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이 <프렌치 디스패치>(2021)로 돌아왔다. 역시 대칭, 색, 화려한 출연진, 싱거운 듯 허를 찌르는 유머 그리고 디테일을 향한 그의 집념이 돋보이는 ‘웨스 앤더슨’ 다운 영화다. 앤더슨은 주로 피사체를 정중앙에 배치하는 구도를 선호해 관객의 시선도 중앙을 향하도록 한다. 하지만 프레임을 빈틈없이 꽉 채운 디테일은, 가장자리 구석구석 눈을 돌려 꼼꼼히 정보를 줍고 감탄하고 싶게 한다. 그의 작품 속 많은 세트는 단 몇 초면 지나갈 대사 한 문장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다름없이 정교히 설계되기에 이 짧은 장면을 일시 정지하고 천천히 탐험하고 싶게 한다.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의 대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판타스틱 Mr. 폭스>(2009)의 프로덕션 비하인드를 정리했다. 세트, 소품, 미니어처 등에 깃든 앤더슨의 고마운 강박을, 앵글 바깥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구경해 보자. 넘기기 아쉬울 <로얄 테넌바움>(2001) <다즐링 주식회사>(2007) <문라이즈 킹덤>(2012)의 메이킹 영상도 더했다.


프렌치 디스패치

앤더슨은 프랑스 남서부 작은 도시 앙굴렘을, 앙뉘쉐르블라제(Ennui-sur-Blasé)라는 이름의 꽤 이상한 가상의 도시로 바꿔놨다. 감독이 미국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프렌치 디스패치>는, 여러 섹션을 한 권으로 엮어낸 잡지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와 그가 만든 그 어떤 작품보다 반듯하게 짜였다. 여행 섹션의 단신 한 편과 예술, 정치, 음식 섹션의 기획 기사 세 편, ‘콘크리트 걸작’ ‘선언문 수정’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으로 구성된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다. 앙뉘를 배경으로 한 네 개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125개의 세트가 동원되었고, 이번에도 앤더슨과 <다즐링 주식회사>부터 함께한 아담 스톡하우젠이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다.


직접 올린 건물 위 메이킹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계단이 겉으로 보이는 이 건물과, 세 번째 에피소드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에 등장하는 유괴범의 아지트를 포함해, 많은 건물을 직접 올렸다.

스윈튼 남편이 그린 콘크리트 걸작 첫 에피소드 ‘콘크리트 걸작’은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예술 기자 J.K.L. 베렌슨이 썼다. 살인수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가 그린 거대한 추상 프레스코화 시리즈 ‘콘크리트 걸작’은 기사에 영감을 준 핵심 작품이다. 로젠탈러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은 틸다 스윈튼의 남편인 비주얼 아티스트 산드로 코프와 그의 팀이 앤더슨의 주문에 맞춰 그렸다. 참고로 코프는 <옥자>(2017) 등 스윈튼이 출연한 작품 속 그림을 종종 그려왔다.

쓰이지 않은 50가지 시안 젊은 로젠탈러(토니 레볼로리)의 그림도 코프의 팀에서 그렸다. 로젠탈러가 수감생활 11년 만에 처음 그린 ‘발가벗은 시몬, J동 취미실’은 마침 탈세 혐의로 옆 동에 갇힌 미술상 줄리안 카다지오(애드리언 브로디)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코프는 9가지 버전의 ‘발가벗은 시몬, J동 취미실’을 그려 앤더슨에게 보여줬다. 로젠탈러가 30초만에 휘갈겨 그렸다는 습작 ‘완벽한 참새’는 더했다. 50가지 시안을 가져갔는데, 결국 영화에는 코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린 것이 담겼다고.

벼룩시장 출신 소품 세트 데코레이터 레나 드안젤로는 소품을 모으기 위해 파리와 앙굴렘뿐만 아니라 보르도, 르망, 샤르트르 등 프랑스 전역을 반년 동안 돌아다녔다. 예산을 맞춰야 했기에 주로 골동품가게, 벼룩시장, 노점상을 둘러봤는데. 카다지오가 운영하는 삼촌과 조카 갤러리를 채운 가구들과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가 쓰던 프라이팬도 그렇게 찾았다고.

