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 8>과 드라마 <마더>를 통해 불쑥 나타나 시청자의 마음을 두드린 손석구는 <60일, 지정 생존자> <멜로가 체질> <D.P.> 등을 거치며 개성 강한 캐릭터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히 메워왔다.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어느 작품에서든 돋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그라, <연애 빠진 로맨스>가 첫 장편 영화 주연작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고 말았다.

전작에서 뜻밖의 포인트로 시청자의 심쿵 지수를 높여왔던 그가 이번엔 처음으로 마주하는 ‘찐’ 사랑의 감정에 휘말려 갈팡질팡하는 연애 쑥맥 박우리로 변신해 겨울 관객을 찾는다. 연애 상대로서 어설픈 모습만 연이어 보이던 우리가 꽤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 캐릭터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엔 손석구 배우 본연의 매력 덕이 컸을 터. <연애 빠진 로맨스>를 시작으로 <언프레임드> <나의 해방일지> <범죄도시2>까지 꾸준히 관객과의 만남이 예정되어있는 손석구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손석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자신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첫 장편 주연작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어제 지인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했는데, 엄청 많이 떨렸다. 개인적으로 가족에게 처음으로 주연작을 공개하는 데 대한 환상을 무척 크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무대 인사 멘트도 멋있게 하고 싶었는데, 떨려서 좀 망했다.(웃음) 그래도 영화를 보며 지인들이 진심으로 웃는 소리를 들으니 걱정은 사라졌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좋은 경험이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익숙하고 친근한 이야기에 정가영 감독님 스타일의 캐릭터와 대사를 결합시켰다. 정가영 감독님의 개성과 상업성이 50 대 50으로 담겨있었던 것 같다. 정가영 감독님의 영화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랄까? 영리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많이 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원래 정가영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했다.

자영과 첫 데이트를 할 때 우리가 입었던 ‘만추 코트’

데이팅 앱을 통해 처음 만난 자영과 우리는 데이트를 거듭하며 연애 빠진 연인 사이가 되어간다. 자영과 우리의 심리적 거리를 차차 좁혀가는 것 역시 중요했을 텐데. 첫 촬영은 어떤 장면이었는지 기억나나.

자영과 우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촬영장 가는 길에 감독님, 종서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떨린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하면서. 그런데 그 장면은 재촬영했다. 자영과 우리는 헌혈차 앞에서 만나지 않나. 원래 시나리오에선 다른 곳이었는데, 감독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셔서 첫 만남의 장소가 바뀌었다. 당시엔 처음 합을 맞추다 보니, 우리 모두 성에 안 찼던 것 같다. 팀 전체가 이 장면은 나중에 재촬영하자고 이야기했다.

자영과의 첫 만남에서 입고 나오는 우리의 ‘만추 코트’가 특히 인상 깊어 물어보려던 장면이었다. 같이 영화를 본 동료 기자들도 만추 코트 장면에서 빵 터졌다더라. 원래 자영과 우리의 첫 만남 장소는 어디였나.

시나리오에선 자영과 우리가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만난다고 쓰여있었다. <만추>에서 현빈 선배님이 감옥에서 잠시 나온 애나(탕웨이)를 만나지 않나. 우리는 자영이 서대문에서 만나자고 하니 현빈 코트를 입고 나름의 컨셉을 잡아 나간 거다.(일동 웃음) 개인적으로 이 의상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컨셉이 바뀐 거지! 개인적으론 우리가 안 어울리는 의상을 입고 자영과의 첫 만남에 나가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자영이 우리에게 “<만추> 현빈 컨셉이에요?”라고 말하는 대사를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우리가 겸연쩍어하는 모습이라도 넣어달라고, 안 그러면 내 캐릭터 무너져서 안 된다고.(웃음) 사실 필요한 대사는 아니라 편집 과정에서 삭제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장면을 살려주셨더라.

전종서 배우와 함께 의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손석구 배우 역시 실제 본인의 옷을 입고 출연했나.

맞다. 의상 피팅할 땐 무조건 종서 배우와 함께했다. 놀이동산 신에서도 그렇고, 장면마다 두 캐릭터의 컨셉이 비슷하다. 종서 배우의 의견을 많이 구했다.

씨네플레이의 영상 인터뷰에서 전종서 배우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대답하며 웃음을 참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어떤 기억이 떠올라 그렇게 많이 웃었던 건가.(웃음)

종서 배우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개인적으로 즉흥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최대한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는 다 같이 만드는 거니까, 특히 더 신경 써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아마 종서 배우는 힘들었을 수도 있을 거다. 진짜 사소한 걸 물어봤거든. 의상 피팅할 때, 이 장면에서 바지 걷을까, 내릴까. 이런 걸 물어봤다.(웃음) 그런 현장이 떠올라 쑥스러워서 웃었다. 박우리는 거의 정가영 감독님과 종서 배우가 만든 캐릭터다.

편집장의 지시를 소화해야 하는 기자이기 전, 우리는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을 해봐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일 텐데 그마저도 죄책감에 뒤엉키고 만다. 칼럼을 쓰기 위해 자영과 연애 빠진 로맨스를 시작한다는 설정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텐데. 우리를 연기하며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뒀나.

