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아낌없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른 언어에서도 좋아하는 단어가 있는지.
최근 우리나라 말에선 ‘인연’이 그런 단어인 거 같다. 독일어를 썼을 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살짝 사르카즘(Sarcasme, 풍자)에 관한 얘기인데, 슬랩스틱 코미디에 관한 요소도 있고. 사고로 아프거나 다쳤는데 그 모습이 어이 없어서 웃기는 것을 말한다. 샤덴이 사고, 프로이드는 즐겁다는 뜻인데 그 조합이 재밌다. 영어는 ‘벌너러빌리티’(Vulnerability, 취약성), 진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같다. 한국말로 긍정적으로 민낯을 드러내다라는 말을 쓰는데 내 머리에선 이 단어를 적합하게 번역한 단어가 이 표현이다. 깨질 만큼 나약하다는 말도 될 수 있는데, 부정적인 표현이다. 우리나라 말에서도 민낯을 드러낸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썼던 거고. 요즘 찾아보니 거기에 관한 긍정적인 단어가 없더라. 신기했다. 자기 본모습을 드러낸다… 는 의미가.
우리나라 말에선 솔직하다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이번 영화의 제목은 언제쯤 정했나?
편집이 다 끝나고서 정했다.
깔끔하면서 정확한 제목인 것 같다.
감사하다. 니키한테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음)
(아내 니키 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언급되었다. (웃음)
니키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결과를 낸다. 당시 제가 전달하고 싶은 단어는 ‘기록록’이란 거였다. <스타 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볼 때 장 뤽 피카르(패트릭 스튜어트) 주인공 캐릭터가 “로그북 몇 분 몇 시” 이런 말을 한다. 로그북이란 게 항해를 기록한 책이다. 그게 로그인데 그걸 컴퓨터에 개인 비밀번호 넣어서 기록을 하는 것에서 컴퓨터 용어가 됐다. 현대화된 단어다. 그렇게 띄어서 썼을 때 벨기에에서 로그를 썼다는 의미인데, ‘로그 인’이 재밌는 요소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니까 그런 요소를 재밌게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깔끔하고 좋았다. 로그라는 단어는 내가 생각했고, 로그 인 벨지움을 생각한 건 니키였다.
영화 중반 바나나와 토마토 장면이 있다. 누군가가 와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것이 실재했을 때 당황하는 모순이 느껴졌다. 이 장면을 어떻게 구상했나?
신비로운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존재가 나를 챙겨주지만 그걸 믿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 그 오묘한 선 안에서 신비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내가 가진 정말 단순한 기술로 그런 감수성이 전달될지 안 될지 궁금했다. 몇 번씩 시도했다. 한 시간 동안 했던 거 같다. 떨어지는 느낌에서 돌렸을 때 떠오르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 테이크가 그 호흡이 맞았던 거 같다. 생각보다 집중을 많이 하며 찍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