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섹시한 남자의 상징으로, 누군가에겐 소년미의 원석으로 기억되는 배우 유태오가 첫 연출작 <로그 인 벨지움>을 들고 감독으로 돌아왔다. 마치 그에게 붙은 수식어 ‘섹시빌런’과 ‘소년미’의 모순을 반영하듯,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영상 실험물 같은 <로그 인 벨지움>은 타국에 홀로 남겨진 유태오의 생존기를 써내려간다. 모두의 생활을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고민을 영화로 승화시키며 그 시간을 결과물로 남겼다. 유태오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고 남기게 됐을까. 지난 11월 23일, 용산의 한 극장에서 유태오 감독을 만나 <로그 인 벨지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런 작품을 보고 나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먼저 묻고 싶다.

최근에는 바쁘게 보내고 있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날 작품에 캐스팅하고 싶어해서, 이번에 미국에 가서 영화 한 편 찍고, 곧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돼 너무 감사하다. 사실 요새 항상 시간에 쫓길 만큼 준비가 부족하나… 라는 두려움 안에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 같다.

우연한 계기로 찍은 작품(유태오는 해외 드라마 촬영 중 코로나19로 촬영이 중단돼 홀로 벨기에에 남았다)이지만 삼각대 같은 장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작품으로 보인다. 이런 작품을 만들려고 생각했나? 촬영장에 이런 장비를 가져간 이유가 궁금하다.

그런 건 아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오디션이 들어올 수 있어서 삼각대나 조명을 가지고 다닌다. 해외여행할 때 장비를 놓고 가면 그때 오디션이 들어오더라. <서울 캠프 1986>이란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는데 그 이후부터 해외에서 오디션이 들어왔다. 6년 정도 꾸준히 오디션을 보면서 살아왔다. <레토>도 그래서 캐스팅된 거고. 여행할 때 어디서나 언제든지 오디션 영상을 찍을 수 있게끔 준비물을 가지고 다닌다. 작은 이동식 삼각대나, 요즘 LED 조명 잘 나오니까 작은 거 한두 개랑 핸드폰하고 그렇게 들고 다닌다.

영화 도입부는 차이밍량 감독을 인용하고, 엔딩은 <베를린 천사의 시>를 오마주한다.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숨겨놓은 것들이 있다면?

사실 숨겨놓은 거 아니고 대놓고 얘기하는 거다. 이스터에그라던가, 쿠키라던가, 영화 레퍼런스를 찾으시려면 많다. 백남준 작품을 아시는 분들은 그런 요소들을 알 수도 있고. <접속>이란 영화에서 처음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한강변을 비추는데 그 느낌을 살짝 따라 하려고 핸드폰으로 인포커스, 아웃포커스 하며 찍으려고 했다. 영화에서 내가 한국말을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소리 자체는 못 알아듣지만 소리가 친밀하게 느껴지고 감수성을 이해했고 통한다는 걸 사춘기 때부터 느꼈다. 그래서 내 영화도, 외국어를 쓰는 장면의 자막 때문에 내용은 알지만,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 그 감수성을 느껴야 한다. 영화 매체의 그런 부분을 항상 시적으로 느꼈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면 천사가 시를 읊으면서 시작한다. 그 시의 자막을 볼 때, 묘한 기분이 있다. 그런 요소를 일부러 썼다.

영화에서 ‘아낌없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른 언어에서도 좋아하는 단어가 있는지.

최근 우리나라 말에선 ‘인연’이 그런 단어인 거 같다. 독일어를 썼을 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살짝 사르카즘(Sarcasme, 풍자)에 관한 얘기인데, 슬랩스틱 코미디에 관한 요소도 있고. 사고로 아프거나 다쳤는데 그 모습이 어이 없어서 웃기는 것을 말한다. 샤덴이 사고, 프로이드는 즐겁다는 뜻인데 그 조합이 재밌다. 영어는 ‘벌너러빌리티’(Vulnerability, 취약성), 진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같다. 한국말로 긍정적으로 민낯을 드러내다라는 말을 쓰는데 내 머리에선 이 단어를 적합하게 번역한 단어가 이 표현이다. 깨질 만큼 나약하다는 말도 될 수 있는데, 부정적인 표현이다. 우리나라 말에서도 민낯을 드러낸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썼던 거고. 요즘 찾아보니 거기에 관한 긍정적인 단어가 없더라. 신기했다. 자기 본모습을 드러낸다… 는 의미가.

