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언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남자가 진지하게 대사를 읊는다.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무대, 마침 그 뒤편에서 다른 이가 엉거주춤 걸어 나온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몸에는 흰 드레스를 걸쳤다. 불룩한 배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그에게 햄릿이 말한다. “오, 사랑스러운 오필리어로구나!” 일순 객석에서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오필리어를 연기하는 남자의 이름은 임재춘.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배우로 참여한 연극 <구일만 햄릿>(2013)을 상연했을 때, 그는 이미 거리에서 6년을 보낸 뒤였다. 천막 농성장 입구에 걸어둔 달력이 일러주듯이, 투쟁한 나날은 무려 2000일이 넘었다. 오필리어로 분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은 커다란 캔버스 옆에 선 임재춘에게 감독이 묻는다. “이 그림 보니까 기분이 어때? 그건 어떤 감정이야?” 임재춘은 모르겠다고 뚱하게 답한다. “그냥 하라고 해서 한 거여. 예술도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임재춘은 1986년 콜텍에 입사하여 20년간 기타를 만들었다. 2006년 회사의 위장 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서 동료와 함께 13년간 복직 투쟁을 지속했다. “진짜 죽는 거 빼고 다 해본 거 같”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막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버텼다. 1인 시위와 삼보일배 행진에도 묵묵히 뛰어들었다. 민사·형사·행정소송까지 법률 공방도 치를 만큼 치렀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의지를 외면하고 무시했다. 결국 2019년 3월, 임재춘은 ‘끝장 투쟁’을 선언하며 단식까지 감행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주어진 모든 일을 해낼 심산이었다. 종종 예술가로 변신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밴드 ‘콜밴’에서 카혼을 연주하고 연극 <구일만 햄릿> <법 앞에서> 무대에 섰던 그는 농성일기를 모아 책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수정 감독은 2012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천막 농성장에 드나들었다. 바로 전 해, 감독은 부산 영도에 머물면서 예상치 못한 열기를 체험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절박했고, 이를 응원하러 나선 시민들의 행렬은 기적과 같았다. ‘희망버스’는 운동과 대중의 접속을 보여주는, 고립된 투쟁을 연대의 축제로 확장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감독은 4개월 남짓 이어진 ‘희망버스’ 운동을 발 빠르게 뒤쫓으며 <깔깔깔 희망버스>(2011)를 완성했다. 영화는 열띤 에너지로 뻗어 나가는 투쟁과 연대를 충실히 기술했고, 열기가 채 식지 않을 무렵 세상에 공개됐다. 반면, <재춘 언니>에서 감독의 초점은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 사건에 집중하며 시의성을 확보하려 했던 전작과 달리, <재춘 언니>는 십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한 인물에 할애한 결과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연결되지만, 카메라는 이전처럼 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재춘 언니>의 중심에 임재춘이 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낯을 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다 보니 남에게 얼굴 내밀기가 싫어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았다.” 천막을 찾는 이들은 임재춘을 언니라고 부른다. 아저씨도, 형과 오빠도 아닌 언니. 누군가 “재춘 언니” 하고 불러 세우면, 까무잡잡한 얼굴의 중년 남성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그는 동료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농성장 셰프”다. 배 나온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로 더운 여름에도 한사코 등목을 거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감독은 수줍음 많은 그를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거듭 대화를 나눈다. 임재춘은 기분과 감정을 묻는 말에 난감해하지만, 그렇다고 자리에서 달아나지는 않는다. 어눌한 말투로 곤경을 설명하며, 때로는 감독을 향해 이쪽으로 오라 손짓하기도 한다. 감독은 반가운 목소리로 되묻는다. “나 따라가? 정문으로?”

왜 하필 임재춘일까. 그를 향한 끈질긴 애정과 극진한 헌신은 과연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재춘 언니>는 임재춘을 투지와 사명 넘치는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천막을 지키는 이들 중 가장 평범해 보인다. 유창하게 연설할 줄 모르고, 결기에 찬 눈빛으로 쏘아보지도 않는다. 대신 두 눈을 깜박이며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핀다. “자기보다는 항상 다른 사람한테 신경 쓰면서 사신 것 같아요.” 연극 연습 시간에 임재춘에게 돌아온 평가는 그의 양순한 성정을 드러낸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못 떠나는 사람. 배신으로 절망한 오필리어를 보며 두 딸의 마음을 짐작하는 사람. 감독이 임재춘을 옹호하려는 의도로 두 딸을 타박하자, 그는 평소답지 않게 정색하며 돌아누웠다가 감독이 떠나기 전 툭 내뱉는다. “미안해.” 임재춘은 확신에 찬 전형적 구호보다는 겹겹이 얽히고설킨 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재춘 언니>는 감독의 존재를 지워내지 않고, 도리어 투명하게 개입하는 방식을 택한다. 카메라는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려는 감독과 도무지 쓸 만한 말을 해주지 않는 대상 사이에 위치하며, 둘의 소통 방식이 차츰 변화하는 과정에 동행한다. 4:3 비율의 흑백 화면은 오래된 무성영화를 보는듯한 효과를 자아내며, 임재춘의 얼굴과 몸을 내내 낯설게 만든다. 다채로운 자극이 휘발된 풍경 속에서 임재춘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인다. 기타를 만들던 두 손으로 모나미 볼펜을 쥐고 농성 일기를 한 문장씩 꾹꾹 눌러쓴다. 간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는가 하면, 쉴 때는 무릎장단을 치며 카혼을 연습한다. 대법원에서 돌아온 그는 방울토마토를 심어 놓은 텃밭으로 달려간다. 축 늘어진 줄기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감독이 묻기도 전에 기분과 감정을 토로한다. “이런 거 보면 속상해. 비워놓은 자리가 딱 표나는 거 아녀.” 영화 말미,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 임재춘이 등장한다. 몇 년 사이 머리카락은 허옇게 세어버렸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팼다. 천막에 모인 이들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낭독하고, 임재춘을 노트를 펼쳐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또 무언가를 쓴다.

임재춘에게 싸움은 곧 일상이기에, 영화에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의 험난한 여정 또한 자연스레 담긴다. 다만 시간 순서대로 투쟁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보다는, 이렇다 할 결실 없이 한 해를 지나 보내야 하는 임재춘의 불안과 우울에 다가가려 힘을 쏟는다. 남에게 얼굴 내밀기가 싫다던 그가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 앞에서 호통치기까지, “자기 욕망의 호흡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던 그가 밴드 연주에 몸을 흔들며 춤추기까지 4464일이 걸렸다. 그러나 이 무수한 변화에도 임재춘은 한 사람처럼 보인다. <재춘 언니>는 ‘왜 하필 임재춘일까?’라는 질문에 부정할 수 없는 답을 내놓는다. 임재춘은 노동자일 때나 해고자일 때나 같은 사람이다.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것처럼 묵묵히 농성장을 지키고, 딸들 앞에서든 세상 앞에서든 덜 부끄럽게 살려고 애쓴다. 변모하고 진화하는 와중에도, 간혹 우물쭈물하면서도 그는 좀처럼 자신을 잃지 않는다. 엔딩에서 감독은 투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임재춘을 찾아간다. 그는 여전히 그답게, 요령 없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차한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