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장르만 로맨스>

“아니, 그래서 정말 재밌나 봤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휴대전화 녹음 앱을 끄자마자 대뜸 질문이 시작됐다. <장르는 로맨스>에서 미애를 연기한 배우 오나라가 기자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고 답을 하던 배우가 기자에게 답을 요구하는 상황. 최선을 다해 연기한 작품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 인터뷰에서도 그 애정이 느껴지면 좋겠다.


출연을 결심하시기 전,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부분에 끌렸는지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딱 봤을 때 무슨 만화책 읽는 것처럼 술술 읽혔다. 그래서 첫 번째로 시나리오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는 내가 해야 할 캐릭터를 봤는데 관계 설정이 너무너무 재밌었다. 이혼한 전 남편 현(류승룡)과 아들 때문에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전 남편의 절친 순모(김희원)와 비밀 연애를 한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아들 성경(성유빈)과의 갈등도 있다. 미애는 전 남편, 전 남편의 절친, 아들과의 관계까지 다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망설이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던 것 같다.

미애라는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나.

오나라 하면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연기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약간 밝고 ‘텐션’ 높고. 그런 걸 살짝 제거하려고 했다. 뭔가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보다 한발 물러서는 기분으로. 워낙에 연기 잘하시는 베테랑 선배님들과 함께 하다 보니까 리액션하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전 작품들과는 다른 시크함을 표현하게 된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

촬영한 지 오래됐다. 2019년에 크랭크업했다. 기억이 잘 나는지….

첫 인터뷰에서는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계속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새록새록 그때의 감정들이 막 올라온다. 지금은 많이 기억이 난다. 그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마스크도 쓰지 않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첫 촬영이 어땠는지 말해줄 수 있나.

첫 촬영… 긴장됐다. 첫 촬영은 순모와의 비밀 여행을 떠나기 전 성경과 걸어가면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대사도 많고 빠르게 해야 하는 신이었다. 그때 어떻게 표현하면 약간 시크하고 뭔가 좀 독특한 매력의 미애를 표현할 수 있을까 감독님과 그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인터뷰하는 테이블 옆을 지나치는 조은지 감독을 보며) 어… 감독님 지나간다. (웃음)

배우 출신 감독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다고 혼자 추측해봤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배우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알고 있다.

내 추측이 빗나간 것 같다. 다른 면이 있나 보다.

그렇다. 배우들의 감정을 다 알고 계시니까 어떤 때는 뭔가 들킨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좋았던 건 배우들에게 디렉팅(연기 지시)을 할 때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스태프들이 못 듣게 살짝 뒤에서 얘기하는 식으로 배려를 해주셨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그렇다면 아주 편안한 현장이었을 것 같다.

감독님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또 여자들끼리의 그런 감이라는 게 있진 않나. 내가 어떤 걸 고민하고 있는지 감독님이 먼저 얘기해주면 나도 모르게 고해성사하듯이 얘기하게 되더라.

조은지 감독과 함께 류승룡, 김희원 배우 사이에서 연기를 했다. 두 배우 가운데 연기하기 편한 쪽은?

다른 뉘앙스로 모두 편했다. 그러니까 류승룡 선배님은 의지하고 싶은 남자다. 반면 김희원 선배님은 뭔가 챙겨주고 싶은 남자고. 각자 매력이 있고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분들이 대사를 툭 던지고 나는 리액션하고 대답만 했을 뿐인데 풍요롭게 그 신이 완성됐다.

그렇다면 실제 오나라가 더 끌리는 남자는 어느 쪽인가. (웃음)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잠깐만! 의지하고 싶냐, 챙겨주고 싶냐 그거잖아. (웃음)

극중 캐릭터에서 골라 달라.

아~ 그러면 정말 간단하다. 순모를 선택할 거다. 현은 문제투성이다. 일도 안 하고 바람도 피웠고. 순모는 나만 바라보는 지순한 남자에 또 감수성 있고 잘 챙겨준다. 약간 집착하는 면도 있고 계획성이 너무 투철해서 피곤한 면이 있지만.

미애가 극중에서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서 물어봤다. 두 배우와의 호흡은 완벽해 보였다.

상대 배우로서는 배울 점이 많았다. 류승룡 선배님은 진짜 무슨 물고기가 바다에서 막 헤엄치듯이 뭔가 풍요로운 연기를 한다. 나도 코믹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선배님에 비하면 아직 배울 게 많구나 느낀다. 애드리브도 버릴 게 없다. 테이크마다 다른 걸 보여주시는데 웃느라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경이롭다. 김희원 선배님도 재밌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템포의 대사가 나온다. 엇박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리듬의 대사를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재밌었다. 그때 ‘아, 연기가 이 맛이지’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 두 배우와 함께 한 적이 없었나.

예전에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류승룡 선배님이 연기한 장성기 집 문밖에서 촬영한 장면이었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그 장면 다시 봤다.

그때 사실은 꽤 길게 촬영했다. 감독님이 갑자기 뮤지컬을 원하셨다. 즉석에서 만든 노래를 1분 넘게? 한 2분 가까이 불렀다. 아리아 하나를 완창한 거다. 그게 편집이 돼서 아쉽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출연했지만 류승룡 선배님과 함께 연기를 한 건 아니다. 이번에 속 시원하게 선배님이랑 같이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과거 단역으로 나온 작품들은 찾아봤다. <김종욱 찾기>에서 공유와 함께 출연한 것도 봤는데 외모가 지금이랑 똑같더라. 역시 동안의 아이콘 같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동안의 비결은 아마 에너지 때문인 것 같다. 밝은 에너지를 부모님께서 물러주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다. 웃는 사람은 동안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외모가 안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데 (목소리를 낮추며) 사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웃음)

기본적인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건가.