우리나라 말에선 솔직하다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이번 영화의 제목은 언제쯤 정했나?

편집이 다 끝나고서 정했다.

깔끔하면서 정확한 제목인 것 같다.

감사하다. 니키한테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음)

(아내 니키 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언급되었다. (웃음)

니키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결과를 낸다. 당시 제가 전달하고 싶은 단어는 ‘기록록’이란 거였다. <스타 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볼 때 장 뤽 피카르(패트릭 스튜어트) 주인공 캐릭터가 “로그북 몇 분 몇 시” 이런 말을 한다. 로그북이란 게 항해를 기록한 책이다. 그게 로그인데 그걸 컴퓨터에 개인 비밀번호 넣어서 기록을 하는 것에서 컴퓨터 용어가 됐다. 현대화된 단어다. 그렇게 띄어서 썼을 때 벨기에에서 로그를 썼다는 의미인데, ‘로그 인’이 재밌는 요소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니까 그런 요소를 재밌게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깔끔하고 좋았다. 로그라는 단어는 내가 생각했고, 로그 인 벨지움을 생각한 건 니키였다.

영화 중반 바나나와 토마토 장면이 있다. 누군가가 와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것이 실재했을 때 당황하는 모순이 느껴졌다. 이 장면을 어떻게 구상했나?

신비로운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존재가 나를 챙겨주지만 그걸 믿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 그 오묘한 선 안에서 신비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내가 가진 정말 단순한 기술로 그런 감수성이 전달될지 안 될지 궁금했다. 몇 번씩 시도했다. 한 시간 동안 했던 거 같다. 떨어지는 느낌에서 돌렸을 때 떠오르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 테이크가 그 호흡이 맞았던 거 같다. 생각보다 집중을 많이 하며 찍었던 것 같다.

<빔 드롭>

그렇게 떨어지는 이미지를 얘기하니, <빔 드롭>(Beam drop)이란 작품이 영화에 나온다. 일부는 아카이브를 사용했는데, 실제로 촬영한 장면도 있다. 그 장면은 언제쯤 찍었나?

이런 추상화된 장면을 넣은 이유는 옛날부터 크리스 버든 작가님의 팬이었다. 그를 보면 모든 소통이 하늘과 땅 사이에 관한 요소를 얘기한다. 빛과 하늘이 신과 신비, 삶을 상징하는 요소이고 흙과 땅이 죽음을 상징한다는 문법이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은 LA 현대미술관 앞에 있는 ‘어반 라이트’(Urban Light)가 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로등들을 너무나 예쁘게… 나는 그전 작품들이 파워풀하고 동시에 되게 순수하게 느껴졌다. 정말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앤트워트의 야외미술관에 <빔 드롭>이 있었다. 나도 몰랐다. 팬데믹이 터지기 전에도 자전거 타고 가서 책을 사고 설명도 읽었었다. 팬데믹이 터진 후에도 혼자 가서 보곤 했다,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혼자 가서 멍 때리고 생각하고 그랬다. (영화 속) 신비로운 캐릭터를 <베를린 천사의 시>와 연결을 해주려면 하늘로 떠난다는 요소를 넣어야 했는데, 이 작품이 너무 적합했다. 크리스 버든의 옛날 작품들이 관객들과 타거나 만지거나… 상호적인 그 모습 자체가 스컬쳐(조각)가 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미술관에 양해를 구하고 그 장면을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기도 하고, 오마주가 되기도 하고, 내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한 요소가 되었으니 너무 반가웠다.

밤에 산책하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

팬데믹 때 도시가 정말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만나면 안 되고, 장 보러만 잠깐 나가도 되는. 나라에서 그런 지침이 내려왔다. 새벽에 밤에 나가서 멍 때리고 생각하고 자전거 타고. 경찰들이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동하면서 다녔는데, 촬영할 때도 빨리빨리 삼각대 놓고 착착착 했다. 그때 플레이리스트에 그 음악(모이터(MEUTE)의 ‘유 앤 미’(You & Me))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면서 이게 상상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친 듯이 찍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도 없고, 누구한테 이걸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오로지 제 상상 안에서 (구상하고) 혼자 막 돌아다니면서 찍고 했었으니까. 혼자서 뭘 하고 온 건지,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이 현실과 정신줄을 안 놓으려고 하나를 집요하게 만들어내야겠다는 몰입이, 강박이 생겼던 거 같다. 혼자 있기가 힘들고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나에게는 생존하려고 했었던 인연이었던 거 같다, 그 촬영과 이 영화가.

