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즌 드라마 <죄인, The Sinner>이 청불 작품인 것은 뒤늦게 알았다. 이 드라마는 모두 시즌 4로 돼있으며 시즌4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수위가 높거나 잔혹한 장면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시즌1 : 코라>에서 주인공 코라(제시카 비엘)가 해변가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다소 그렇긴 하다. 코라는 과도로 처음 보는 남자를 난자한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코라의 사건과 그녀의 기억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그녀가 과거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알려주는 장면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난감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도 그 정도 장면 쯤이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요즘의 청불과 그 이하 관람가의 갈림길은 어쩌면 정서적 문제인 듯 싶다. 시즌1부터 4까지 <죄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속 괴물이 얼마나 깊은 심연에 살며 사람들을 괴롭히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이제 인간의 눈과 귀는 몸이나 교성으로 유혹받지 않는다. 그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게 좀 애매하고 위험하다. 예컨대 주인공 해리 앰브로스 형사는 매저키스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내와 사이가 크게 벌어져 있고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곧 이혼을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마다 누군가 자신을 때려 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런 욕구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아내와 정서적으로 틈이 벌어진 이유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카페에서 일하며 일종의 에스코트 서비스로 돈을 버는 여성을 종종 찾아 간다. 해리의 손톱은 검게 멍이 들기 일쑤인데 그건 그 여성이 그의 손을 구둣발로 짓이기기 때문이다. 해리는 여자의 매질에 헐떡이면서도 ‘일이 다 끝나면’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다.

해리의 정신은 정상적이지 않다. 수사 사건에 대한 해리의 ‘촉’과 직관이 아무리 동물적인 감각이다 한들 그건 어쩌면 그의 비정상적 정신상태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사실 비정상이다. 특히 각 분야마다 뛰어난 사람들은 대개가 정서적 뒤틀림을 안고 산다. 세상은 비정상의 인간들이 지배한다. 그 비정상의 상식을 받아 들여야 하는데 청소년들에게 그같은 모순의 사회학을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청불이다. 도장 꽝꽝!

아무리 그래도 <시즌4 : 퍼시>의 이야기까지 청불인 것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시즌1>만큼 높은데다 어쩌면 주인공 해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해방되어 가는 순간을 맞기 때문에 그 공감도, 만족도가 나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적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며 인생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부각시켰다는 면에서 혹여 아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한들, 그리 탓하거나 시청을 금하거나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8부작이고 시간이 꽤나 소요될 것이어서 입시 공부의 루틴이 깨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런 점들이 신경이 쓰인다면 쓰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각 가정이 알아서 선택할 문제이다. 아이들이 드라마와 영화가 좋다는 걸 어찌 말리겠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의 시즌물은 모두 연결해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시즌 1,2,3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즌4만으로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구조가 짜여져 있다.

<시즌4 : 퍼시>는 해리가 도체스터(메릴랜드 동부 해안에 있는 카운티) 경찰서에서 은퇴해 화가 애인 소냐(제시카 헤흐트)와 여행을 떠났다가 맞닥뜨리게 되는 살인사건을 그린다. 해리는 부둣가에서 기묘한 느낌의 여성 퍼시 멀둔(앨리스 크레멜버그)을 만나게 되는데 우연찮게도 극도의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리가 새벽에 산책을 나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실종되는 그녀를 발견하게 되는 게 화근이다. 퍼시 멀둔은 없어졌다. 이상한 종교가 그녀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이 해안가 마을 전체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작은 삼촌은 기독교를 매개로 조카인 퍼시를 성적으로 학대해 온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아빠는 심각한 약물중독으로 보이고 멀둔 가문을 이끌고 있는 할머니 멕(프랜시스 피셔)은 마을의 모든 범죄를 조종하거나 은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퍼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죽었을까. 죽었다면 누가 죽였을까. 무엇보다 왜 죽였을까. 설마 가문의 비밀을 위해 할머니가 손녀를 죽였을까. 사건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화목해 보이고 결속력이 강해 보이는 집안일수록 그 안에 괴물과 악마가 꼬리를 크게 늘어뜨린 채 엄연히, 떳떳하게 살아 가고 있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인간의 모든 혈연관계에는 어쩔 수 없는 비밀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만든다. 당신들의 집안은 어떠냐고, 그 안부를 물어 보게 만든다.

시즌 드라마 <죄인>이 청불인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가장 안전판이라 내세우는 가정, 공교육, 종교, 경찰과 같은 공권력 내부에 하나같이 금이 가 있고 무수한 균열이 나 있다는 것이다. <시즌3 : 제이미>는 십수년 동안 착실하게 살아왔던, 혹은 그런 척 해왔던 고등학교 교사 제이미가 알고 보면 끔찍한 정신착란의 살인마였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시즌2 : 줄리언>은 줄리언이란 이름의 소년을, 이상 종교집단에서 꺼내 와 친부모에게 데려다 주려 했던 젊은 남녀가 살해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진범을 밝혀 내는 과정에서 보는 사람들도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가 알았던 기성의 질서가 사실은 모두 허구의 제국이었음을 지적하는 내용인 만큼 이 시즌 드라마의 정신적 수위는 상당한 편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런 만큼 거꾸로 성인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적극적으로 권할 만한 작품이다.

제목 ‘죄인’이 가진 의미는 사실상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 살인극의 범인=죄인이 알고 보면 주인공 해리 앰브로스 형사라는 것이다. 해리 만큼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유일한 이유는 해리만큼 범죄가 벌어진 심리적 기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자, 평범한 사람일 수 없다. 그가 바로 죄인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다. 삶의 이면을 받아 들이고 성인이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사건을 한편으로는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그 무서운 진리를 알려 주는 작품이 바로 시즌 드라마 <죄인>이다. 당연히 그런 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다. 꽝꽝!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