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오디아르가 10년 전에 선보인 <러스트 앤 본>은 한 남자의 고백으로 끝난다. “사랑해.” 남자로서는 최초의 고백을 감행한 순간이지만, 이는 타인의 고백에 시차를 두고 전하는 응답이기도 하다. 알리는 몸으로 먹고사는 남자다. 가진 것은 육체뿐이고, 그렇기에 육체가 욕망하는 바를 실행한다. 복서가 되어 판돈이 걸린 시합에 정신없이 뛰어들거나, 하교하는 아들을 내팽개친 채 여자와 섹스하는 식이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정도 의미도 없이, 알리는 몸을 움직인다. 스테파니를 업은 채 바다에 들어가고, 스테파니가 부를 때마다 달려가서 섹스한다. 그런 무심과 무지가, 타인의 불행에 아랑곳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가 스테파니를 점차 일으켜 세운다. 덕분에 스테파니는 알리보다 먼저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절망하면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후, 자크 오디아르는 <파리, 13구>에서 다시 한번 같은 결말을 연출한다. 인터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자가 안 들린다며 장난스레 되묻자, 남자는 크게 소리친다. “사랑해!” 그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이자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응답이며, 무엇보다 ‘나도 너만큼 무섭다’고 인정하는 용기다.
이와 같은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영화 속 인물들은 마주치고 엇갈리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대개 출신지를 떠나온 이주민이며, 숨 돌릴 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의 속도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상태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리와 공원에는 인적이 뜸한데, 아파트에는 여태 불을 밝힌 집이 여럿이다. 누군가는 파티를 벌이며 밤을 지새우고, 다른 누군가는 홀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그 사이로 탄식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이크를 쥔 에밀리(루시 장) 곁으로 카미유(마키타 삼바)가 다가온다. 에밀리는 이제 중국어로 노래하는 대신, 그를 향해 프랑스어로 속삭인다. 쓸쓸함은 이내 사라지고, 소파 위에는 흥분이 감돈다. 발가벗은 두 몸이 포개지고 나면, 카메라는 다시 화려한 시가지로 눈을 돌린다. 수많은 고층 빌딩과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타운이 자리한 곳. 자크 오디아르는 파리 13구를 흑백 화면에 옮겨 놓는다. 총천연색을 지운 도시는 짙은 음영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는 미처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살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미 끝났거나 아직 시작조차 안 한 사랑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알리와 스테파니의 경우가 그러했듯,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에밀리는 룸메이트로 들어온 카미유에게 끌리지만, 카미유는 에밀리에게 섹스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카미유에게 섹스와 사랑은 각각 행위와 감정으로써 명확하게 분리된 영역에 위치하며, 연애란 상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격렬하게 몰아치는 감정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종류의 관계다. 에밀리는 섹스를 통해 느끼는 활기와 사랑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열패감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둘뿐인 집안에서는 살을 맞대고 침을 섞지만, 밖에 나가면 팔짱조차 낄 수 없다. “서로 즐겼지만 사귀는 건 아니”라고 단언하는 카미유 앞에서 에밀리는 입을 다문다. 카미유에게 새 애인이 생기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에밀리의 괴로움은 미움으로 치닫고, 둘은 더는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는 서로 다른 곳에서 통화하는 두 인물을 이분할 화면으로 비추며, 대화에 담기는 자극과 반응을 동시에 포착하려 한다. 아무리 말을 주고받아도 감정은 나눌 수 없는 상태, 통화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표정을 잃는 두 얼굴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노라(노에미 멜랑)는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포르노 배우 앰버 스위트(제니 배스)로 오인당한다. 새로운 출발을 갈망하며 파리에 왔지만, 순식간에 질 나쁜 소문과 성희롱에 시달리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한 달은 족히 지났을 무렵’으로 시점을 이동한다. 콜센터에서 해고당한 에밀리는 중국 식당 종업원이 됐고, 카미유는 박사 학위 공부를 중단한 채 친구의 부동산 사무실 운영을 떠맡았다. 대학에서 도망치듯 나와야 했던 노라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와중에, 앰버 스위트에게 화상 채팅을 시도한다. 네 명의 인물은 만남과 이별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한다. 잠시 둘이 됐다가 끝내 홀로 남는 도시의 젊은이들은 속마음을 감추며 관계를 맺고, 의심과 불안을 잠재우려 섹스에 몰입한다. 영화에서 희고 검은 몸이 부드럽게 맞물리는 장면은, 오히려 육체의 접촉이 마음의 연결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러니하게 드러낸다. 지금 당장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육체뿐이므로 섹스는 불가피해 보이지만, 섹스 후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그렇다면 “사랑해”는 어떻게 가능한가. 에밀리와 카미유 사이에 규칙 대신 믿음이 놓이려면, 노라와 앰버가 모니터 밖으로 나와서 실제로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영화는 타인을 향한 고백에 앞서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밀리는 할머니의 부고를 전하는 엄마에게 원망과 죄책감을 쏟아내야 하고, 카미유는 세상을 떠난 엄마의 휠체어 앞에서 오열해야 한다. 노라는 파리에 오기 전 10년 동안 지속했던 관계에서 풀려나야 하고, 앰버는 혼자 잠에서 깨는 일이 싫다고 말해야 한다. 저마다 제 안에 속한 누추하고 초라한 구석을 들춰본 후에야,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지 느낀 후에야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섹스 저편에는 문제가 있다. 가족 관계에서 오는 억압, 고등교육을 받고서도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현실,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정체성,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바람에 거듭하는 실수. 이 모든 문제를 제 것이 아닌 척 한쪽에 밀어둔다면, 사랑은 요원하다. <파리 13구>는 숱한 단절을 통과한 끝에 고백을 들려준다. 섹스와 연애의 순서를 뒤집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그런데도 어디선가 기어코 일어난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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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한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