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 주진우 감독.

6년 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국정 농단 실세에 대한 처벌 및 진실 규명을 요구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대규모 촛불집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촛불>이 2월 10일 개봉한다. 2020년 3월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무기한 연기한 이후 2년 만이다. 추미애, 박지원을 비롯해 하태경, 이혜훈 등 여야를 막론한 당시 정치권 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은 물론이고, 추운 거리를 굳건히 지킨 시민들의 사연을 통해 촛불집회의 의미를 짚어본다.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자의든 타의든 여권과 야권 지지자 모두에게 민감한 시선을 받고 있을 영화 <나의 촛불>의 김의성, 주진우 공동 감독을 만났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계기가 있었나.

김의성 2018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우연히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해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의 여의도 비화를 이야기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걸로 뭐든 하나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주진우 추미애, 박지원, 정세균, 심상정 등 각자가 느낀 탄핵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 특히 친박이라 불리는 진영에서도 촛불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촛불 탄핵은 역사적인 사건인데 제대로 된 기록이 너무 없더라. 이런 이야기는 꼭 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의성 사실 처음에는 촛불보다 탄핵에 좀 더 집중했었다. 그때 비화들을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탄핵이란 것이 정치인들끼리 모여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동력은 광장에 모였던 촛불이더라. 정치의 여의도와 촛불의 광화문 양쪽이 서로 영향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번 구상해보자, 그리고 이것을 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보게 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나의 촛불>.

촛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을 텐데 특별히 영화라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김의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는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전국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나와 주진우 기자가 전국을 돌며 관객들을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그림이다. 맛있는 것도 먹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보며 한 시즌을 보내고 싶기도 했고.

주진우 아름다운 역사다. 승리의 역사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역사다. 사람들이 이 부분을 너무 빨리 잊는 것 같아서 영화를 통해 너와 내가 경험한 촛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촛불 때 뭐했어?” 이 한마디만 던져도 누구나 무수한 경험들을 쏟아내지 않나.

2년 전인 2020년 봄 개봉을 준비하다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고 이제 개봉하게 됐다.

김의성 개봉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정말 2020년 봄에, 좋은 시기에 개봉하고 깔끔하게 끝내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게 점점 미뤄지다 결국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개봉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착잡하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게 우리 영화의 운명인가? 2022년 대선과 같이 가는 게 이 영화의 운명이었던 건가 이런 생각도 든다. 이번 대선을 2016년 촛불과 같이 맞물려 다시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대와 초조함 이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주진우 좀 떨리고 머리도 아프다. 영화 하는 분들이 영화 한 편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의든 타의든 대선 시기와 맞물려 개봉하게 됐다. 사실 우리가 경험한 촛불은 정치적 견해와 성향을 떠나 부정한 권력에 대항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 뜻에서 대선 정국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의견은 아플 수 있겠다.

김의성 맞다. 지금 제1야당에 있는 의원 중 절반 가까운 분들이 탄핵에 표를 던졌다.

주진우 우리가 영화에 담은 윤석열 대선 후보도 촛불 시민이다.

윤석열 당시 특검 수사팀장, 손석희 전 JTBC 사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섭외에 많은 공을 들였다.

김의성 우리 기획 자체가 주진우 기자 없인 성립이 안 되는 거였다. 여기 출연한 모든 분들의 섭외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깜짝 놀랄 정도고, 보시는 관객분들도 “와! 저게 가능해?” 하실 만큼 대한민국 영화 사상 최고의 멀티캐스팅이 아닐까 생각한다. (웃음)

주진우 사람들이 나를 좀 좋아한다. (일동 웃음) 여야를 가리지도 않고.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이렇게 기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모두 달라졌다. 자기의 정치적 관점과 스탠스에 따라 다 달라진 거다. 변하기 전인 그 당시, 촛불 직후에 이 기록을 남겨뒀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촛불> 고영태 인터뷰 중.

특히 고영태 씨는 섭외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했나.

주진우 고영태 씨는 사실 국정농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고, 그것 때문에 괴로운 일을 많이 당한 사람이다. 과거를 탈탈 털리고 감옥에도 다녀왔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 했는데 촛불의 의미에 대해 공감해 용기를 내줬다. 그 용기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김의성 고영태 씨가 인터뷰하러 왔는데 나도 좀 떨리더라. 수감 생활 직후여서 당시에는 조금 위축되어 있기도 했다.

<나의 촛불>.

촛불 당시의 정치 상황에 얽힌 비화도 재미있었지만,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떻게 선정해 만나게 됐나.

주진우 우리가 SNS를 통해 촛불에 담긴 사연을 보내 달라고 했다. 수많은 분들이 사연을 보내 주셨고 거기에서 선정했다.

김의성 조금 특이한 사연을 가진 분을 위주로 선정했다.

주진우 시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이 기획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역사의 주인은 위대한 시민이다.

두 분은 촛불 정국을 어떻게 보냈나. 주진우 기자는 자주 본 것 같다. 늘 추워 보였다. (웃음)

김의성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앉는 것은 못 하겠고 그냥 밖으로 돌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주변에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주진우 내게는 현장이었다. 역사의 현장. 기자는 현장을 지켜야 하지 않나. 그래서 매주 갔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켜봤다. 촛불의 힘이 모이는 과정에서 정치인, 언론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처음 봤다. 청와대가 무서워하는 것도 보였다. 촛불이 국회와 언론, 청와대를 압박할수록 박근혜의 담화는 계속 나오고, 조선일보의 논조가 바뀌고, 마침내 국회가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보니 실로 경이로웠다.

