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와 같은 포스터 회사에서 만든 모양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천지불인 (天地不仁)이라는 내용이 있다. 우주는 그 어떤 대상에게도 사랑이나 증오등, 의도를 품고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연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발전시켜 번식시킨 뒤 죽음을 선사한다. 단지 그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것이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재지변 또한 그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의 서사는 다르다. 우주(자연)는 의도를 지니고 인간을 공격한다.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우주에겐 의도 따윈 없다면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기후온난화로 극지방을 녹이고 달궈진 대기의 온도로 각종 재해를 야기하며 산림을 황폐하게 만든다. 동식물을 말려죽이고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며 그로 인해 인간이 공격받는 형세가 된다. 여기에 인과성이라는 양념을 살짝 올려보자. 익히 알고 있는 장르영화, 재난물이 된다. 조금 더 나아가서 미약한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어디 한번 조절해볼까? 왜 못해? 하는 상상력을 심어보자, 쥬라기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됐다.

원작은 혼돈이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는 당시 대통령의 "영화 1편의 흥행수입이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 발언으로 유명해졌던 <쥬라기 공원> (1993)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상품이었다. 스크린에서 공룡을 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의 파티를 하기에 충분했다. 유전 기술의 발전으로 외딴섬에 멸종된 공룡들을 살려냈지만, 결국 탐욕으로 인해 인간은 죽어나간다. 극 중 혼돈이론가의 말대로 인간은 절대로 자연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에 교훈을 얻지 못한 인간들은 이번엔 무대를 도시로 옮겨 공룡테마파크를 만들려고 한다. 또 다시 탐욕에 대한 어리석음을 숨기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인 <쥬라기 공원2 - 잃어버린 세계> (1997)에서 티라노사우르스는 도심을 휘저으며 강아지와 인간을 잡아먹는다. 여기까지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1990) 의 내용이다. 원작 또한 걷잡을 수없는 것이 자연이기 때문에 인간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혼돈이론에 관한 철학을 전달한다. 영화 오리지널 스토리인 <쥬라기 공원3> (2001)는 인간이 품은 어떤 속성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공룡이 가미된 액션 어드벤처에 가까웠다.

<쥬라기 공원3>에서 익룡을 본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했다.

그리고 인간은 다시 한 번 공룡을 사육하기 시작했고 <쥬라기 월드> (2015)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1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것 처럼 보였으나 지나친 유전자 변형은 너무 똑똑한 공룡을 탄생시켰고 다시 한 번 인명피해를 키운다. 쥬라기 원조 시리즈부터 활약한 유전공학자인 헨리 우 박사는 공룡을 군사무기화 하려고 공룡의 능력을 키우다가 통제 불능을 초래했고, 결국 쥬라기 월드인 이슬라 누블라 섬은 인간의 방침을 거부한 채 폐쇄된다.

그리고 3년후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2018)에서 섬의 화산이 폭발하고, 공룡들은 6600만년전 처럼 다시 멸종할 위기에 처한다. 혼돈학자는 섭리에 따라 멸종하도록 내버려 두자고 주장하지만, 공룡을 아끼는자들과 그 공룡을 또 무기화하려는 세력에 의해 구조된다. 이 과정에서도 육식공룡이라는 재해는 인과율에 따라 자신들을 다스리려는 인간을 무참히 잡아먹는다. 그리고 공룡은 우리를 깨부수고 나가 인간의 삶속으로 침투한다. 이제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문 호러 감독이 연출을 담당하여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이미지들로 메세지를 전달한다. 인간이여, 자연을 통제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고저택 장면에서 잔혹한 동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선사했던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코로나로 인해 약간 늦게 개봉한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2022)은 5편을 이끌어온 쥬라기 세계의 대단원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돈을 노리는 악당들은 여전히 공룡과 연계된 일을 벌이고 있고, 주인공 오웬 (크리스 프랫 분)과 조력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번 편은 시리즈의 피날레답게 지상 최대의 공룡쇼를 보여준다. 살인랩터들이 도시를 활개치며 바이크를 탄 오웬을 추격하는 씬은 마치 <앤트맨과 와스프> (2018)의 창의적인 액션 장면들을 보는 것 처럼 새로운 이미지들이 있다. 게다가 <쥬라기 공원>의 시리즈와 <쥬라기 월드>의 주역들이 만나는 장면은 무척이나 반갑다. 티라노 계열의 육식공룡을 만났을 때의 핵심 주의사항인 "Don't move.." 를 동시에 읊조리는 그랜트 (샘 닐 분)와 오웬의 대사는 원조의 팬이라면 노스텔지어가 자극될만 하다. 그 외에도 말콤 박사가 기가노토사우르스를 유인하기위해 불꽃을 흔드는 장면이나, <쥬라기 공원1>의 빌런이 유전자 샘플을 빼돌리는 쉐이빙 크림을 들고 가다가 딜로포사우르스를 만나는 장면 등, 여러 오마주가 있어서 올드 팬이라면 무척이나 반가울 것이다. 29년이나 간직한 덕에 녹슬게 된 쉐이빙 크림은 참으로 달가웠다.

아예 굿즈가 된 면도크림. 그런데 저 아저씨가 저렇게 날씬하지 않았는데.

재난영화에서 천재지변은 언제나 징조를 보인다. 그 징후는 대개 인간성의 상실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서는 늘 인간성의 회복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재난장르 안에 신파적 속성이 유난히 강한 이유가 이것이다. <타이타닉> (1997) 호는 희망을 안고 출항했지만, 오만도 함께 실린 이 배는 결국 수장된다. 구명보트가 승객의 수만큼 준비되지도 않을 만큼 허술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서는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침대에서 마지막 키스를 나누며 차분히 죽음을 기다리는 노부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조용히 불을 끄는 엄마, 기울어져가는 선상 갑판 위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이윽고 바다는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모조리 집어 삼킨다. <투모로우> (2004) 에서는 인류가 초래한 기상이변으로 혹한이 찾아온다. 인간의 탐욕과 물질만능주의가 비판되는 가운데, 혈육을 구하러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공식을 읽을 수 있다.

<쥬라기 월드>시리즈에선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직업인 랩터 조련사가 등장한다. 손바닥으로 육식공룡과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시도하며, 부자연스럽게 되살린 자연의 존재들과 관계한다. 인간에게 자연이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교감이 필요한 파트너라는 제작진의 자그마한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