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 연말 극장가가 더 알차졌다.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한 2016년 이후, 연말마다 거장의 작품이나 기대작을 극장에도 개봉하기 때문이다. 2018년 <로마>, 2019년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2020년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힐빌리의 노래> <맹크>가 있었듯 2021년엔 <더 하더 데이 폴>부터 <돈 룩 업>까지 6편의 영화를 공개하고 있다. 11월 17일에 개봉하고 12월 1일에 공개한 <파워 오브 도그>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해 넷플릭스의 업적을 하나 경신했다. 제목만 봐서는 스토리조차 쉽게 상상되지 않는 <파워 오브 도그>를 핵심 포인트와 비하인드스토리를 섞어 소개한다.


1925년, 미국 몬타나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빌 버뱅크와 조지 버뱅크 형제. 어느 날 빌은 레스토랑에서 청년 피터를 조롱하고, 아들 피터가 조롱당하는 모습을 본 과부 로즈를 조지가 위로해 준다. 그렇게 가까워진 조지와 로즈는 곧 결혼에 성공하고, 피터는 대학에 입학해 엄마 곁을 떠난다. 조지 부부와 함께 살게 된 빌. 빌은 로즈를 대놓고 무시하며 그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그러던 중 여름방학을 맞이한 피터가 버뱅크 형제의 집으로 찾아온다.


고국으로 온 거장 파워

토마스 새비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 미국이 배경이지만 실제 촬영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고향 뉴질랜드에서 진행했다. 그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한 넷플릭스지만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영화는 <파워 오브 도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촬영 또한 순탄하지 않았는데 2020년 1월경에 촬영을 시작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6월까지 촬영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팬데믹이 조금 잠잠해진 후 마저 촬영하며 그래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파워 오브 도그>는 문학적인 메타포와 영상미학이 결합된 형태의 섬세한 스릴러로 완성됐다. 개척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빌과 그의 시선 아래 놓인 로즈-피터 모자간의 위태로운 심리전이 관객을 죄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곳곳에 숨긴 복선을 회수하는 치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물들을 둘러싼 광활한 자연, 공간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 안정적으로 보이나 미세한 균열을 촉발하는 앵글 등 영상미 또한 스토리와 호응하며 제인 캠피온의 인장이 뚜렷한 우아한 스릴러로 조합된다. 우아한 멜로디와 통념을 파괴하는 불협화음을 오가는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도 그 모든 연출의 방점을 찍는다.


“대화도 안했다”는 배우들의 열연

빌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로즈 역의 커스틴 던스트

영화의 주역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트, 코디 스밋 맥피 네 배우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기력을 입증한다. 특히 빌을 연기한 컴버배치와 로즈를 맡은 던스트는 두 캐릭터의 관계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는데, 마치 그 일화를 증명하듯 경멸과 공포의 눈빛이 스크린에서 빛을 발한다. 컴버배치는 극중 자주 언급되는 빌의 특징, 골초에다 잘 씻지 않는 성격을 경험하고자 실제로 2주 동안 씻지 않고 촬영 때 줄담배를 피웠다. 원래 흡연자였음에도 빌만큼 골초는 아니었던 컴버배치는 촬영 도중 니코틴 중독 판정까지 받았는데, 그런 각고의 노력은 영화 초반부터 빌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증명된다. 농장주로서는 분명 듬직하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상대를 깔보는 태도는 단순 불쾌감 이상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그의 나약한 모습은 빌이란 인간을 통해 영화의 다채로운 시각을 만들어준다.

부부로 출연한 제시 플레먼스(왼쪽)과 커스틴 던스트

영화 초반에 부부가 되는 로즈와 조지는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커플인데,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사실혼 관계이다. 원래는 커플인 두 배우를 노린 캐스팅이 아니었다. 제인 캠피온은 예전부터 커스틴 던스트의 팬이긴 했으나 로즈 역엔 <탑 오브 더 레이크> 때 함께 호흡을 맞췄던 엘리자베스 모스를 캐스팅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모스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신작과 일정이 맞물리며 하차해 그 자리가 커스틴 던스트에게 돌아간 것. 재밌게도 조지 역 또한 처음엔 폴 다노가 캐스팅됐다. 하지만 <더 배트맨>의 촬영이 길어지면서 일정 조율을 할 수 없게 됐고 제시 플레먼스에게 조지 역이 돌아갔다. 이렇게 우연치 않은 캐스팅의 연속이었으나 실제 커플인 두 배우의 분위기는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무척 견고한 관계를 보여준다.


칸을 포기하고 베니스를 선택한 결과

서두에 언급했듯 <파워 오브 도그>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2018년 <로마>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최고의 쾌거이자, 제인 캠피온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과 나란히 할 만한 성과이다. 사실 <파워 오브 도그>는 칸영화제의 제안을 먼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극장 개봉만을 고수하는 칸영화제는 <파워 오브 도그>를 비경쟁 부문 초청을 제안했고, 넷플릭스는 OTT 공개를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이니 이 제안을 거절하고 차라리 베니스영화제 출품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그동안 넷플릭스와 우호적이었던) 베니스영화제는 다시 한번 넷플릭스 영화에 주요 상을 시상했고, 넷플릭스는 이번에도 문화 영향력을 과시하게 됐다. 덧붙이자면 제인 캠피온은 (<패왕별희> 천 카이거와 공동 수상이긴 하나) <피아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유일한 여성 감독이며, 올해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는 제인 캠피온 이후 28년 만의 여성 수상자라고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