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부터 시작돼 1985년까지 6부가 나온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부에 가까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로 기록된 작품이다. 과학소설의 대중성과 작품성을 가늠하는 척도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최초로 동시 석권했고, 아서 C. 클라크는 이와 비견될 작품은 <반지의 제왕>밖에 없다고 극찬했으며, 또 실제로도 시간이 흘러 SF판 <반지의 제왕>이라 일컬어질 만큼 탄탄한 인기와 완성도를 인정받아왔다. 과거 역사 속 향신료에 빗댄 귀중하고 독특한 성분을 지닌 '스파이스'가 채굴되는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무대로 장대한 역사를 거스르며 우주 여러 세력들 간의 다툼과 음모를 담아낸 스페이스 오페라이자 정치와 종교, 생태와 문명, 기술 및 젠더에 대한 담론까지 던진 역작으로 후대 여러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듄>

데이비드 린치 <듄>

이런 이유로 <듄>의 영상화는 꽤 오래전부터, 꾸준히,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돼 왔다. 하지만 가히 실패의 역사라 부를 만큼 스펙터클한 스케일과 심오한 주제 의식을 동시에 온전하게 담아낸 결과물은 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한때 영상화가 불가능한 작품 중에 하나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 시작엔 1974년 컬트 감독으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꿈에서 계시를 받아 14시간짜리 대작으로 완성하겠다며 핑크 폴로이드와 살바도르 달리, 오슨 웰스, H.R. 기거, 뫼비우스, 댄 오배넌 등 황금 진용을 꾸렸다가 엎어진 필사의 도전이 존재했다. 10년이 지나 1984년 데이비드 린치에 의해 겨우겨우 최초로 영화로 완성됐지만, 간섭과 개입으로 잘려 나간 편집본은 누더기가 된 채 지금까지도 린치가 자신의 작품이길 거부하는 비운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고난과 실패로 점철된 <듄>의 험난한 영상화

분량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과 2003년 하부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파이 채널에서 1부와 한 번도 제작되지 않았던 2∼3부가 차례로 미니시리즈화되었다. 1편당 90분씩 3부작이란 넉넉한 시간을 제공받고 에미상에서도 촬영과 특수효과 부문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았지만, 예산에 한계가 있다 보니 스펙터클한 비주얼을 구현하는 데엔 2% 부족했다. 이를 만회라도 하듯 2008년 파라마운트가 피터 버그를 앞세워 다시 영화화에 도전하는데, 중도에 피에르 모렐로 교체됐으며 그 역시 창작적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포기하며 좌초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바통은 새롭게 워너와 드니 빌뇌브에게 주어진다.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이어 벌써 세 번째 SF에 도전하는 드니 빌뇌브는 지금까지 고난의 듄 제작사(史)를 뒤로 한 채 자신만의 비전이 담긴 스펙터클한 <듄>을 선보이기로 작정한다.

한스 짐머

그러기 위해 티모시 살라메를 필두로 레베카 퍼거슨과 오스카 아이삭, 조슈 브롤린, 제이슨 모모아,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젠데이아 콜먼, 장첸, 데이브 바티스타, 샬롯 탬플링,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등 입이 딱 벌어지는 쟁쟁한 올스타급 배역진을 구성했다. 스탭진들의 면면도 <시카리오>부터 호흡을 맞춰온 조 워커를 편집에, <프리즈너스>부터 함께 해 온 파트리스 베르메트에게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긴 건 물론, 오스카상에 빛나는 에릭 로스가 각본에 참여하고, 백전노장 로저 디킨스 대신 탄탄한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그레이그 프레이저를 촬영에 기용했다. 그리고 음악은 <듄>을 할 거라고 털어놓자 모든 걸(!) 팽개치고 달려온 열혈 원작 팬 한스 짐머가 맡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테넷>을 제의한 상황이었지만, 십 대 시절부터 염원하던 꿈의 프로젝트였던 만큼 놀란에게 대타(러드윅 고란슨)를 소개해 주고 짐머는 냉큼 <듄>에 탑승했다.


총 3가지 버전으로 발매되는 <듄>의 사운드트랙

애초 조도로프스키가 영화화를 시도했을 때부터 <듄>의 음악은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와 프랑스의 마그마를 염두에 둘 정도 음악적 비전에 대해선 확고했는데, 완성됐다면 그들의 최전성기였던 만큼 놀라운 사운드를 들려줬을지 모른다. 이 안타까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건 데이비드 린치 버전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의 슈퍼밴드 토토의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토는 당시 가장 완벽에 가까웠던 4집을 발표한 직후로 처음이자 마지막 사운드트랙을 선보였다. U2의 브라이언 이노도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고, 말 많던 영화와 달리 음악에 있어선 한목소리로 극찬을 받았다. 미니시리즈가 제작됐을 땐 뉴질랜드 뉴웨이브 그룹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호러와 SF 장르에서 활약하던 그레이엄 리벨이 새로운 세계관을 구현했다. 후속작은 떠오르는 신예였던 브라이언 타일러가 맡아 비주얼을 압도하는 사운드로 굉장한 호평을 받으며 메이저에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스 짐머가 이를 악물고 참여한 이번 <듄> 또한 이전 작품들의 비전에 못지않다. 15년간 6작품이나 함께 해온 놀란과의 인연 대신 <듄>을 선택할 만큼 그 애정을 공공연하게 피력해 온 짐머는 자신의 50년 덕질 내공을 과시하듯 엄청난 물량공세를 쏟아낸다. 영화가 개봉되기 한 달 전부터 밑 작업이 됐던 소스들과 영감의 원천들을 모아 사전에 스케치한 음악들을 2CD 100분 분량에 스케치북 컨셉 앨범을 발매해 사전 분위기를 조성했고, 영화 개봉 보름 전에는 75분 분량의 본 사운드트랙을, 그리고 영화 개봉과 함께 제작자이자 빌뇌브의 아내이기도 한 타냐 라푸앙트가 쓴 캠패니언 북 ‘아트 앤 소울 오브 듄’의 사운드트랙(맞다, 책의 배경음악이다!)까지 발매할 정도로 과도한(?) 의욕을 보였다. 심지어 드니 빌뇌브가 후반 작업이 끝나 음악을 그만 보내도 된다고 했을 때도 2부를 위해 영감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계속 음악을 보내줄 만큼 짐머의 <듄>에 대한 집착(?)은 엄청났다.


