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제작진의 인종차별로 화제가 된 <김씨네 편의점 아들>

모두가 <파친코>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역사 고증이 현실적으로 잘 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 해외 미디어 속 아시아인은 편향된 모습으로 연출되거나 보잘것없는 분량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아들>처럼 제작진의 인종차별로 아시아계 배우가 괴로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파친코>는 지극히 한국다웠다. 한국인의 진실된 서사가 담겨있는 건 당연하고 시대에 걸맞은 대사와 소품으로 시청자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 모든 건 <파친코> 주요 제작자의 대부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 가능한 일. 태어난 곳은 다를지라도 마음의 고향만은 같은 한국인이기에 공유하는 감정이 특별하다.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재미교포 감독 다섯 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코고나다

<콜럼버스>, <파친코>, <애프터 양>

<콜럼버스>

코고나다

감독이 되기 전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여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린 코고나다. 그의 첫 장편 영화 <콜럼버스>는 건축으로 유명한 도시 콜럼버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불안정한 '케이시'와 '진'이 서로를 통해 정적이고 순수한 치유의 과정을 가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코고나다 감독 특유의 대칭적인 영상 구조와 건축물이 결합되어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라는 호평을 들었다.

<콜럼버스>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엔 <파친코> 감독을 맡았다. 에피소드 4까지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은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이 "우리의 고국과 선조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으며 "작업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나는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한국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고.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인으로서 잠재된 정체성이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더욱 견고해진 듯하다. 코고나다 감독은 "이주민의 정체성을 다룬 <파친코>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파친코>는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애프터 양>은 미국 소설가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원작 '양과의 안녕'을 영화한 작품이다. 부부인 '제이크'과 '카이라'가 여자아이 '미카'를 입양하는데, 둘은 중국에서 온 '미카'가 동양 문화를 잊지 않게끔 양육 도우미 안드로이드 '양'을 구입한다. 어느 날 '양'이 고장 나고 '양'을 고치던 '제이크'는 뜻밖의 사실을 마주한다. 안드로이드인 '양'에게 자신만의 기억이 존재한다니. <애프터 양>은 미국이란 머나먼 타지에서 입양아이자 동양인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섬세히 비춰낼 예정이다. 코고나다가 감독하고 콜린 파렐, 저스틴 민이 출연하는 <애프터 양>은 오는 6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저스틴 전

<미쓰 퍼플>, <푸른 호수>, <파친코>

<푸른 호수>

저스틴 전

코고나다와 함께 <파친코>를 연출한 저스틴 전은 연출뿐만 아니라 연기에도 능숙한 감독이다. 2021년, 직접 쓰고 연출하고 연기한 작품 <푸른 호수>가 제74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꼽혔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부문으로 초청받았다. <푸른 호수>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입양아 '안토니오'가 강제 추방 위기에 내몰리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복투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아카데미 수상자인 알레시아 비칸데르가 아내 '캐시' 역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저스틴 전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제 작품에는 그런 고민이 늘 담겨있다"고 했다. 곧이어 "심지어 자연을 담아낼 때마저, 미국 토양 안에서 나의 뿌리를 어떻게 내려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늘 구하려고 해요. 해당 주제는 나와 나의 작품에 결코 뗄 수 없죠."라 말했다. <푸른 호수> 이전에 제작한 <미쓰퍼플>과 <국> 또한 한국계 미국인의 삶을 재조명하여 커다란 울림을 주는 영화다. 저스틴 전은 영화 속에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묵직하게 녹여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 현재 <파친코> 제작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파친코> 시즌 2 제작을 앞둔 상태다.


아이리스 심

<더 하우스 오브 서>, <엄마>

아이리스 심

2010년 다큐멘터리 <더 하우스 오브 서>로 데뷔한 아이리스 심 감독. <더 하우스 오브 서>는 1993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인 '앤드류 서'의 이야기다. 한인 이민자 가정의 '앤드류 서'가 누나의 부탁으로 누나의 약혼자를 살해한 사건을 단독으로 다뤘다. 당시 아이리스 심 감독은 영화 제작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나 자신의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앤드류 서'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아이리스는 27회 로스앤젤레스 아시안 퍼시픽 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엄마>

아이리스 심은 곧이어 <엄마>의 감독을 맡았다. <엄마>는 호러의 대가 샘 레이미가 제작하고 산드라 오가 출연해 화제인 작품이다. 엄마로부터 도망쳐 나와 미국의 한 농장에서 살고 있던 '아만다'가 어느 날 죽은 엄마의 유골을 받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아만다'는 끊임없이 환영에 시달리고 '아만다'의 딸인 '크리스'는 엄마의 이상행동에 공포심을 느낀다. 죽어서도 잔재하는 엄마의 한이 '아만다'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 어느 한 인터뷰에서 아이리스 심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문화가 제사라고 밝혔다. 어렸을 땐 싫어했지만 나이가 든 뒤엔 한해 중 제사를 가장 기대하게 되었다고. "집에 가면 우리 가족들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묵념을 한다. 이런 부분은 제가 영화에서 탐험해 보고 싶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밝혔다. <엄마>는 재미교포인 아이리스 심 감독이 한국인의 삶 속에 제사가 어떤 의미인지, 고심한 흔적이 새겨진 영화다.


정이삭

<무뉴랑가보>, <미나리>

<미나리>

정이삭, @연합뉴스

정이삭 감독의 첫 데뷔작인 <무뉴랑가보>는 르완다에서 종족 간 대학살로 고통받았던 소년들의 우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내와 직접 르완다 현장에서 정성들여 촬영한 만큼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었다. 원래 의사가 될 생각으로 예일대에 진학했다던 정이삭은 학점 따려 들었던 영화 수업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무뉴랑가보> 이후로도 <럭키 라이프>, <아비가일> 등으로 실력을 입증받았다.

2021년 해외 시상식을 휩쓸었던 영화 <미나리>의 주역을 꼽자 하면 윤여정 배우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이삭 감독이 첫 번째이지 않을까. 어렸을 적 할머니가 개울가에 미나리를 재배한 기억을 되살려 각본을 썼다는 정이삭은 미나리와 한인 이민 가족을 새로운 곳에서 번성하는 존재로 비유하여 연출했다고 한다. <미나리> 속 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인들의 처절하지만 희망찬 삶이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 인상 깊다. 감독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만들어 더욱 진솔한 영화 <미나리>. 작년 전세계 시상식에서 65관왕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재미교포 영화인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민자들의 삶이 혼란보다는 애틋함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