 푼 것을 나눠 넣으며 섞는다.
3.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는 체에 쳐서 2에 넣고 섞다가 마카다미아를 넣어 섞는다.
4.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 지름 3cm 정도의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5.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올려 둥글납작하게 눌러 팬닝한다.
6. 180도에서 13-15분 가량 구워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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