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교회의 아침, 예배당에선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기도하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풍경이다. 곧 젊은 집사 주디(브리다 울)가 교회에 들어선다. 그녀는 짧게 기도한 뒤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청년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봐도 도통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교회에서 가장 조용한 안쪽 방에 탁자와 의자를 배치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보는 주디. 곧 켄드라(미셸.N.카터)라는 여성이 도착해 함께 방의 모습을 점검한다. 그들의 분위기를 통해 이곳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중요한 모임이 성사되리라는 짐작만 가능하다. 영화는 이처럼 핵심 정보를 거의 다 누락한 채로 다가올 사건을 예비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세심히 묘사하는 데 우선 힘을 쏟는다. 이내 두 쌍의 부부가 도착한다. 게일(마사 플림프턴)과 제이(제이슨 아이작스), 린다(앤 도드)와 리처드(리드 버니)다. 이들은 오는 길은 괜찮았는지,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머뭇거리며 말문을 트지만, 관객이 이 모임의 성격을 알아채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매스>는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부부를,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을 하나로 묶어버린 과거의 어느 참혹한 사건을 이야기 중심에 두고 있다. 계속되는 사소한 대화를 지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마침내 이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린다와 리처드의 아들 헤이든은 6년 전, 게일과 제이의 아들 에번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 창문으로 온화한 햇살이 쏟아지고 벽 한가운데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이 작은 방은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인 것이다. 곧장 원망과 울음, 추궁과 자책이 난무하는 모습을 떠올릴법한 상황이지만, 영화는 그 길로 쉽사리 들어서지 않으리라 다짐이라도 하듯 몇 가지 정황을 분명히 한다. 우선 이들은 처음 만나는 게 아니다. 제이는 예전에 내뱉었던 심한 말을 사과하며, 린다는 게일에게서 여러 차례 받은 편지들에 관해 말한다. 헤이든을 포함해 총 열한 명이 사망한 고등학교 폭탄 및 총기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중요한 정보들은 이미 세간에 알려졌다. 그러니까 네 사람은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 다시 만났다. 게일의 말처럼 이 모임의 목적은 ‘치유’다.
영화가 주요하게 다루는 건 이미 발생한 사건의 끔찍함도, 거기 얽힌 입장들의 복잡함도 아니다. 주의 깊게 묘사된 영화의 오프닝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매스>가 관심을 쏟는 건 오직 현재, 지금 이 순간이다. 영화는 단 한 차례의 플래시백 없이 다만 네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에만 집중한다. 관련된 단서를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매스>에서 관객은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만 그날의 사건에 접근할 수 있다. 당연히 많은 정보가 제한되지만, 외려 대화로 표출되는 그들의 감정과 관계의 역동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피해자의 부모는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절실하게 알고 싶다. 그래서 전조는 없었는지, 혹시 소년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하나씩 묻는다. 가해자의 부모는 소년이 겪었던 환경적 어려움에 관해 털어놓으면서도, 일부 방어적 입장을 고수한다. 이들은 반목하고 대화는 종종 중단된다. 엇갈림은 부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고 주의를 주거나, 이것만큼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을 긋는 식이다. 과연 대화만으로 치유와 용서에 이르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영화는 대화라는 행위에 엉긴 근본적 어려움마저 전부 품어보려는 듯 말하고 침묵하는 인물들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매스>는 <캐빈 인 더 우즈>(드류 고다드, 2012), <정글랜드>(맥스 윙클러, 2019)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배우 프란 크랜즈의 연출 데뷔작이다. 그는 갓 아버지가 된 2018년,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등학교의 총기 난사 사건을 접하고는 <매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렇게 피해와 가해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랑했기에 실수했고 또한 극도의 고통을 겪었던 그들의 부모에 관한 영화가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주요하게 참고했던 건 남아프리카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다. 감독이 전하길, 위원회는 남겨진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해자를 만나는 곳이었으며, 그들이 그곳에서 한 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진실과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덧붙인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아주 평범하지만, 한편으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취약하고 고통스러운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놀라운 힘이 필요하다.” 영화 후반부에 배치된 린다의 고백은 이러한 ‘놀라운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상적 장면이다.
<매스>의 대화에는 분명 감독이 ‘진실과 화해 위원회’로부터 얻은 감동과 통찰이 깃들어있다. 그건 전적으로 네 명의 대화자를 연기한 배우들 덕에 가능해진 일이다. 이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타임라인에 맞춰 매번 꼼꼼한 리허설을 진행했다. 또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특성을 사소한 제스처와 화법으로 탁월하게 표현하고, 목소리의 높낮이와 간단한 동선 등을 통해 뚜렷한 액션이 부재한 영화에서 국면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매스>의 배우들은 ‘대화의 놀라움’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소재를 영화적으로 구현하고, 관객들에게 그 놀라움을 체험케 한다.
한편, 말의 내용은 현실사회의 논쟁과 실제 사건에 결부된 관념에 과도하게 기대는 측면이 있다. 특히 총격의 가해자에게 부여한 각종 설정들은 불필요한 반복처럼 느껴진다. 린다와 리처드가 어렵게 꺼내놓는 기억 속에서, 헤이든은 어려서부터 생명에 무감했고, 폭력적인 온라인 게임을 즐겼으며, 성적 지향으로 인해 괴롭힘까지 겪은 소년이었다. 이는 <엘리펀트>(구스 반 산트, 2003)가 소재로 삼았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세간의 오랜 관념과 일부 부합한다. 어쩌면 여기엔 밀폐된 방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통해 미국 사회에 대해 직접 발언하고자 하는 야심이 일렁이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점차 분열되는 미국이 걱정되며, 깨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두 부부는 끝내 이해와 통합의 길에 접어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방 안에서나 가능하다. 문이 열린 뒤에도, 교회를 나선 뒤에도 서로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매스> 이후 남겨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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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시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