그래픽 디자이너 에리카 돈 영화 곳곳에 쓰인 각종 앙뉘 지도부터, 물병 라벨, 성냥갑, 냅킨, 카다지오의 전시 초대장, 미치미치의 배지… <개들의 섬>부터 앤더슨과 함께한 그래픽 디자이너, 에리카 돈의 손을 타지 않은 데가 없다. 링크에서 그가 만든 소품을 더 볼 수 있다.

샬라메 글씨체를 살려 넣은 선언문 두 번째 에피소드 ‘선언문 개정’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학생운동 리더 제피렐리는 선언문을 쓴다. 첫 등장 장면에서도 그는 욕조에 앉아 선언문에 담을 내용을 끄적이고 있다. 제피렐리가 쓰던 노트 역시 돈이 디자인했다. 돈은 샬라메가 A4용지에 직접 쓴 필기체를 바탕으로 노트를 재구성했는데. 노트가 물에 젖을까 봐 여러 권을 만들었다고.

앤더슨의 시그니처, 미니어처 두 편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판타스틱 Mr. 폭스> <개들의 섬>(2018))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거치며 미니어처 모형은 앤더슨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아담 스톡하우젠이 확대판 인형의 집과 같은 세트를 만들어낸다면, 세트의 축소판인 미니어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부터 감독과 협업한 시몬 와이즈 담당이다. 아주 짧은 설정숏을 위해 앤더슨은 종종 미니어처를 쓴다. 실물 크기의 세트와 모형을 섞어 쓰기도 하는데.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의 벨라폰테호을 떠올리는 캔자스와 앙뉘를 오가는 비행기가 그렇게 쓰였다. 객실 일부는 세트를 지어, 비행기 몸체 전체를 담을 때는 미니어처를 만들어 찍었다. ‘프렌치 디스패치’ 간판, 경사가 가파른 앙뉘의 높은 골목을 채운 화면 뒤편의 건물들 등 총 20개의 모형이 쓰였다.

미서부에서 쉽게 볼만한 사진 속 나무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데, 직접 만들어 썼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두 이야기를 오간다. 주인공 M.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의 연인이었던 마담 D.(틸다 스윈튼)의 사망 사건을 둘러싼 1932년 이야기와, 한때 로비보이였던 호텔 주인 제로(F. 머레이 아브라함)가 이를 젊은 작가(주드 로)에게 들려주는 1968년의 이야기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건이 호텔에서 일어난다. 앤더슨은 유럽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오래됐지만 여전히 멋있는 빈 호텔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그런 곳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대신 거대한 아트리움이 있는 그럴듯한 빈 백화점을 찾았다. 앤더슨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만의 호텔을, 독일 동부의 작은 도시 괴를리츠에 직접 지었다. 아담 스톡하우젠이 프로덕션 디자인을 책임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숨은 공신 앞서 말했듯 이제 미니어처 모형은 앤더슨의 시그니처다. 그의 연출작이라면 영화를 보면서도 동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 또 다른 이유가 미니어처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텔의 외관을 비롯해, M.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와 제로(토니 레볼로리)가 서지X(마티유 아말릭)를 찾으려 가로지르는 설산의 건물들을 담은 장면에 모두 모형을 사용했다. 작품을 본 많은 이들에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호텔의 외관일 테니, 미니어처는 가히 이 영화의 숨은 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톡하우젠이 그린 컨셉 아트를 토대로 와이즈의 팀이 만들었다.

낡은 백화점을 호텔로 외관은 미니어처였다. 내부는 1913년 개장해 2010년 폐장한 5층짜리 낡은 백화점을 개조해 만들었다. 주황빛의 1968년 호텔 장면을 먼저 찍고, 일주일만에 빨간빛의 1932년 호텔로 다시 한번 인테리어를 바꿨다. 바닥에 깔린 호텔을 채운 카펫부터 모든 패브릭을 수작업으로 만들었고 가구 역시 골동품이다. 괴를리츠가 있는 독일 동부를 비롯해, 함부르크, 뮌헨, 비엔나, 프라하, 런던 등 유럽 곳곳을 뒤져서 소품을 구했다.

직접 연기 시범 보이는 앤더슨 언제나 오차 없이 정확한 화면을 구사하는 감독답게 아주 세세한 디렉팅으로도 유명하지만, 연기를 직접 선보이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본인이 대본을 읽은 후 배우에게 구체적으로 연기를 주문한다.

