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구축한 웨스 앤더슨의 10번째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가 개봉했다. 주류 상업영화의 결을 따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북미에서 코로나19 이후 개봉된 영화들 중 극장 스크린당 최고 수익을 기록한 이 작품은 변함없이 전형적인 웨스 앤더슨표 대칭적이고 꼼꼼한 미장센과 인공적인 연기, 파스텔 톤의 색감과 독특한 상상력의 패치워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제74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돼 호평 받았고, 다가올 오스카를 비롯한 시상식 시즌에서도 분명 언급될 이 신작은 이제 중견으로 올라선 씨네 아티스트의 소신과 이상을 충실히 대변한다. 68혁명이 일어났을 즈음 프랑스 가상의 마을 '앙뉘 쉬르 블라제'를 배경으로 '더 프렌치 디스패치 오브 리버티, 캔자닝 이브닝 선'이란 잡지의 종간호를 만드는 여러 인물군상들을 잡지 섹션마냥 스케치해가는 영화는 옛것에 대한 향수와 예술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저널리스트들과 그들이 취재하는 4가지 특종 속 인물들과 배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130개에 가까운 다양한 세트와 부쩍 늘어난 흑백 시퀀스 그리고 미니어처와 애니메이션 삽입 등 다채로운 시각적 스타일로 자신이 그토록 경배하던 잡지(뉴요커)의 영상화를 색다르게 시도해냈다. 거기에 프랜시스 맥도먼드, 오웬 윌슨,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베네치오 델 토로, 레아 세이두, 애드리언 브로디, 마티유 아말릭, 티모시 샬라메, 제프리 라이트, 리브 슈라이버, 크리스토프 발츠, 시얼샤 로넌, 윌렘 대포, 에드워드 노튼, 나레이션을 맡은 안젤리카 휴스톤까지 여느 때처럼 쟁쟁하기 이를 데 없는 출연진의 명단은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깨알같이 즐길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모든 웨스 앤더슨 작품의 촬영을 맡은 로버트 D. 예먼과 앤드류 웨이스브럼의 편집, 아담 스톡하우젠의 미술 등 계속 호흡을 맞춰온 스태프진들의 합류도 안정적이다.


웨스 앤더슨의 두 번째 음악적 동반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왼쪽부터) 웨스 앤더슨,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물론 당연히 음악을 맡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다즐링 주식회사>까지 다섯 편을 뉴웨이브 밴드 데보 출신이자 영화음악가인 마크 마더스보우와 함께 했던 웨스 앤더슨은 처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장르에 도전했던 <판타스틱 Mr. 폭스>부터 분위기를 일신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새 파트너로 맞아 지금껏 호흡을 이어오며 영광을 함께 해왔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2006년부터 7번 후보에만 오르던 데스플라에게 7전 8기만에 첫 오스카 음악상을 안기기도 했다. <판타스틱 Mr. 폭스>와 <문라이즈 킹덤>으로 확고하게 웨스 앤더슨과의 음악적 스타일의 합을 정교하게 맞춘 데스플라는 <개들의 섬>을 거쳐 이번 작품까지 소박하면서도 특유의 양식화된 음악으로 귀엽고 엉뚱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웨스 앤더슨 월드의 사운드를 확고하게 책임지고 있다.