러프하게 찍었지만 재밌게 나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과물이 잘 나와서 너무 고맙지만, 그것도 6개월 뒤에야 확인했다. 핸드폰으로 찍고 바로 태블릿PC에 옮겼는데, 내가 4월 초에 귀국했다. 10월까지 안 봤다. (촬영 때는) 상상 속에서 이렇게 연결? 저렇게 연결? 이게 맞나? 그러면서 일단 많이 담아놓자 했다. 가면서 비둘기 보면 막 찍고, 비행기가 날아가면 오! 찍고 저 혼자서 그러고 있었던 거다. (웃음)

이번 작품에서 만두가 유일하게 두 번 나온다. 정말 좋아하는 음식 같다.

정말 좋아한다. 만두 빚는 레시피를 친할머니한테 배웠다. 사춘기 때 <미나리> 같은 경험을 했다. 독일에서 길거리를 다니는데, 정말 잡초처럼 보이는 걸 할머니가 부추라고 하셨다. 그래서 거기서 캐고. 할머니가 만두 찌는 걸 열셋, 열네 살 때 시골에서 같이 만들기도 하고. 그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가끔 혼자서 땡길 때가 있는데 그 맛이 안 나오더라. (웃음) 벨기에에서 사람들이 긴장하니까 많은 걸 사고, 내가 장 볼 게 없어서 아시아마트에 가서 장을 보게 됐고, 만두를 만들게 됐고. 그 뒤에는 <중경삼림>의 오마주다. 거기서 파인애플 캔을 막 따가지고 먹는 것처럼 (나도 만두를) 소스도 찍어 먹고 막 먹었다. 현대문화와의 연결성을 만들고 싶어 ‘#ASMR’이라고 붙였지만 그것도 오마주였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유명한데, 나만의 레시피가 있다면?

쌀국수로 우육탕면을 만들어 먹는 거 좋아한다. 예전 금마장영화제에 갔을 때, 상하이에서 단편 영화 찍을 때 우육탕면도 먹어봤다.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연구하다가 왜 다 밀가루 국수 쓰지? 쌀국수로 하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베트남에서 촬영하다가 온 영향을 받아서. 가끔씩 그렇게 만들어 먹는다. (웃음)

처음부터 개봉을 고려하고 만든 상업영화는 아니었다. 개봉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

주변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단편 영화였다. 45분 편집본이 나왔다. 여기다가 더 붙이면 재밌겠다고 (엣나인필름) 주희 이사님이 먼저 얘기하셨다. 도와주겠다, 한번 해보자. 그때부터 외롭지 않은 상황에서의 제 사생활을 찍었어야 했는데 참 어렵더라. 외롭고 혼자 있을 땐 상상 속에 빠지니까 막 찍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많을 때는 따로 해소가 필요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자신을 다시 한번 객관화 시켜서 3막 구조 안에서 이 영화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나 하다가 이 와중에 2월에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받게 됐다. 시나리오로 쓰고 싶어도 다큐 형태 안에선 할 수 없는 재밌는 구도가 생겼다. 혼자 있다가 <머니게임> 방영 중에도 그렇게 인지도가 있던 것도 아닌데. 정말로 운이 좋았었던 거다. 혼자 있다가 갑자기 대도시에 돌아와서 시끌벅적하게 지내고 상 탈 때까지 팬들이 막 반겨주고, 뭔가 되게 짠하지 않나. 스스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걸 객관화해서 영화 형태로 만든 거다, 사실. 에고가 되게 강한 사람이 이런 걸 보여줬는데 괴기스럽게 안 느껴지고 편안하게 느껴져야 되니까 계속 고민한 거다. 그래 너 잘났다 하는 거 말고 좋은 거 전달됐다는 느낌을 주고 싶으니까, 그런 중점적인 감수성의 전달이 정말 어려웠던 것 같다,

