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풀린 첫날, 나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 접어들 무렵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마스크를 벗는 건 아무리 실외라고 해도 어쩐지 조심스럽고 어색했는데, 인적이 드문 곳에 오니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일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자, 가슴 가득히 서늘한 밤공기가 들어찼다. 맞아. 마스크 없이 밤공기를 맡으며 산책하는 기분은 이런 거였지. 2년 넘게 지속되어 온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의무 착용의 시간은 일단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다.
상쾌한 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제 마스크 회사들은 어떻게 하면 좋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 마스크는 실내에서만 써도 되고,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순차적으로 해제될 테니까. 급감할 마스크 소비량을 생각하니 이 회사들은 어떤 대책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내 오지랖은 탄식으로 끝났다. 코로나19 초창기에 전문가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개발을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영역과 야생동물의 영역은 계속 섞이고 있으며, 그럴수록 그동안 인간 사회에선 퍼진 적 없던 종류의 인수공통감염병들이 등장하게 될 거라고. 인류 역사에서 대규모 감염병이 유행하는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엔 더 빨리 이다음 감염병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스크 회사들의 앞날을 걱정한 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는지 새삼 실감이 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한국은 꿀벌들이 떼로 사라져서 과연 올해 농사는 잘 지을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봄이 오면 순차적으로 피고 졌던 봄꽃들이 한 번에 우르르 피었다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데, 주요 지역의 기온은 섭씨 40도를 돌파했고, 일부 지역은 지표면 온도 섭씨 60도를 넘겼다. 환경 파괴는 기후 위기를 부르고,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이다음 감염병이 당장 내일 닥쳐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감염병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형인 더 거대한 재앙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당장 한반도가 지표면 60도의 기후 재앙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연결된 시대, 옆 나라가 겪는 재앙은 당사국이 아닌 이들에게도 현실이 된다. 기후 위기는 천연가스 가격을 폭등하게 만들었고, 천연가스 공급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부추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현실이 된 식량난은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의 폭염으로 더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기후 위기로 캐나다의 카놀라 농사가 어려워지며 카놀라유 가격이 폭등했고,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씨유를 수출할 수 없어졌다. 세계 식용유 시장이 팜유로 몰려들었고,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수급난으로 수출을 틀어막았다. 밀과 식용유 같은 당장 먹고 살 식량의 가격이 세계적으로 폭등했다. 연료도 비싸지고 식량도 비싸진 시대, 사람들의 삶은 바닥에서부터 부스러진다.
마스크를 잘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난 생각했다. 어쩌면 다음에 마스크를 꺼내 쓰게 되는 날은 내 생각보다 더 빨리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못 갔던 여행을, 코로나19 때문에 못 했던 소비를, 코로나19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온전히 다 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지 않나. 물론 코로나19로 여행업계와 소상공인들이 크게 손해를 입었으니, 소비가 증가하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환경에 해를 덜 끼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전의 방식 그대로로 돌아간다는 건 걱정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와서 기후가 파괴되었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와서 코로나19가 더 빨리 퍼졌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와서 감염병의 유행 주기가 갈수록 더 빨라진 건데. 정말 그대로 돌아가도 돼? 언론은 이를 ‘보복 소비’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대체 누구를 향해 보복을 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우리 자신에게?
애덤 맥케이가 작정하고 만든 기후 위기 프로파간다 영화 <돈 룩 업>(2021)은, 장르적으로는 블랙 코미디지만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지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혜성이 저기 버젓이 보이는데, 날아오는 혜성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번번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져 간다. 정치권은 모두를 멸망시킬 만한 혜성이 날아온다는 소식이 중간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까 당분간만 함구하자며 입막음을 시키고, 재계는 날아오는 혜성에 스마트폰이나 태양전지에 필요한 희토류 광석이 잔뜩 매장된 것 같으니 혜성을 폭파시키는 대신 작은 조각으로 쪼개서 지구에 추락시킨 뒤에 그걸 회수하자고 제안한다. 사람들은 정해진 멸망을 향해 돌진해 오는 혜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셀러브리티들의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더 즐기고, 과학자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아니, 좀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하지만 세상은 하늘을 올려다보라는 과학자들의 호소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기들만 똑똑하고 자기들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저 엘리트 집단이 평범한 우리를 무시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니 속으면 안 된다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세상을 가득 메운다. 멸망이 바로 코앞까지 왔는데도, 인간들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바꾸기보다는 계속해서 정쟁을 하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익을 볼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쪽을 택한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코로나19 국면에서 백신과 관련된 음모를 퍼뜨리고 마스크야말로 자유를 억압하는 거라며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러다가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이들이 더 죽어 나갔던 것처럼.
<돈 룩 업>의 악몽은 영화가 끝나도 현실 속에서 계속된다. 디비아스키 혜성이 돌진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기후 위기 속으로 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 안쪽으로 묶어두자는 계획은 이미 실현 불가능한 지점을 돌파했다. 우리는 아마 빠른 속도로 식량 위기가, 에너지 위기가, 기후 안보 위기가 차근차근 인류를 집어삼키는 걸 보게 될 것이다. 환경이 망가질수록 인간의 영역과 야생동물의 영역 사이의 경계는 더 빠르게 흐려질 것이고, 그럴수록 전에 없던 감염병의 유행도 더 빨라질 것이다. 80억 인구가 다시 80억 개의 마스크를 매일 갈아 쓸 것이고, 매립할 곳이 부족해진 마스크들은 다시 해양 쓰레기가 되어 기후 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반성 없이 돌아가려고 하는 한 그 미래는 피할 수 없다. 인간들이 예정된 재앙을 외면하는 동안 착실히 지구를 향해 돌진한 디비아스키 혜성처럼, 미래는 우리를 향해 착실하게 닥쳐오고 있다. 지금이, 우리가 뭐라도 하기 시작해야 할 순간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