사실 데스플라는 90년대 자국인 프랑스에서 자크 오디아르를 비롯해 여러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영미권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발굴(!)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2000년대 중반 드뷔시와 라벨에게 영향을 받은 클래시컬하면서 미니멀한 소품 <진주목걸이를 한 소녀>와 <탄생>으로 드디어 본격적인 할리우드 러브콜을 받은 그는 <호스티지>나 <시리아나>, <파이어월>같은 장르물을 거쳐 <더 퀸>과 <페인티드 베일>, <색, 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이 연이어 터지며 빠르게 주류에 편입됐다. 2000년대 이후 오스카에서만 11번 후보로 지명되며 15번 후보에 오른 거장 존 윌리엄스의 뒤를 이어 최다 지명일 정도로 자신의 실력을 확고하게 입증한 셈이다. 다작과 함께 퀄리티를 보장하는 신속하고 깔끔한 솜씨는 웨스 앤더슨 외 길예르모 델 토로나 조지 클루니, 로만 폴란스키, 스티븐 프리어스 등 여러 감독들이 선호하는 인기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사티와 몽크에게서 영향 받은 소박하고 장난스런 스코어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와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25년간 웨스 앤더슨과 함께 한 음악 슈퍼바이저 랜달 포스터는 이번 <프렌치 디스패치>의 대본을 가장 먼저 읽은 사람 중 하나였다. 감독의 독특한 시각으로 가공된 과거 프랑스를 무대로 삼고 있기에 프랑스 출신인 데스플라에겐 더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기사들이나 배경이 마치 60년대 엽서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수수한 공간과도 같아 거대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풍부한 앙상블 대신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소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선택된 게 피아노 솔로였고, 과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이미 작업한 바 있는 자신의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이브 티보데에게 피아노 파트를 부탁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에릭 사티의 초기 미니멀한 작품들과 델로니우스 몽크의 재즈에서 초현실적인 프랑스 색채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피아노를 메인으로 하프, 팀파니, 바순 또는 튜바와 밴조, 하프시코드 등 독특한 악기들을 짝지어 기묘한 분위기의 동화스럽고 복고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키치적이면서 엉뚱한 흐름은 보다 점잖아지고 클래시컬해진 마크 마더스보우를 만나는 느낌이고, 조금 밝고 대중화된 마이클 니먼스럽기도 하다. 르네상스적 풍미를 지닌 데스플라의 스코어는 조르쥬 들르뤼나 니노 로타, 모리스 자르 등 선배들의 고전 문법과 전통을 따르면서 절묘하게 웨스 앤더슨의 모던한 색채에 조화되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유머스럽고 잡지를 보듯 독보적인 레이아웃의 영상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고도로 경직된 스타일의 연출과 캐리커처처럼 다뤄지는 연기에 자칫 갑갑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데스플라의 음악이 여유와 긴장의 완급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해준다. 다만 아쉽게도 후반으로 갈수록(특히 "경찰서장의 전용식당"에선) 전작들과 달리 단조롭고 반복적인 뉘앙스가 자주 감지되는데, 이를 잘 메워주는 건 다양한 삽입곡들 덕분이다.


다채로운 프렌치 팝과 고전 영화음악들의 조화

이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와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개들의 섬> 등 전작들에서도 적절한 노래들과 기존 영화음악들로 재미를 봤던 웨스 앤더슨과 랜달 포스터는 허구를 넘어 실제 잡지 기사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무대가 되는 그 시절 프렌치 팝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각 섹션 중에서도 공간과 역사를 탐색하는 르포 "자전거를 탄 기자"와 시대적 배경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선언문 개정"에 주로 많은 삽입곡들을 배치했다. 오웬 윌슨이 달라진 시대와 공간을 소개하는 몽타주 화면에 프랑스의 아코디언 연주자 거스 비세르의 "Fiasco"를 시작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작품번호 331번: 1악장 주제곡과 6개의 변주곡, 안단테 그라지오소"를 기타와 만돌린으로 편곡한 버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영화음악가 마리오 나스침베네의 1964년도 영화 <미스터리의 향기>의 경쾌한 테마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에드리안 브로디와 베네치오 델 토로, 레아 세이두, 틸다 스윈튼이 주축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걸작"에선 검열시대 전 할리우드 프리코드 시대 만들어진 1930년대 로맨틱 코미디 <새디 맥키>에 삽입된 "After You've Gone"이 잠깐 젊은 시절 스케치에 흘러나온다. 68혁명을 암시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가 주축이 되는 "선언문 개정"에는 복고 지향적이고 시대적 뉘앙스를 전달하는 곡들이 눈에 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은 1964년 몬도가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말라몬도> 주제가 "L'ultima volta"를 필두로, 배우이자 가수로 유명한 샹탈 고야의 "Tu m'as trop menti"로 통통 튀는 청춘의 상큼함을, 프랑스를 대표하는 샤를 아즈나부르가 부른 "J'en déduis que je t'aime"로 혁명 속 본질이 되는 사랑에 대해 암시한다.

거기에 마법의 하모니로 유명한 스윙글 싱어즈가 스윙 재즈 방식의 아카펠라로 편곡한 바흐의 "평균율 푸가 2번 (BWV 871)"를 비롯해, <판타스틱 Mr. 폭스>에서 성우로도 나왔던 자비스 코커가 영화 속 가상의 가수 팁탑(Tip-Top)으로 부른 설정의 노래 "Aline"도 뚜렷한 존재감을 피력한다. 원곡은 코로나19로 작년 4월 타계한 프랑스 가수 크리스토프가 1965년에 불러 히트한 노래였다. 그 외에 데스플라에게 큰 영향을 끼친 조르주 들르뤼의 1971년도 영화 <카운트다운>(Comptes à rebours)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다지오"도 삽입됐고,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에 자메이카 출신의 모델이자 배우이고 가수인 그레이스 존스가 가사를 붙인 1981년 히트곡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도 빼놓을 수 없다. 해리슨 포드가 나왔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실종자>에서도 인상적으로 쓰였던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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