유태오의 반려동물 사막거북이 모모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을 자주 만난다. 팬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줄임말인데, ‘늦천단오하게 산다’가 좋다. 인스타 라이브를 했을 때 팬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연기자로서 성과가 빨리 핀 편이 아닌데 어떻게 버텼냐” 그랬다. 내가 사막 거북이를 키우는데, “거북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느리게 천천히 단단하게 오랫동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라고 했다. 그걸 네 글자로 줄여서 늦천단오. 느리게 천천히 단단하게 오래. 굿즈도 만들고 하시더라. (웃음) 그런 것들도 너무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 안에서 팬들이 만든 2048 게임(링크)을 하는 장면도 있다.

(웃음) 그런 시각적인 심리 요소를 넣으려고 한 이유가 있다. 제정신이 분해된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는데, (2048은) 여러 명의 태오를 모이게 하는 거다. 제가 입고 있는 티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배우 버드 스펜서(Bud Spencer)다. 1970~90년대 초반까지 스파게티 웨스턴의 유명한 이태리 배우인데, 그 티도 여러 모습에 색이 다르다. 뭔가 분해된다는 미학적인 것들을 계속 넣었다. 타이틀이 뜰 때도 왼쪽 오른쪽에서 모이는 거고, 일어나 멍하니 천장을 보는 첫 장면도 빛이 교차한다. 영화적인 미학에서 문법을 계속 찾으려고 했다.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했는데, 언어를 익힐 때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나?

소리를 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 건너뛰어야 한다. 내가 바보가 된다는 걸 바탕으로 각오하고 소통을 시작한다. 우리도 영어를 배울 때 부끄러운데, 나도 그런 부끄러움이 역시 있었다. 독일어를 하다가 미국으로 넘어갔는데, 전혀 영어를 못 했다. 부딪히면서 했다. 수치심의 장벽을 넘어서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막 웃으면서 웃겨? 나도 웃기다! 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리고 내가 편하게 느끼는 언어의 사람들을 다 차단해야 한다. 미국에 있었을 때 미국 사람, 한국 사람을 2년 반 동안 안 만났다. 고립을 시켜야 한다.

오랜 시간 끝에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혹시 배우가 아닌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

없다.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직업이라고들 하는데,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맥락에선 그게 맞는 태도니까. 하지만 내 정체성은 오로지 배우고, 그 외의 삶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쉴 때도, 취미생활 할 때도 다 내 연기와 콘텐츠로 연결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취미를 하면 이건 어떤 이야기에 넣으면 재밌을까 이런 식으로. 연기 공부를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왕과 왕비의 광대다’라고 상상하면서 살았다.

앗, 방금 그 말은 얼마 전 잡지 표지에 썼던 문구다.

그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에서 피아차(광장)나 장터에서 왕과 사람들이 놀고먹고 하면 조커나 제스터가 나와서 막 까불고 하는데, ‘나는 왕이다!’ 하면서 막 넘어지고, 아파하고, 사실 왕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왕을 비판할 수 있었던 사람이 광대뿐이었다. 그리고 왕은 그 비판에 같이 웃어주는 상대였다. 거기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제 운명인 것 같고, 모든 사람들과 이 사회 안에 살아계시는 분들한테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고 때로는 그게 힘들 수도 있고 괴기스러울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거울을 비춰주는 거다.

유태오가 쓴 ‘GQ’ 표지에 쓴 “나는 당신의 광대고 당신은 나의 왕과 여왕이다”라는 메시지.

영화에 멜랑콜리한 것에 대한 언급이 있다. 지금은 그런 영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 그때도 있었다. 단지 우리 영화의 요소를 위해 언급을 안 한 거다. 영화를 스마트폰, 디지털로 찍었는데 그 멜랑콜리의 자극을 내가 할 수 있다 그 자신감을 영화로 보여주려고 했다. 멜랑콜리의 감수성을 슬픈 아름다움으로 해석한다.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어디로 가도 멜랑콜리라는 단어를 썼을 때 사람들은 웃으면서 시니컬하게 비난한다. 근데 그게 비난받을 요소가 아니다. 그걸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이 없다. 난 항상 아름답게 여겼다, 그 슬픔을.

