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월드>가 건네는 질문은 한국 드라마들이 오래 된 클리셰를 어느 정도 벗어던진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드라마월드>

처음 ‘K-Drama’ 코너 연재를 제안 받았을 때부터, 나는 <드라마월드>(2016)를 ‘한국 드라마’라고 우겨도 좋은지 오래 고민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1만 놓고 보면 <드라마월드>는 엄연한 미국 드라마다. 미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 미국인 작가와 미국인 감독이 창조해 낸 시리즈니까. 주요 등장인물들 또한 대부분 미국인이거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한국 드라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국 드라마 속 세계 ‘드라마월드‘로 빨려들어온 주인공 클레어는 호주 출신 배우 리브 휴슨이 연기한다. 이 작품의 총 제작자이자 극중극 <사랑의 맛> 속 주인공 준으로 연기하는 션 리처드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고, 유창한 한국말로 클레어의 수상쩍은 조력자 세스를 연기해 낸 저스틴 전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품의 배경이 대한민국 서울이고, 배누리, 김사희, 우도환 등의 한국인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한국인 스태프들이 다수 참여한 작품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드라마월드>를 한국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건 조금 무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월드>를 한국 드라마가 아니라고 단언하자니, 작품 전반을 수놓는 지극한 한국 드라마 사랑이 마음에 걸린다. <드라마월드>는 실로 한국 드라마에 보내는 절절한 러브레터다. 클레어는 선남선녀가 계급의 격차나 (주로 남자 쪽) 어머니의 반대, 미묘한 삼각관계 따위의 고난을 뚫고는 끝내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누며 행복해지는 한국 드라마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현실 세계의 구질구질함도, 뜻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의 고충도 말끔하게 멸균된 채 매력적인 흥행공식만 간결하게 남은 그 세계가 주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 세계는 어때?”라고 묻는 준의 말에 대한 클레어의 답을 고스란히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시궁창이야!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그렇게 멸균된 세계의 매력을 이해하는 한국 드라마 팬들은, 클레어가 그 뻔한 클리셰 투성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드라마월드>의 스토리라인에 기꺼이 열광했다.

물론 그건 <드라마월드>를 만든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클레어도 모두 외부인이니까 가능한 접근들이었을 게다. 한국인들은 하도 오랫동안 보아와서 이제 지겹다고 느낄 만한 식상한 클리셰들마저 한국 드라마만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선은 정확히 외부인의 그것이니까. 그래도 ‘김치 싸대기’와 ‘돈봉투 뿌리기’, ‘자신만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인 재벌 2세’, ‘메인 남주에게 받은 상처를 서브 남주에게 위로 받는 여자 주인공‘, ‘주방에서 불 같이 화를 내지만 알고 보면 자상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 같은 코드들로 가득한 이 작품을, 한국 드라마를 온전히 이해하고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내부자 농담’으로 가득 한 이 작품을 마냥 밀어내는 건 좀 야박한 일이다. 어쩌면 히딩크에게 준 명예 시민증처럼, 이 작품에도 ‘명예 한국 드라마’ 지위를 줘도 괜찮지 않을까?

혹자는 <드라마월드>가 한국에서도 성공한 작품에선 더는 쓰지 않는 오래 된 클리셰들로만 일군 작품이라서, 한국 드라마를 잘 모르는 이들에겐 오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글쎄다. 한국 드라마, 특히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오랜 세월 유지해 왔던 흥행공식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월드>가 진짜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등장인물들이 자력으로 그 클리셰들을 깨고 나오는 장면들이다. ‘드라마월드‘ 안에서 끊임없이 조력자 역할만 해야 했던 운명을 저주한 캐릭터의 음모라거나, 극중극 <사랑의 맛> 시놉시스가 제시하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진짜로 사랑하는 상대와 이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의 자각은 보는 이들을 훌륭하게 매료시켰다. 흥미롭게도, 그 무렵 등장한 한국 드라마들 또한 뻔한 장르 공식을 영악하게 비틀고 변주하는 것으로 인기를 모았다. <W>는 창작자의 통제를 벗어난 캐릭터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이야기였고, <시그널> 또한 이미 벌어진 강력범죄를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각각 과거와 현재를 사는 형사들이 무전기를 통해 공조하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결말’ 같은 건 없다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의지가 결정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울려퍼진 셈이다.

<드라마월드>가 건네는 질문은 한국 드라마들이 오래 된 클리셰를 어느 정도 벗어던진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것이 정해진 해피엔딩을 향해 전진하는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좋기만 할까? 세상이 정해둔 주인공들의 빛나는 성취와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곁으로 밀려나 주인공들의 조력자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면, 그런 세상을 과연 아름답고 평화롭다고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에게 허락된 가능성이 극히 제한된 평화롭게 멸균된 동화 속 세계보다, 비록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모르는 시궁창이라 하더라도 모두에게 조금씩의 가능성과 자유의지가 열려있는 세계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몸 좋은 남자 주연배우의 샤워신도, 취중진담과 어부바도 없는 재미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