오케스트라 녹음 대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한스 짐머

이번 작품을 위해 한스 짐머는 토토가 작업한 1984년 작 사운드트랙을 의도적으로 피했고, 흔히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대작에서 상상할 법한 익숙하고 전통적인 심포닉 악곡에서 벗어나 종래에 결코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사운드 스케이프를 전달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적인 소리를 실체화시키기 위해 그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사막을 찾아 일주일간 머무르며 모래와 바람의 소리를 들었고, 팬데믹이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티스트들을 섭외해 새로운 시도들을 펼쳤다. 바람소리를 담기 위해 21피트짜리 호른과 고대 아르메니아 전통 목관악기의 초대형 버전인 '콘트라베이스 두둑(Duduk)'을 새로 제작했고, 아라키스 환영행사 장면에서 스치듯 지나가지만 30명에 달하는 백파이프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져 공습 사이렌과 맞먹는 130데시벨에 달하는 소리에 귀마개를 착용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이번 <듄> 음악에서 짐머는 전통적인 의미의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지 않았다. 관악기처럼 들리는 소리들도 모두 풍성한 신시사이저 모듈에서 나오는 음원을 일렉 기타나 일렉 첼로로 연주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 개발자이자 사운드 디자이너 채스 스미스는 캘리포니아 헛간에 틀어박혀 극저온 탱크나 스페이스X 엔진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초합금인 인코넬 718로 만든 도구들로 두드리고 긁고 문지르며 모래바람 속에 반짝이며 산란되는 '스파이스'의 단서를 제공했다. 이런 인위적인 사운드 속에서 한스 짐머가 진짜 심혈을 기울인 건 바로 인간의 목소리다. 특히나 여성이 주축이 돼 듄 세계관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베네 게세리트'를 염두에 두며 오랫동안 협력했던 보컬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리사 제라드를 필두로, 루아르 콜터와 이디 레만 보디커와 함께 모래 행성을 지배하는 독특한 사운드를 완성했다.


음악이 아니라 분위기 그 자체를 체험하라!

기술이 발전하고 모든 게 변해가도 결국 남는 건 인간이라는 판단하에 짐머는 <왕좌의 게임>이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등에서 가상의 언어를 창조해냈던 언어학자 데이비드 J. 피터슨의 도움을 받아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언어를 기반으로 독특한 성가이자 주술적인 구음을 구사한다. 유대인들의 가사 없는 종교적인 노래인 니군(nigun)이나 남인도의 보컬 퍼쿠션 콘나콜(கொன்னக்கோல் ), 몽골의 후미(呼麦) 창법 등 세 보컬리스트들은 다양하고 민속적인 성악 기술을 동원해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영혼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구체적인 테마들이나 주된 모티브에 집착하지 않고 추상적인 엠비언스를 조성하는 사운드 디자인적인 접근은 한스 짐머가 단순한 음악을 넘어 그 가공된 세계를 직접 스코어로 체험할 수 있게 환경적인 측면에서 고민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다른 영화음악들과 달리 돌비 애트모스로 믹스된 음원을 따로 공개하기도 했다.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일렉트릭 사운드가 선사하는 박력과 기백은 상상 이상이다. 이는 고출력에 확실한 분리도를 가진 극장 시스템에서 더 강력하게 구현된다. 그래서 한스 짐머의 <듄> 사운드트랙은 음악을 따로 감상할 때보다 영화로 볼 때 더 명료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본편 사운드트랙만으로는 안 된다. 충분한 길이와 확장성을 지닌 컨셉 앨범 ‘스케치북’과 식후 디저트와 같은 ‘아트 앤 소울 오브 듄’을 같이 들어야만 영화의 감흥이 더 짙게 다가온다. <듄>은 지난 과거 실패의 역사를 뒤로하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2부 제작이 확정됐다. 2023년 10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2부 음악도 한스 짐머가 복귀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또다시 짐머 대신 (역시 23년에 공개될) 차기작인 <오펜하이머>에서 러드윅 고란슨과 함께 한다. 드니 빌뇌브는 2부 프리 작업부터 한스 짐머의 음악 공세에 시달리게 생겼다. 아니, 이미 지금부터 쉴 새 없이 음악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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