이제는 영화관이 아닌 OTT로 추세가 넘어가고 있다.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명백한 스탠스는 없다. 말씀드린 것처럼 난 그 흐름을 타서 비춰주는 사람이라서. 과거의 전통성에 대한 연민은 없다. 전통도 바뀔 것이고, 그 유연성 안에서 좋은 게 탄생할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예전에 CD, MP3에 LP 시장이 죽어간다고 얘기했는데, 지금은 사치의 문화이자 더 고급적인 문화가 됐다. 영화도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없어지진 않을 것 같고, OTT 콘텐츠가 영화 못지않게 재밌고 잘 만드니까 영화계 사람들이 우린 뭘 해야 차별성을 둘 수 있나 (고민해서), 비교 대상이 안 되고 이건 이거대로 좋고 저건 저거대로 되는 게 좋은 것 같다.

다른 인터뷰에서 기분에 따라 베스트 영화가 다르다고 했었는데, 오늘의 기분으로 베스트 영화는?

친할머니 얘기도 나왔고, 그런 가족과 관련해 자극해 준 영화가 하나 있다. <페어웰>이다. <미나리>도 좋았고. 이 두 영화를 커플로 하겠다. 두 영화가 교포 문화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찾아가거나 혼란 안에서 남겨져있는 요소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 같다. 교포 아닌, 한 문화 안에서 태어났으면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어떤 멜로디를 읊게 되거나 레시피를 만들거나 어떤 한 마디를 했을 때 그 안에 할머니가 살아계신다. <미나리>는 개봉할 때 봤고, <페어웰>은 며칠 전에 뒤늦게 봤다. 그래서 두 영화를 같이 말씀드리겠다.

<페어웰>

<미나리>

<로그 인 벨지움>은 제작사 ‘테오닉 모’(태오+니키+모모)의 첫 작품이다. 차기작 계획도 있는지.

지난 10년간 연출자로서는 아니지만 스토리텔러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언제 완성이 될 거고, 제작사로서 혹은 배우로서 아니면 연출로서 참여할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때 가서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 스토리를 말하고 싶은 차원에서 작사 작곡도 했었고 동화(<양말 괴물 테오>)도 시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어떤 분께서 잘 봐주셔서 동화로 성장했다. 항상 스토리텔링은 하고 싶다. 그게 전통적인 매체로, 즉 영화로 할 것인가 추상화해서 새로운 것으로 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내가 한 행위예술도, 내가 햄버거 하나 먹고 손에다 침을 놓고 사다리를 타서 비눗방울을 불까 고민도 했다. 꿈에서 나왔는데 그걸 표현해야 하니까, 너무 답답해서. 그러다가 영화 속에서 보여줘야겠구나 생각했던 거다. 앞으로도 항상 무언가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할 것 같다.

(영화에서 언급한) 꿈이 진짜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배역을 맡으면 항상 꿈을 꾼다. 그 인물로서. 태오 개인으로서는 꿈이 없다. 한참 준비하고 몰입할 때 한 번 정도 그 역할의 상황을 꿈꾸게 된다.

잉꼬부부로 유명하니까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을 하려 했는데, 바꿔보겠다. 유태오에게 모모즈(유태오의 팬덤 이름)란?

(웃음) 모모즈는 내 배우 생활을 꽃 피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팬들이 없으면 아무리 내가 내 일을 잘해도…. (팬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현실적인 부분까지 이어진다. 팬들과 소통을 해보니까 깨달았다. 너무 고맙다. 어떤 작가인지 잊어버렸는데, 커다란 풍선 안에 작가가 들어갔다. 오래 있으면 공기가 부족하지 않나. 관객들이 와서 불어넣어 줘야 한다. 그래야 산다. 나한테는 모모즈들이 그런 느낌이다. 나를 먹이고 살린다. 너무 고마운 존재들이다, 날 꽃 피게 해주고. (웃음)

2021년의 남은 1개월, 어떻게 보내고 싶나.

다음 작품에 모든 대사를 빨리 외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면 1월부터 편하게 촬영할 수 있으니까. 지금 다리도 다쳤는데 그것 때문에 촬영도 조금 미뤄져서 빨리 회복하고 이 역할을 소화하고 싶다. 지금 그것밖에 없다. (웃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주)엣나인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