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자레드 레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알린 영화는 아무래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일 것이다. 매튜 맥커너히와 함께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던 작품이었고, 무엇보다도 자레드 레토의 파격적인 분장과 더불어 그가 연기한 트랜스젠더 캐릭터 레이언이 관객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을 테니.

<수어사이드 스쿼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이후 자레드 레토가 선택한 영화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였다. 지금이야 결과를 알고 있기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으나, 당시의 자레드 레토에게 '조커' 역할은 꽤나 매력적인 동시에 도전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히스 레저가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준 조커가 그야말로 전설로 남은 가운데, 히스 레저 이후 첫 조커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난해하고도 독특한 역할을 많이 맡아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자레드 레토가 아니었더라면 쉽사리 수락할 수 없는 제안일지도.


조커라는 마성의 캐릭터, 하지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더구나 영화 속 '조커'는 자레드 레토가 보여주고자 했던 캐릭터의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팀업을 조커의 히스토리나 사건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정확한 출처는 아니었지만 자레드 레토의 '메소드 연기' 때문에 온갖 기행을 일삼아 그에 시달린 배우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된 바도 있었다.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확산되자 자레드 레토 본인도 신경이 쓰였는지 최근 인터뷰에서는 '상식적으로 그런 짓을 했겠냐'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프로모션 이미지가 공개될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히스 레저의 조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면서도 원작 코믹스 등지를 통해 공개되었던 유명 일러스트를 재현하는 등, '광태자' 속성에 걸맞은 조커를 걸출한 연기력을 통해 보여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결국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남긴 것은 자레드 레토의 명연기라기보다는 서브컬처 팬덤과 트렌드를 강타한 '할리퀸'이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명실상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진짜 주인공은 할리퀸이었을 것이다. 할린 퀸젤이 정신과 의사로서 조커의 상담을 진행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연인이 되고자 결국은 범죄자가 되어 아캄 수용소에 수감되기까지의 과정은 아주 단편적인 영상으로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조커와 할리퀸의 로맨스는 꽤나 오랫동안 회자되었으며 페미니즘 이슈 이후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 '조커'가 독극물 통에 같이 뛰어들었으니 캐릭터성이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기도 했다. 어쨌든, 할리퀸과 조커의 파행적인 로맨스가 다루어진 것만으로도 영화에 의미가 있었다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관객과 코믹스 팬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기대했던 게 단순히 로맨스가 아니었던 것만은 명확했다. 손익 분기점 넘길 정도로 흥행은 했으나(이것도 조커 혹은 자레드 레토의 덕이라기보다는 마고 로비와 할리퀸 덕이라는 평이 더 많았다...) 자레드 레토 본인과 본인의 필모그래피에 그다지 좋지 않은 기록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초 기획되었던 조커의 분량은 지나칠 정도로 잘려나갔고, 결론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는 할리퀸의 '나쁜남자' 애인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이 치욕, 다시 히어로 무비로 씻는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한 자레드 레토

그래서, 솔직히, 자레드 레토가 다시 히어로 무비의 주연급으로 이름을 올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평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연을 해 온 배우에 대한 평가치고는 혹평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른 괜찮은 각본도 꽤 들어올 텐데(밴드 활동만 아니라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두 배는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커 자체가 나빴느냐고 한다면 '딱히 좋다 나쁘다 평가할 정도의 분량조차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도.

거기에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 솔로 무비 <조커>가 흥행과 평가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으니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그저 역사의 뒤안길 속에서 '그런 조커도 있었지' 정도로 남아 버린 셈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조커로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여러모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스티스 리그> 본편이 성공했더라면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유일무이한 조커로서 남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레드 레토는 결국 그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조커 역에 씁쓸한 뒷맛만 남겨둔 채 돌아서야 했다.

<모비우스>

하지만 DCEU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아닌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통칭 SSU를 통해 자레드 레토는 다시금 히어로 무비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바로 3월 30일 국내 개봉한 영화 <모비우스>다. 소니 픽처스는 자사가 보유한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내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한 영화 작업을 전개해 왔는데, 소위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이라고 불리는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인 타이틀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흥행 실패 이후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성공과 PS4 독점 게임 타이틀이었던 '마블스 스파이더맨' 등 스파이더맨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성사되지 못했던 다양한 스핀 오프 영화 계획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실사화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게 된다. <베놈>을 시작으로 한 소니의 새로운 유니버스였다. 이게 바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즉 SSU다.

대여 형태로 MCU에 등장 중인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과 연계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결론적으로는 다른 유니버스에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대답이었는데, 근래 개봉해 흥행 성공은 물론 호평을 받은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통해 SSU는 MCU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이미 인기를 누리고 있는 MCU의 등에 업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셈인데, 이로써 소니 픽처스는 이전에 계획했던 다수의 작품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SSU 큰 그림의 한 조각, <모비우스>

<모비우스>

<모비우스>는 그 계획 중 하나다. 소니 픽처스는 스파이더맨을 괴롭히는 빌런들의 팀인 '시니스터 식스'를 꽤 오래 전부터 구상해 왔는데,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게 되면서 잠시 중단해 왔고 이제 다시 펼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베놈> 시리즈에 이어 개봉 후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비우스>까지 그들이 내놓은 영화가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기에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계획은 계획이었다.

<모비우스>는 살기 위해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 흡혈박쥐의 피를 통해 병을 치료한 듯했지만,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소위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의 기원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베놈과 연계되는 세계관으로 비슷한 타입(히어로도 아니고 빌런도 아닌데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의 스탠스…)이기에 맞물리면 뭐 나름 괜찮은 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베놈과 같은 이유로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영화인 건 어쨌든 사실이다.

<모비우스>

자레드 레토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희대의 역할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조커를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고, 히어로 무비로서는 두 번째 도전인 <모비우스>0마저 이렇게 보내야만 한다면 솔직히 말해 너무한 일이 아닌가. <블레이드: 트리니티>와 <엑스맨 탄생: 울버린>, 거기에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까지 세 편에나 출연했지만 단 한 편도 성공 못 하다가 결국 <데드풀>로 기염을 토하기까지 장장 12년이 걸렸던 라이언 레이놀즈처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부터 된다(하지만 데드풀이라면 괜찮다...).

<모비우스>의 영 좋지 못한 토마토 신선도를 지켜보면서 히스 레저의 조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에 비하면 한참 더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가 풍길지는 모르겠지만 자레드 레토가 보여주는 '똘끼 넘치는 미친놈'으로서의 조커가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후 조커와 할리퀸의 로맨스만이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그 설움의 시절에 떠돌아다니던 그 루머, 조커와 할리퀸의 사랑이야기만을 다루는 듀오 무비, 차라리 그게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모비우스>는 개봉 직후인 상황이고, 안티히어로인지 진짜 히어로인지 좀 헷갈리긴 하지만(그리고 주인공과 적이 각각 누군지도 쪼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아직 속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해두자. 평가는 어차피 관객이 해 줄 것이기 때문에.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