민중이 만들어 낸 거대한 변혁의 에너지를 제도 정치권에서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예가 많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었듯 4·19혁명과 87년 6민주항쟁이 5·16쿠데타와 김영삼·김대중 양 김(金) 분열로 빛을 잃은 것이 그랬다. 이번 탄핵 촛불 행동은 이전과 조금은 다른 양상이었던 게 있을까.

김의성 실패와 패배의 기억이 그렇게 끝난 게 아니라 경험으로 축적돼 왔던 것 같다. 세대를 많이 건너뛰긴 했지만 87년 6월 항쟁도 그렇고, 가까이는 광우병 집회도 그렇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었는데 그 경험들이 결국은 2016년 촛불 혁명의 씨앗이 됐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싸워서 깨지고, 그래야 집에 가니까 그렇게 깨지기 바랐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완전 다른 양상이었다. 끝낼 생각이 없이 끝까지 계속 사는 것, 그냥 모여 있으면 되고 더 많이 모이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주진우 패배주의에 빠졌고, 주저하고 외면하던 정치권이 결국엔 촛불의 힘에 밀려 국민의 뜻을 따르게 되지 않았나. 국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가 성공한다는 것을 증명한 거다. 그러니까 촛불은 위대한 거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만났다면 어떤 질문을 던졌겠나.

주진우 리스트의 1번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조건 1번.

김의성 우리 영화의 첫 번째 질문이 박근혜는 어떤 사람이냐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나의 촛불> 윤석열 당시 특검 수사팀장 인터뷰 중.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영화에 등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해하는 반응이 많다.

김의성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기가 막히게 그분을 찍어놓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주진우 당시에는 이렇게 될 거라곤 누구도 몰랐을 거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 인터뷰 당시(특검 수사팀장)와 현재의 상황(야당 대선 후보)이 완전하게 다른데 그 때문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까.

김의성 그것 때문에 못 담은 이야기는 없다. 수정하거나 한 것도 없다. 그냥 그래도 그때 편집한 것을 그대로 영화에 썼다. 바뀐 정치적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2년 전 편집본과 지금의 편집본은 달라진 것이 없나.

주진우 크게 다른 게 없다.

김의성 기술적으로 조금씩 수정한 것은 있다. 제일 크게 바뀐 것은 이재명 후보 연설 장면이 들어간 거다. 대선을 앞두고 개봉하는 탓에 유력한 대선 후보 두 명 중 한쪽은 긴 인터뷰가 들어가고 한쪽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오히려 문제 될 것 같고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 연설 장면을 넣은 거다. 지금 시점에서 이재명 후보 인터뷰를 하면 영화의 문법이 전부 깨져버리게 된다. 지금 인터뷰를 하게 되면 그분은 과거를 알고 인터뷰에 임하는 것이니 안 되는 거다. 고민하다가 당시 광장에서 성남시장 시절 했던 좋은 연설이 있어 영화의 흐름을 끊지 않는 수준으로 편집해 넣었다.

2020년 개봉을 앞두고 씨네플레이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두 분께 드릴 질문을 댓글로 받은 적이 있다. 코로나로 개봉이 연기되며 공모 중간에 중단됐지만 며칠 사이에 230여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래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두 분께 드릴 독자 질문을 하나씩 선정했다.

아이디 ‘양평댁’님의 질문이다. 주진우 기자는 전혀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무섭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진짜 무서운 것이 있나. 있다면 무엇인가.

주진우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김의성 무서운데 참는 거지. (웃음)

주진우 그런데 앞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냥 앞으로 나가는 거다. 무섭다. 거대한 힘과 권력, 그리고 돈. 이런 거 무섭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부산행> 김의성.

아이디 ‘ALL마이트’님의 질문이다. 김의성 배우는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부산행>(2016) 용석 캐릭터가 재조명 및 재평가받은 적이 있다. 의심자 신고, 빠른 상황 판단, 단서를 가지고 역학조사, 상황을 승무원에게 알리는 적극적인 태도 등이 그렇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김의성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부산행> 찍을 때도 왜 화장실에 갇히는 장면 기억하나? 거기서 나오기 전까지의 용석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그를 이해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의 이완익도 나는 100% 이해했다. 다 너무 옳고, 잘 됐으면 좋겠고, 저놈들 때문에 짜증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다. (일동 웃음)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 내가 100% 이 인물에 대해 정당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연기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 근데 <부산행>에서 화장실에서 사람 밀고 ‘원더걸스’ 소희를 죽이는 장면부터는 나도 이해하기 힘들더라. (일동 웃음)

주진우 그건 안 되지. 소희를 죽이다니 정말 나쁘네. (일동 웃음)

김의성 아무튼 나는 당연히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조금 때늦은 감도 있다. (일동 웃음)

공동 감독으로서 장단점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게 있었나. 의견 차이는 어떻게 조율했나.

주진우 우리에겐 장점이 많았다. 나는 처음에 기획하고 구성하고 섭외하는데 열심이었다면 영화적으로 어떻게 편집하고 재해석하는 뒷부분은 (의성)형에게 맡겨서 공동 연출은 굉장히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김의성 우리가 잘 모르니까. 초보자로서 잘 맞았는지 둘의 호흡은 아주 좋았다. 이거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면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했던 거고, 주 기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맞아 나도 말하고 싶었는데 하는 거였다. (웃음)

처음으로 감독에 도전했다.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다시 도전하겠나.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주진우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일동 웃음)

김의성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둘이 같이 기획은 해볼 생각은 있다. (웃음)

주진우 영화를 만드는 것 너무 힘들다. (일동 웃음)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유한회사 주기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