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영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전경들은 광주 YMCA 앞마당으로 밀고 들어오고 사방에서 페퍼포그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호창(임창정)은 세영(엄지원)에게 세상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지금? 이 상황에? 하지만 호창에겐 뜬금없는 말이 아니다. 시위야 서울에서도 매일 봤던 거고, 호창에겐 세영이 은근슬쩍 자신을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선동열(이건주)을 스카우트하러 온 자신을 위해 선동열의 어머니(양희경)와 자리를 주선해준 것도 세영이었다. 지금도 보라. 이 앞마당은 세영의 동지들로 가득한데, 세영은 다른 이가 아니라 호창의 안위를 위해 호창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번 광주 출장이 절호의 기회인 것만 같다. 호창은 라이벌 팀에 빼앗길 뻔한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야구를 향한 사랑을 되찾았으며, 7년 만에 헤어진 연인인 세영과도 다시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호창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세영을 용서할 용기를 냈다. 이 난리통 속에서 세영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러면 다시 7년 전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영이 자신을 떠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기 전까지, 호창은 그런 줄로만 알았다.

영화 <스카우트>는 광주일고 3학년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출장을 떠난 ‘신촌 Y대학교’ 야구부 행정직원 이호창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한때 촉망받는 대학야구 투수이자 세영의 연인으로 행복했던 호창의 삶은, 이소룡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1973년 7월의 어느 날 세영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며 망가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납득하지 못했던 호창은 선발투수로 등판한 중요한 경기를 망쳤고, 그의 야구 커리어도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모교의 야구부 직원으로 취직해 생계를 꾸리던 호창은 선동열을 스카우트해 오라는 특명을 받고 광주로 갔다가, 우연히 고향에서 YMCA 교사로 일하고 있는 세영과 재회한다.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가 그렇듯, <스카우트> 또한 시대의 맥락에 무심했던 방관자를 주인공으로 세우며 시작한다. 호창은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매일 거리를 메우는 최루탄 냄새가 지겹고, 광주 최루탄은 서울 최루탄보다 매운 것 같다는 게 감상의 전부다. 심지어는 운동권 청년인 세영 앞에서, 자신이 군대 시절 연대장이었던 전두환과 축구를 했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으며 남자로서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키득댈 만큼 눈치도 없다. 민주화 운동 한 가운데에 있는 광주 YMCA 교사 세영과, 자신을 ‘오빠’가 아니라 ‘형’이라고 부르는 세영이 낯설기만 한 호창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관객이 “이 작품 또한 5월 광주를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도 분노하고 각성할 만큼 부당하고 참혹했던 사건’으로 설명하려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인가’ 생각할 즈음, 영화는 흥미로운 방향 전환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선동열을 만난 자리, 호창은 선동열의 유니폼을 보고 자신도 잊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린다. 1973년 여름, 학교는 교내 민주화 시위로 시끄러웠다. 부당하게 해임당한 교수들의 복직과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투쟁하던 운동권 학생들에 골머리를 앓던 학교 본부는, 야구부원들에게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라 명령했다. 호창은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못마땅했으나, “등록금 내면서 학교 다니는 거 아니면 학교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선배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니폼에서 교표와 등 넘버를 떼고 학생 시위대 진압에 동원되었던 그 수치스러웠던 기억. 먼 발치에서 망설이고 서 있던 호창은, 재활 훈련 중이던 야구부 후배가 시위대와의 몸싸움 중 구타당하는 걸 보고는 눈이 뒤집힌다. 미친 듯이 배트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때려 눕혔다. 배트에 머리를 맞은 학생들이 선혈을 흘리며 주저 앉아도, 흥분한 호창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고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시 시위대의 일원이었던 세영이 있었다. 이성을 잃었고, 자의로 간 것이 아니고, 그게 부끄러웠고, 그래서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그 날의 기억 속에 세영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호창의 단순했던 세계는 무너진다. 자기를 버리고 간 세영을 용서하면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용서를 빌어야 했던 건 자신이었다.

“미안해.”

호창의 과거를 통해, <스카우트>는 ‘평범한 장삼이사의 정치적 각성’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강제 동원된 피해자이자, 권력을 대리해 시위대를 향해 잔혹한 폭력을 수행한 가해자인 사람의 반성’ 이야기로 뒤바뀐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호창의 목표는 “다시 시작하자”가 아니라 “미안해”가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났던 과거를 지닌 두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세영에게 뒤늦게 깨달은 제 과오를 사과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세영을 사모하는 건달 곤태(박철민)와 그 무리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에 붙잡혀 있던 세영을 구해낸 호창은, 살던 대로 살지 위험하게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하는 세영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한다. 미안하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광주항쟁을 이야기하는 많은 작품은 대부분 선명한 선과 선명한 악을 제시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민을 지키라고 준 총칼로, 신군부는 언로를 차단하고 비판을 틀어막고 비상계엄을 이용해 권력을 탐했다. 광주의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에 저항하자, 신군부는 본보기 삼아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운 광주의 사람들만큼 선명한 선이 어디 있으며, 그런 시민들을 무참히 살육한 신군부 계엄군만큼 선명한 악은 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시대에 무심했던 이들이, 그 선명한 선과 선명한 악이 대립하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각성한다는 내용은 광주항쟁을 설명하는 하나의 스토리텔링 틀이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그 선명한 선과 악 사이를 주목한다. 그 시절, 자의는 아니었더라도 국가에 강제 동원되어 폭력의 대리인으로 손에 피를 묻혔던 사람들이 있었고, 총칼에 언로가 막힌 탓에 시위를 ‘반국가 이적단체 좌익용공세력의 준동’이라고 왜곡 보도했던 언론이 있었다.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워서 어떻게 하냐’고 방관함으로써, 총칼을 앞세운 독재가 더 오래 지속되는데 기여한 수많은 방관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였던 호창이 제 몫의 책임을 자각하고 비로소 건네는 사과야말로 <스카우트>의 핵심 메시지다. 그렇게 사과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해하고 다시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러니 사과하라고.

2022년 5월 18일은, 평생 광주항쟁을 무력진압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세상을 떠난 뒤 맞이하는 첫 5.18이다. 세영에게 제 죄를 사과한 호창과 달리,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입으로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가족이나 측근들은 ‘살아 생전에 유감스러운 마음을 늘 가지고 계셨다’고 말하지만, 떠난 자는 말이 없으니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이들로부터 끝끝내 사과 받지 못한 채로 맞이하는 마흔 두 번째 5월 18일, 우리는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