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개봉한 <듄>이 1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듄>은 내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장담처럼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했다. 프랭크 허버트가 발간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듄>은 이번 '파트 1'을 시작으로 장대한 대하서사시의 서막을 쏘아 올렸다. 원작 소설 「듄」은 1965년 발간 이후 여러 차례 영상화가 시도됐지만, 실제로 성사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번 <듄>을 제외하면 1984년 영화 <듄>과 2000년대 미니시리즈만이 영상화에 성공했다. 이번 포스트는 2021년 <듄>과 1984년 <듄>이 어떻게 다른지 중점적으로 정리했다.
※ 1984년 <듄>은 오리지널 극장판을 기준으로 하며 중요한 스포일러는 다루지 않으나 두 영화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을 암시할 수 있다. 1984년 작품을 <사구>로, 현재 개봉 중인 작품은 <듄>으로 표기한다.
하코넨 가문의 캐릭터들
<사구>든 <듄>이든 한 편만 본 사람이 다른 작품에서 가장 낯설게 느낄 부분은 하코넨 가문일 것이다. 이번 <듄>에선 블라드미르 하코넨을 비롯한 하코넨 가문 전원이 민머리로 묘사된다. 원작 소설나 다른 미디어믹스에서 하코넨 가문은 붉은 곱슬머리로 그려지는데, 이게 '진저 혐오' 즉 붉은 머리 혐오를 확산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안 그래도 악역 포지션 가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성격이 좋지 않으니). 이번 작품은 이런 의견을 반영해 민머리를 선택한 듯하다. 하코넨 개개인의 묘사 또한 <사구>와 <듄> 간 차이가 큰 편이다. <사구>에서 자기과시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행하는 블라디미르 하코넨은 <듄>에서 상대적으로 과묵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성격으로 그려진다. 라반은 오만방자하면서 다소 멍청하게 그려진 <사구>와 달리 <듄>에선 데이브 바티스타의 외형처럼 상당히 마초적인 인물로 나온다(아직까지는).
핵심 문구의 차이
두 영화 모두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로 이주하기 전, 레토가 아들 폴에게 조언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핵심이 되는 문장은 완전히 다르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라서 두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다른 점을 내비치기도 한다. <사구>는 "잠든 자는 깨어나야만 한다"(The Sleeper Must Awaken), <듄>은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고 부름에 응답한다"(A great man doesn’t seek to lead. He’s called to it. And he answers)는 문장을 내세웠다. 두 문장 다 폴이 앞으로 겪을 운명을 암시하지만, 전자는 주체적인 시선을 내포한다면 후자는 운명론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원작 소설에 없는 두 영화의 문장은 각 영화만의 지향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시카, 던컨 | 유에, 멘타트
<듄>은 2시간 35분을 가지고도 소설 전체를 다루지 못했는데, <사구>는 2시간 16분으로 결말까지 내야 했으니 각 인물의 비중이 적은 건 당연할 것이다. 두 편을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분량이 판이한 건 레이디 제시카와 던컨이 아닐까 싶다. <듄>에서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한 제시카는 폴의 운명을 두고 당사자만큼 힘들어하며 눈물까지 보이는데, <사구> 프란체스카 애니스의 레이디 제시카는 그처럼 감정적인 표현이 드물다. 던컨 역시 듬직한 큰형처럼 폴이 신뢰하는 <듄>과 달리 <사구>에선 폴과 대화하는 장면이 한 번 나올 뿐이다.