사과를 든 소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마담 D.가 M. 구스타브에게 남긴 16세기 거장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작품 ‘사과를 든 소년’을 둘러싼 추격전이다. 이 문제의 명화는 실제로 수세기 된 작품이 아니다. 2013년 영화를 위해 영국 화가 마이클 테일러가 에드 먼로라는 소년을 그린 것이다. 먼로는 런던 코벤트 가든의 한 댄스 교습소에 다니다가, 어떤 영화감독이 발레를 할 것 같은 금발의 소년을 찾는다는 공고를 봤다. 그는 감독의 이름과 영화에 대해서는 모른 채로 캐스팅되었고, 이후 그가 할 일이 초상화 모델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모델은 벨벳 자켓, 퍼 자켓, 타이츠 등 갖가지 옷을 조합한 약 50개의 룩을 입어 봐야 했고, 화가는 아이디어 구상부터 앤더슨에게 최종적으로 그림을 전달하기까지 넉달을 썼다고. 앤더슨은 둘을 영화의 프리미어에 초대했다.

이 장면은 달리 트랙 위에 간이 창문을 만들어 찍었다.


판타스틱 Mr. 폭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유명한 로알드 달의 소설 ‘판타스틱 Mr. 폭스’는 소년 웨스 앤더슨이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책이었다. 그는 그의 첫 책을 첫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골랐고, CGI 대신 다소 손이 많이 가는 전통적인 방식을 택했다. 미스터 폭스(조지 클루니)와 마을 농장주들의 대립은 재치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영화화됐다. 영화에 나오는 모습을 한 첫 퍼펫(인형) 제작에만 7개월이 소요됐고 총 535개를 만들었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약 5만6천 개의 숏으로 구성됐다.


로알드 달, 조지 클루니를 섞은 미스터 폭스 펠리시 헤이모즈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다. 앤더슨은 디자이너에게, 로알드 달과 영국 배우 렉스 해리슨, 미스터 폭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를 섞은 이미지로 미스터 폭스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랫(윌렘 대포)의 경우 첫 번째 스케치가 곧 최종 스케치가 되었지만, 보통 캐릭터당 15가지 시안을 그려내야 했다고.

사람 같은 퍼펫 닉 파크의 <치킨 런>(2000)과 팀 버튼의 <유령 신부>(2005)에 참여한 이안 맥킨넌과 피터 선더스 듀오가, 헤이모즈의 디자인을 퍼펫으로 만들었다. 앤더슨은 <판타스틱 Mr. 폭스>의 여우들을 사람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덕에 퍼펫들은 사람처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관절을 대부분 가졌다. 특히 얼굴 근육에 신경 썼는데. 눈썹을 자유롭게 올리거나 내리거나 꺾을 수 있도록 했고, 입술 아래도 작은 틈을 만들어 말소리마다 입 모양을 달리 구사하게 했다. 퍼펫은 다양한 크기의 숏에 사용할 수 있게끔 기본, 마이크로, 미니 마이크로 사이즈 등 여러 사이즈로 제작됐다.

직원 머리카락 뽑아 만든 털 인조 털, 장난감에서 뽑아 모은 털, 염소 털을 염색해 사용했다. 사람 캐릭터의 경우, 퍼펫 제작사 직원들의 머리카락을 뽑아 썼다.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다가 쓸 만한 색의 머리카락을 한 직원이 보이면 다가가 뽑았다고.

앤더슨 코스튬을 입은 폭스 미스터 폭스를 보면 앤더슨이 떠오른다. 물론 코스튬 때문이다. 앤더슨은 따뜻한 톤의 수트를 즐겨 입는다. 폭스의 의상은 앤더슨의 것을 그대로 축소한 옷이다. 실제로 앤더슨은 그의 코듀로이 바지를 퍼펫 제작자에게 보내 같은 색의 수트를 만들게 했고, 단추 하나하나 직접 골랐다고.

애쉬(제이슨 슈왈츠먼)의 침실 장면: 1. 웨스 앤더슨의 스케치 2. 툴로 그리핀의 컨셉 아트 3. <판타스틱 Mr. 폭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