사랑에 있어선 진심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하고 칼럼을 쓰는 건 주변 인물들에 의한 타의적인 선택, 결정이지만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만은 우리 내면의 진심이니까. 칼럼은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작사, PD님과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함께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개인적으론 캐릭터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우리의 본심이 무해하다는 걸 알리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이런 지점들을 많이 고민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진로에 있어서도 길을 잃은 20대 후반 30대 초반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내 공감을 더한다. 2011년 대학로에서 연극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더라. 작품을 하며 그 시절을 떠올렸을까 추측해 봤다.

촬영하면서 당시 기억을 많이 떠올렸다. 이런 생각도 했다. 2011년의 내가 자영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럼 나는 박우리처럼 용기 있게 자영에게 다가설 수 있었을까? 실제의 나라면 못했을 것 같다.

손석구 배우의 본체는 박우리보다 쑥스러움이 많은 건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쑥스러움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나 같이 별 볼 일 없는 놈이…라는 생각을.(웃음) 우리와 닮은 점이라면, 나도 그렇게 어리바리한 것 같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닮았다.

<마더> <멜로가 체질> <뺑반> 등에 이어 <연애 빠진 로맨스>까지.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면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선 작품에 꾸준히 출연해왔고, 그런 작품에서 특히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한때 극장에 걸린 작품들을 보며 남성 영화의 비중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대로 그에 반하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온다면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런 시나리오를 보면 확실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요즘엔 플랫폼이 많아져서. 다양한 주제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편집장을 연기한 김재화

전종서 배우 외 다양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 배우의 이런 면을 흡수하고 싶다, 함께 연기하며 감탄했던 배우가 있었다면?

김재화 선배님 연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배우라면 당연히 캐릭터에 이입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못하거나 안 하는 배우도 많을 거다. 연기하다 보면 가끔씩 현실의 나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김재화 선배님에게 캐릭터 외부의 것들은 일절 상관이 없더라. 선배님처럼 연기하는 분들은 작품마다 굉장히 달라 보이신다. 영화를 위한 헌신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정말 멋있고, 동경하는 배우다.

최마초를 연기한 임성재

최마초로 등장하는 성재는 ‘저 배우처럼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친구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통역관 역으로 등장한 한 장면을 보고, 영화에 출연한 최희서 배우에게 임성재 배우를 소개해달라 부탁했고, 그를 감독님에게 소개해드렸다. 이후 그 친구가 <자산어보>에도 출연했다. <자산어보>를 보고, 얼마 전 촬영한 단편 영화 <재방송>에 임성재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임성재 배우의 연기는 정말 리얼하다. 어떤 상황이든 굉장한 몰입감을 전한다. 제가 추구하는 연기 스타일과 너무 잘 맞더라. <자산어보>에서 보면, 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생활 연기를 사실적으로 하는 배우는 많은데, 임성재 배우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연기를 실제처럼 해내더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엄청난 노력을 들이더라. 임성재 배우를 보며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치하지만 영화 속 인상 깊은 대사를 인용해 질문해 본다. 배우로서 관객이 본인의 매력에 끌릴 것 같나.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매우 아니다 중에 골라줄 수 있나.

매우 그렇다.(웃음) 전엔 안 그랬는데, 어제 시사회에서 지인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색하게 보지 않고 재미있게 봐주시니 객관적인 데이터가 생긴 느낌이랄까.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되겠다, 이런 믿음이 생겼다.

넷플릭스 <D.P.> 이후 김은희 작가의 신작 <지리산>으로 돌아왔고, <연애 빠진 로맨스>에 이어 내년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봉 예정인 <범죄도시2>에도 출연했고. 올해 말엔 <언프레임드>의 단편 <재방송>을 연출한 감독으로도 관객을 찾는다. 데뷔 이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지금 이 시기 배우로서 지닌 목표나 다짐이 있다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 많지만, 그간 많은 촬영장을 다니긴 했다. 신작들이 공개될 즘엔… 워라밸이라고 하지 않나. 잘 맞춰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너무 이른 걱정과 고민일 수 있지만, 그래야 나도 나를 안 식상해 할 것 같고, 보는 사람들도 안 식상해 하실 것 같다. 지금부터 그런 생각을 조금씩 한다. 쉴 땐 쉬어야겠다고. 워라밸은 매우 중요하니까.(웃음)

관객에게 <연애 빠진 로맨스>가 어떤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나.

꾸미지 않은 영화. 솔직 발랄, 솔직 발칙한 영화. 이미 보신 분들은 그렇게 평을 하고 계시더라. 저도 그 평에 동감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인데, 혹시 평양냉면을 좋아하나.

엄청 좋아한다. 어제 시사회 가기 전에 PD님이 밥을 먹자고 해서 갔는데 평양냉면을 사주시더라. 나름의 이벤트였나. (웃음) 개인적으론 강남구청역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평양냉면 가게를 자주 찾는다. 어복쟁반이 정말 맛있다. 완전 제 스타일이다.


글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사진 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