어느 순간 내가 비주얼 배우가 돼가지고. (웃음) 예전에는 다이어트다 관리다 이런 걸 전혀 안 했다. 특히 뮤지컬 할 때는 체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쪽 매체로 넘어오면서 관리를 하게 되더라.

비주얼 배우 하니까 생각난다. <SKY 캐슬>의 그 ‘움짤’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천년 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정말 우연히 만들어진 진 거다. 예쁘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10번 정도 촬영 테이크는 갔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한 번 더 해보자 했을 때 염정아 선배님께서 제 머리끄덩이를 너무 많이 잡아주셔서, 예쁘게 풀어졌다. (웃음) 염정아 선배님 덕분에 만들어진 ‘천년줌’.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움짤’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장르는 로맨스>의 하이라이트는 오나라, 류현경, 류승룡, 김희원이 한데 모여서 싸우는 시퀀스다. 촬영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매우 더운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안 틀어주는 세트에서 리허설을 엄청 많이 했다. 재밌던 게 류현경 배우와 그날 처음 만났다. 그래서 약간 어색한 사이였는데 만나자마자 몸싸움을 하게 됐다. 그것도 하루 종일. 촬영이 계속되다 보니 몸이 기억을 하더라. 앞 장면과의 연결 때문에 동선, 위치가 중요한데 류현경 배우와 서로 머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던 위치로 자연스레 갈 수 있었다.

물론 배우에게 연기는 일이지만 그럴 때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은 힘들지만 뿌듯하고 보람 있고 이래서 연기를 하는구나 하는 그런 순간인 것 같다. 감정 연기도 좋지만 몸으로 뭔가 딱 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막 느껴진다. 쾌감이 엄청나게 크다.

<장르만 로맨스>에는 몸 말고 말의 맛도 상당하다. 특히 눈여겨본 장면이 김희원 배우와 자동차 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연기였다.

그 장면! 김희원 선배님과 나랑 모두 만족했던 장면이다. 특히 다투기 직전에 터널을 지나가면서 했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리허설도 많이 안 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다른 인터뷰 보니까 김희원 배우가 직접 운전을 하면서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

그렇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 만큼 운전했다. 연기를 하면서 운전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오히려 그래서 실제 같은 그런 느낌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앞에 봐”라는 대사가 진심으로 막 나오더라.

이렇게 호흡이 잘 맞아서 기억에 남는 좋은 장면 말고 정말 힘들었다거나 아쉬운 장면은 없나.

아… 있다. 힘든 게 아니라 아쉬운 장면이 하나 있다. 순모와 미애가 한강 변에서 블루스 춤을 추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편집됐다. 둘만 너무 행복해서 그 느낌이 영화 전체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됐다. 쿠키 영상이라도 넣었으면 했는데.

춤을 잘 추니까 그 장면이 편집된 건 아쉽다.

<라라랜드>처럼 춤을 춘 건 아니다. (웃음)

춤, <라라랜드> 이야기가 나오니 뮤지컬 영화에도 욕심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섭외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뮤지컬 배우 출신인데 당연히 출연하고 싶다. 뮤지컬 안 한 지가 10년 된 것 같다. 다시 무대에 서기엔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NG라는 좋은 점이 있는 영화에서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동시에 진행한)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시 <장르만 로맨스> 관련 질문을 해보자. 현과 함께 있던 미애가 “내 나이에 이정도면 괜찮지” 하면서 몸매를 자랑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어떻게 인상적이었는지. 아, 예뻐 보였나? (웃음)

그… 그렇다.

(주변 스태프들을 보며) 그럼, 성공. (웃음) 그 장면을 위해서 뭔가 더 노력한 건 없었다. 화장기 없이 그냥 집에서 편하게 있는 장면이라. 뭔가 예쁘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나리오에 없었던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개인적인 질문인데 <나의 아저씨>의 팬이라 그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SKY 캐슬> 출연을 결정한 계기가 <나의 아저씨>에서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한 6개월 동안 우울했다. ‘백만 송이의 장미’ 노래만 들으면 자동으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몰입을 했던 작품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찰나에 정반대 캐릭터의 작품이 들어온 거다. 함께 했던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좋았기 때문에 정희라는 캐릭터도 더 살았던 것 같다. 정희네라는 카페 회원이고 오프라인에서 회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분들은 성지 순례라고 하는데 지안(아이유)이 살던 파란 대문집, 기찻길 등 촬영지도 가고 그랬다. <나의 아저씨> 정희는 인생 캐릭터고 인생 작품이었던 것 같다.

<SKY 캐슬>과 <나의 아저씨> 두 작품 가운데 하나만 꼽자면.

<SKY 캐슬>도 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어떻게 하나만 고를 수 있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이다. 하나만 고르라면 <장르만 로맨스>를 선택하겠다. (웃음)

예전에 <D.P.>로 김성균 배우와 인터뷰 할 때,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대 <응답하라> 시리즈, 둘 중 선택하라고 질문했더니 “살려달라고” 하더라. 배우들은 자기 작품을 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당연하다. 매 작품 정말 혼신을 다해 애정을 쏟아붓기 때문에 이게 더 좋다라고 할 수 없다. 그전에 내가 주목받지 않았던 작품들도 나에겐 소중하다. 왜냐하면 짤막짤막하게 나왔던 그 역할을 보고 나를 캐스팅한 거니까. 그 작품을 못 했으면 이 작품을 못 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차기작 소개를 좀 해달라.

<환혼>이라는 홍자매 각본의 사극 드라마 촬영 중이고 <카운트>, <압구정 리포트>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장르만 로맨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사진 제공 스튜디오앤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