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더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가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며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로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세로 평가받는 장르가 바로 TV 시리즈였다. 일찍이 HBO와의 협업을 통해 자체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크로스오버 이벤트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바 있는 DC와 비교했을 때 아무래도 파워가 약하긴 했다.

물론 시리즈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고 시즌별로 평가도 달랐지만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연출과 호흡으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제시카 존스>, <데어데블>, <루크 케이지>, <아이언 피스트>라는 단독 시리즈를 먼저 선보이고 <디펜더스>라는 팀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은 솔로 무비부터 찬찬히 캐릭터를 빌드업해 팀업으로 나아가는 마블의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마블의 <디펜더스> TV 시리즈는 MCU와 연계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별개의 스토리로서 캐릭터 각각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시리즈였는데, <아이언 피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지한 서사와 액션, 감성적인 연출 등 캐릭터 각자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마블 코믹스 기반의 실사화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TV 시리즈로 제작된 콘텐츠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서비스된 바 있는 <디펜더스> 이하 5종의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창기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들은 꽤 수요가 있었고, 각각 2~3 시즌까지 제작될 만큼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디펜더스 4인과 퍼니셔(존 번탈)는 뉴욕의 자경단으로서 초능력이나 마법 능력 같은 눈부신 타입의 히어로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사고와 성폭행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제시카 존스(크리스틴 리터), 자신 안에 극명하게 대립되는 폭력과 정의의 양면성을 고민하는 데어데블/맷 머독(찰리 콕스), 인종차별에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루크 케이지(마이크 콜터), 오리엔탈리즘 논란이 거세기는 했으나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다룬 아이언 피스트(핀 존스)까지 각자의 고민과 상처,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캐릭터 고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후드 입은 흑인은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일부러 후드를 입었다는 <루크 케이지>.

평단과 팬으로부터 모두 혹평을 받은 데다 화이트 워싱 논란까지 있었던 아이언 피스트는 차치하고서라도, 탄탄한 구성과 전개 속에서 다소간의 접점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주며 팀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던 이 시리즈들은 -특히 루크 케이지는 더더욱- MCU와 연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리즈 자체로서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던 셈이다.

데어데블

하지만 다음 시즌 확정 소식을 전했던 <데어데블>이 2018년 말 제작 취소된 이래 새로운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팬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호평을 받았으며 지독할 정도로 호쾌한 액션으로 인기가 높았던 <데어데블>이 취소 소식을 전하자 이후 마블 소재 시리즈들의 향방도 알 수 없게 되었던 셈이다. 여기에 이 시리즈들을 MCU에 직접적으로 결부시키거나 자체 제작으로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공식 언급 때문에 이대로 디펜더스들은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다.


킹핀

최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호크아이>에서, 데어데블의 빌런이었던 킹핀(빈센트 도노프리오)이 등장했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던 데어데블이 곤경에 처한 피터(톰 홀랜드)와 메이(마리사 토메이) 숙모의 변호사로 등장했다.

디즈니 플러스 출범 이후 다수의 디즈니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내려갔고, MCU 작품들은 이제 전부 디즈니 플러스에서 스트리밍 되고 있었으나 <디펜더스>를 위시한 이 시리즈들은 여전히 넷플릭스에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더 이어지는 이야기는 볼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관측이 주였던 만큼 이들의 모습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등장한 데어데블.

여기에 새로운 히어로 시리즈 <문나이트>의 공개를 앞둔 지금, <퍼니셔>와 팀업 시리즈 <디펜더스>를 포함한 시리즈 6종이 넷플릭스 서비스를 중단하고 디즈니 플러스로 보금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수의 캐릭터들과 접점이 있는 빌런인 킹핀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재등장했고 데어데블도 MCU 영화에 모습을 보였으니, 팬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크로스오버가 실제로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에이전트 카터>

마블의 TV 시리즈는 자체 플랫폼이 없었던 2010년 중반부터 <에이전트 카터>, <인휴먼즈>, <런어웨이즈>, 그리고 <디펜더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 온 바 있다. 그 가운데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본편에서 아쉽게도 유명을 달리했던 필 콜슨을 비롯해 쉴드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MCU 속 다양한 속이야기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물론 이야기가 우주와 차원을 초월하면서부터는 상당한 스케일이 돼버렸으나 인기리에 다수의 시즌이 제작되기도 했다.

물론 성공하지 못한 시리즈도 없는 건 아니다. <인휴먼즈>는 언급하는 게 실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작품이 되고 말았는데, 저예산 드라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히어로 실사화 프로젝트의 가장 큰 볼거리인 히어로들의 능력 발휘와 액션 등의 문제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예산이 확보돼 있고 시간이 넉넉했다면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지금과는 다른 작품으로 남았을지 모를 일이지만.

<완다비전>

현재로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완다비전>, <로키>, <호크아이>가 성공적으로 서비스되었으며 속속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를 발표할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는 MCU의 자체 플랫폼인 셈이기에,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한편 새로이 등장할 캐릭터들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제작의 주체가 일원화되어 있다는 점도 가능성 중 하나다. 거기에 멀티버스를 페이즈 4의 주요 테마로 잡았으니, 이제까지 서로 다른 제작사를 통해 서비스되어 왔던 여러 콘텐츠들을 다시금 본가(!)의 품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디펜더스>와 <퍼니셔>가 본가로 돌아왔다는 건 사실이다. 영영 딴집살이를 할 것 같았던 이들이 돌아왔으니 MCU의 계획이, 디즈니 플러스 이전까지는 영화에 비해 부진했던 TV 시리즈 방면에서도 더 반짝일 수 있을지 기대해 보는 바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