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2018)의 주인공 미소(이솜)는 욕심이 크지 않다. 하루 종일 다른 이들의 집을 쓸고 닦아 번 가사도우미 일당을 쪼개서 빠듯하게 살아가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균형을 찾는 법을 익혔다. 일당 45,000원을 쪼개 약값, 월세, 세금 낼 돈을 매일 조금씩 저축하고 나면 그 날 쓸 수 있는 돈은 2만원 남짓 남는다. 미소는 그 돈을 잘 쪼개서 쥐꼬리 만한 삶의 낙을 남겼다. 하루를 버틸 식비 5천원, 힘들었던 하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바에 가서 마시는 위스키 한 잔 12,000원, 종일 태울 담배 한 갑 2,500원.
그런데 사는 게 녹록치 않다. 방 주인이 월세를 올린단다. 자기도 올리고 싶지 않지만, 자기도 세 들어 사는 집을 쪼개서 방 하나를 미소에게 세 준 처지라, 집 주인이 집세를 올리면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 집 주인은 10만원을 올린다는데 자기는 일단 5만원만 더 받겠다고 한다.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 방은 난방도 제대로 안 된다. 남자친구 한솔(안재홍)과 서로 뜨겁게 안으려고 겉옷을 주섬주섬 벗었다가, 사무치는 추위에 놀라 “봄 되면 하자”며 아쉬움을 나눠야 할 정도로 추운 방이다. 그래도 집은 집이니까, 미소도 방도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살아 봐야지 하는 결심을 무너뜨린 건 희망찬 2015년 첫 새벽이었다.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재야의 종을 보고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걸 한참 바라보던 미소는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오늘부로 담뱃값이 2천원 올랐단다. 늘 태우던 담배인 ‘에쎄’를 사려고 2,500원을 내밀었던 미소에게, 점주는 우는 상을 하며 사정을 설명한 뒤 “다행히 4,000원짜리 담배가 있다”며 ‘디스’를 대신 내준다. 하지만 제일 싼 담배를 산다 해도 월세와 담뱃값이 동시에 오른 것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미소는 고민하다가, 여행가방에 얼마 안 되는 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집을 빼기로 결심한다.
정신 나간 결정 같지만 미소에겐 그렇지 않다. 미소는 남자친구인 한솔과 위스키, 담배 세 가지만 있으면 다른 어떤 건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다. 미소를 미소일 수 있게 해주는 타협할 수 없는 취향, 단 한 줌의 삶의 낙인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는 과거 자신이 알고 지냈던 이들을 찾아가 신세를 지기 시작한다. 공짜로 재워 달라는 게 아니라 하루 자고 가는 대가 삼아 계란 한 판을 건네며(이 때만 해도 계란 한 판 가격이 3~4000원대였다.), 자고 가는 만큼 그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면서.
<소공녀>가 처음 발표됐을 때, 영화에 매료된 사람들 반대편에는 영화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가 가난을 너무 팬시하고 캐주얼하게 그린다고. 진짜 가난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 표정의 이솜을 내세워 예쁘고 화사한 톤으로 가난을 왜곡한 영화라고.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엔 미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악물고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짜로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계란 한 판을 사 들고 가고 깨끗하게 집 청소를 해주고 나오니 누구에게도 폐를 끼친 게 아님에도, 미소는 “너는 인생을 대책 없이 산다”는 온갖 눈초리와 훈수를 감당해야 한다. 친구들은 미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토로한다. ‘철 든’ 삶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너처럼 살지 않는 건 얼마나 큰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가 이야기한다.
미소라고 그게 쉬울까? 미소는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여가며 미니멀한 삶을 산다. 미소는 반문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취향까지 없어야 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어떤 형태로 사는 게 맞는 건지 누가 정해 놓은 건데? 왜 내가 최소한의 지출로만 살아가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일이 염치없고 대책 없는 일이라고 매도 당해야 해? 한강변에 쳐진 텐트를 멀리서 바라보며 끝나는 결말에선 슬픈 결연함까지 느껴진다. 이걸, 화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SNS에서 뜬금없이 4년 전에 쓰인 글이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어린 세 딸을 키우며 남편의 외벌이로 살아가는데 월 수입 230여만원으로도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젊은 여성의 글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글쓴이를 열심히 비난했다. 저 정도 벌이면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문화생활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고 취향을 키울 만한 체험들도 못 시켜줄 것이며, 아이들이 자랐을 때 학비도 제대로 대주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자기들이 부족함을 못 느끼고 행복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가난한 유년을 강요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니, 가난하면 애를 낳아서 키우면 안 된다고.
그 반응들 앞에서 뒷목이 뻣뻣해졌다. 글쓴이가 ‘아이들이 더 자라면 자신도 다시 일을 시작해 맞벌이를 할 것이다’라고 조건을 달아둔 것도 무시하면서, 저 정도 벌이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들의 폭력이 두려워졌다. 집에 돈이 크게 부족한 적은 없었던, 다양한 문화적 ‘도피’를 하며 살았지만 대신 온 가족이 서로 불화해 매일매일 집에 들어가는 게 지옥 같았던 나의 유년을 떠올렸다. 어두컴컴한 반지하에서 살아가는데도 매일 식구들끼리 웃고 떠드는 게 일이었던 그 시절의 내 친구를 떠올렸다. 내심 그 친구의 가족과 그 친구의 삶을 부러워하며 몰래 울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날 떠올렸다. 행복은 정말 돈의 얼굴로만 찾아오는 걸까?
물론 누군가 그 글을 들고 와서 “5인 가정이 월 230만원만으로도 넉넉하게 살 수 있다는 사례가 있으니, 임금 수준이나 복지 수준도 딱 거기에만 맞추자”라고 우기는 근거로 활용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가능하다면 더 풍족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임금 수준과 복지 수준을 향상시켜야 할 일이지. 하지만 글쓴이가 그렇게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아이들과 함께 나름의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뿐인데, 곧장 가난한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빈곤혐오로 달려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시, <소공녀>의 결말부 한강변에 쳐 둔 미소의 붉은 텐트를 생각한다. 누군가는 속 편하다고, 무책임하다고, 염치없고 대책 없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미소의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내가 대신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미소가 내린 선택을 내 기준으로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쓰고 싶은 글만 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으니까. 나 또한 미소처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했으니까.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것이 행복인지는 각자가 선택하고 판단할 일이니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