반대로 <듄>보다 <사구>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유에 박사와 하와트, 파이터다. <듄>에서 생략한 유에 박사의 행동과 연락 방식 등을 <사구>는 설명해준다. 또 하와트와 파이터가 (각 가문의 집사 정도로 보인 <듄>과 달리) 그들이 '멘타트'이며 각자 어떤 성격인지 묘사한다. 멘타트는 「듄」의 세계에서 전문 교육을 받아 컴퓨터 대신 전산과 데이터 처리를 하는 전문가를 이르는 말이다. 영화 초반, 레토가 항해 비용에 대해 묻자 하와트가 흰자위를 드러내며 계산하는 것이 멘타트라는 표현이다. 다만 <듄>은 이미지로 보여줄 뿐, 멘타트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며 특히 하코넨 가문의 멘타트 파이터가 얼마나 사악한 인물인지 보여주지 않았다. 두 멘타트가 만난 장면을 촬영했다는데 분량상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폴의 이야기, 듄의 이야기
<사구>와 <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의 관점이다. <사구>는 「듄」 전체를 각색한 만큼 사건을 주도하는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중후반에서야 폴 아트레이데스가 주인공으로 느껴질 정도로 하코넨 가문부터 황제까지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둘러싼 정치적 술수를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반대로 <듄>은 폴 아트레이데스의 반복되는 꿈과 스스로의 변화에 불안해하는 심리를 자주 그리면서 그가 직면할 운명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린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과 복수를 '숲'으로 보여주는 <사구>, 그 숲속에 놓인 폴이란 '나무'를 투영하는 <듄>의 시각 차이는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이후 내용은 <사구>와 <듄>의 같지만 다른 장면들을 통해 차이점을 더 정확하게 정리했다.
이룰란 공주 / 챠니
<사구>와 <듄> 모두 시대와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서두를 연다. 다만 내레이션의 화자는 다르다. <사구>는 2021년 <듄>에선 등장하지도 않은 이룰란 공주가 화자이다. 사실 영화를 다 보더라도 왜 이룰란 공주가 영화를 여는 인물이 됐는지 알 수 없는데, 매 챕터마다 이룰란 공주의 저서 일부를 발췌한 원작 소설의 구성에서 기인한 듯하다. <듄>에선 폴의 꿈에 나오는 여성이자 아라키스 원주민 프레멘 챠니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폴과 황제, 첫 장면부터 다른 구성
영화 속 세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이어지는 장면은 <사구>와 <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듄>은 반복되는 꿈을 꾸다 깬 폴의 모습이 첫 장면이지만, <사구>는 황제가 길드(우주항해 조합)의 3차원 항해사에게 정치적 공작을 받는 과정이 첫 장면이다. 물론 <듄>에서도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란 암시는 꾸준히 하지만 <사구>처럼 대놓고 공작을 전시하진 않는다. 이 부분만큼 <사구>와 <듄>이 지향하는 지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차이점도 없다.
내레이션이 있는가 없는가
이처럼 두 작품의 차이를 또렷하게 보여준 연출은 내레이션의 유무다. <사구>에선 등장인물들이 속마음을 말하는 내레이션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반면 <듄>은 내레이션의 사용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물을 그리는 방식을 택했다. <사구>는 특유의 과장된 디자인과 내레이션이 더해져 꼭 연극에서 방백을 듣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일견 촌스럽게 보이지만 대신 인물간의 관계가 의뭉스럽지 않고 정확하게 묘사돼 관객 입장에선 <듄>보다 쉬운 장면도 있다. 예를 들면 베네 게세리트의 모히암 대모가 '박스 테스트' 후 폴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카인즈가 레토 아트레이데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등이 있다.
<사구>만의 오리지널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사구>를 보고 <듄>을 봤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의아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모듈'은 왜 안 나오나, 혹은 왜 나오나. <사구>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묘사한 모듈은 폴과 프레멘들에게 터닝 포인트를 주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지만, 사실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이다. 원작 소설에선 없는 부분. 때문에 <사구>를 봤다고 (원작 소설에 좀 더 가까운) <듄> 속편을 완벽하게 예습했다고 보긴 어렵다. 반대로 <듄> 속편이 궁금한데 원작 소설은 내키지 않는다면 큰 줄기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사구>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른 부분이 많을 테지만 결말은 알 수 있으니까. 참고로 <사구>에서 <듄>에 해당하는 내용은 약 1시간 30분까지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