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눈앞에서 아빠를 잃은 고등학생 소녀가 피 묻은 칼을 들기까지.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등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은 아빠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한 주인공 지우의 잔혹한 여정을 그린다. 고등학생 그리고 범죄 조직의 막내를 지나 언더커버 경찰이 된 지우의 고단한 삶을 담아낸 이는 배우 한소희. 복수라는 하나의 키워드 속에 수십 가지 감정을 녹여내는 데 성공한 한소희는 <마이 네임>을 봐야 할 가장 큰 이유로 남았다. 제 나름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성장한 지우가 그랬듯, 배우 한소희 역시 날마다 단단해진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고 있기에 어쩐지 지우에게서 한소희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하는바. <마이 네임>을 만나기 전까지, 배우 한소희가 쌓아온 성장 서사를 돌아보려 한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한소희

한소희가 직접 그린 그림

울산예술고등학교 미술과

한소희는 연기가 아닌 미술을 전공했다. 울산여자고등학교에서 울산예술고등학교로 편입하며 본격적으로 미술 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오로지 그림 그리는 것에만 애정과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특히 "프리다 칼로에 빠져" 자화상을 많이 그리곤 했다고. 이후 배우가 되고 나선 드라마 <알고있지만,>을 통해 조소과 학생 역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한소희는 촬영 소품을 직접 그리는 등 전공자다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후문이다. 개인 SNS를 통해 종종 공개하는 그림들을 통해 그의 수준급 스케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쇼핑몰 피팅모델 당시 한소희

호프집 아르바이트부터 쇼핑몰 피팅모델까지

한소희는 19살이 되자마자 단돈 30만 원을 쥐고 서울로 올라왔다. "미술로 먹고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서울행 티켓을 끊었고, 2년이 넘도록 학원비를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호프집, 장난감 가게, 옷 가게, 액세서리 가게, 고깃집 등에서 일하며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소희는 이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 나이지만 단돈 30만 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던 20살의 저를 생각하면 마치 10년이 지난 듯 아득하기만 하다"며 "매일 눈을 뜨면 강남의 한 호프집으로 출근해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일했던 제가 그 해를 견뎌줬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모델 제안을 받은 한소희는 쇼핑몰 피팅모델을 시작으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됐고,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된다.


2016년 한소희

2021년 한소희

"빨간 옷 걔!" 크래커 광고

한소희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한 과자 광고 CF를 통해서였다. 빨간색 배경 위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과자를 베어 물던 한소희의 모습은 강렬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고, 많은 이들은 "리츠 광고 그 배우 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저 한소희는 "나 과자 광고 찍는다! 출연료 많이 준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기에 이렇게 화제가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소희가 지닌 오묘한 매력이 부각된 이 광고를 통해 이후 더 많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던 그는 이후 소속사와도 연이 닿으며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2016년 한소희가 출연한 광고 덕분에 쏠쏠한 효과를 맛본 크래커 회사는 2018년과 2021년에도 한소희를 모델로 선택하며 배우 한소희의 성장을 함께 한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돈꽃>

<백일의 낭군님>

<어비스>

사연 많은 캐릭터 전문?

많은 사람들이 한소희 하면 <부부의 세계> 여다경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전부터 한소희는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추며 조금씩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 왔던 배우였다. 데뷔작인 <다시 만난 세계>(2017)부터 <돈꽃>(2017) <백일의 낭군님>(2018) <어비스>(2019)까지. 신인 배우로서는 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올리며 커리어를 쌓아 갔는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신인 시절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 대부분이 금지된 사랑에 얽힌 인물들이라는 것. <돈꽃>에서는 재벌 3세의 내연녀를, <백일의 낭군님>에선 불륜을 저지르는 세자빈을, <어비스>에선 사기 결혼을 기획한 전과범을 연기하며 굴곡 있는 '사랑길'을 걸었다. 타인에게 "사연이 많아 보이는 얼굴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는 한소희는 마스크가 지닌 분위기를 무기 삼아, 데뷔 초부터 본인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다.


<부부의 세계>

비현실적으로 예뻐서 캐스팅된 <부부의 세계>

지금까지 마주했던 굴곡은 약과에 불과했다.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를 통해 불륜 캐릭터계의 '최종 보스' 급인 여다경을 만나게 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소희의 출세작으로, <부부의 세계> 인기와 함께 한소희에게도 날개가 달렸다. 1화, 여다경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모든 시청자가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을 텐데. <부부의 세계>를 연출한 모완일 감독 역시 여다경이 지닌 남다른 포스를 중요시하며 캐스팅에 임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소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비현실적으로 예뻤"고 "절대적으로 예쁜 느낌이었다"고 밝힌 모완일 감독은, "존재로서 엄청난 긴장감"을 주는 여다경이란 인물에 한소희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소희 역시 "다경이가 예쁘지 않으면 이 드라마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에 책임감을 느끼고 45kg까지 체중감량을 하는 등 외적으로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부부의 세계>

<알고있지만,>

단숨에 섭외 1순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부부의 세계> 이후 한소희는 20대 배우들 사이에선 독보적으로 섭외 1순위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단순히 '예뻐서'라기 보단, <부부의 세계>에서 보여준 흡인력 있는 연기로 본인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김희애라는 대선배와 기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던 한소희. 만약 여다경이란 인물이 지선우(김희애)에 비해 어색하다거나, 기운이 모자랐다면 두 사람의 팽팽한 기 싸움은 힘을 잃었을 텐데. 한소희는 밀리지 않는 폭발력을 보여주며 숱한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후 차기작 <알고있지만,>에서도 나비라는 캐릭터가 사랑으로 인해 느끼는 설렘과 풋풋함, 배신과 절망을 한데 담아내며 웹툰을 현실화시키는데 가장 큰 몫을 해냈다.


<마이 네임>

응급실까지 실려 갔던 <마이 네임>의 부담감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작의 중심에 서게 된 한소희. 본인의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그는 작품을 보고 나면 "고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지독한 액션신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모두의 호평을 끌어안고 있다. 고강도 액션신을 위해 3~4개월 동안 액션 스쿨에 출석하며 대부분의 신들을 대역 없이 소화해낸 한소희는, 이를 위해 10kg를 증량하고, 촬영 도중엔 부상과 과로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숱한 고난을 꺾어내며 <마이 네임>을 탄생시켰다. 일각에선 <부부의 세계> 이후 한소희가 출연한 작품들이 흥행 면에서 주춤하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으나. 하나 분명한 건 <마이 네임>으로 한소희는 스스로의 영역을 한층 넓히는 데 성공했고, 본인 스스로도 "연기를 하면서 느꼈던 최대치의 쾌락"을 느꼈기에 그다음 얼굴이 더 기대될 수밖에 없는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그때의 모습도 나", 솔직한 인터뷰이

한소희는 대담하고 솔직한 인터뷰로 종종 화제를 모으곤 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고 있노라면 거짓이나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데. 가장 화제가 된 인터뷰는 <부부의 세계> 이후 치러진 인터뷰에서였다. 여다경으로 주목을 받으며 과거 흡연 사진과 문신한 모습이 (왜 논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입장을 밝힌 것. "그때의 모습도 나고, 지금의 모습도 나다"라며 "그때의 사상이나 생각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쪽 일을 하며 생활에 제약이 생기고 그것에 맞춰가다 보니 지금의 내가 완성된 것뿐"이라는 말로 단숨에 논란을 잠재웠다. 이외에도 한소희는 본인의 외모를 두고 '껍데기'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는데, 아래 인터뷰를 통해 한소희가 지닌 생각을 조금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늘 보잘것없는 껍데기 하나로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하고 싶다. 그 소중한 마음들이 그저 응원에 불과한 것이 아닌, 저를 지켜내고 성장시키는 큰 힘이라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다"

<알고있지만,> 이후 진행한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 중

"제 외적인 부분들은 '빈껍데기'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보다 외관적으로 저를 보여드리기보다는 마음이나 주체성이나, 앞으로 연기라는 막대한 무게의 직업을 어떤 식으로 대중들에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저 자신에게 물었을 때, 절대 '예쁘게만'은 아닌 거 같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일부러 망가지는 것보다는 저의 많은 면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게 어쩌면 조금 예쁘지 않을지언정. 저의 많은 면들을 보여드리고 싶고, 새로운 면들, 저만 아는 저의 모습들도 대중과 공유하고 싶다"

<마이 네임> 이후 진행한 언론 인터뷰 중


한소희 블로그에서 발견한 사진들

네이버 블로그 운영자

배우들 중 블로그로 소통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한소희는 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지금도 종종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곤 하는데. 담백하지만 진솔한 글솜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6년부터 2021년이 되기까지, 약 5년간 한소희의 기록이 담겨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아무말대잔치'와 진지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한소희의 재치를 맘껏 느낄 수 있다.

대뜸 '이거는 접니다' (@한소희 블로그)


한소희를 배우로 만든 장본인?

한소희의 SNS 혹은 블로그를 즐겨 본 이들이라면 한소희와 할머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올리는 게시물마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과 사랑, 저릿한 마음을 듬뿍 담아내며 시선을 끌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에 그 애정의 크기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실제로 한소희가 배우라는 꿈을 꾸게 된 것도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TV를 즐겨보는 할머니는 막연하게 손녀딸이 TV에 나오길 바랐고, 그런 기대를 받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TV 속 나를 꿈꾸게 됐다"고. 지금의 한소희를 만든 사람은 바로 그의 할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한소희가 SNS에 공개한 할머니와의 카톡 대화 내용


차기작은,

<마이 네임> 이후 한소희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젠틀맨>에서도 하차를 결심한 한소희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동안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라고 알렸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