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말 그림을 그려?” “잘 그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등장인물 영희는 혼자 그림을 그린다. 영희는 발달장애인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는 극에 고독과 사랑의 기운을 진하게 드리우고, 그의 그림은 서사 전개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만든다. 세상은 아직 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지만, 그래도 영희 곁엔 영희만큼이나 어여쁜 이들이 있다. 적어도 드라마는 그렇게 말한다.
시놉시스 첫 문장에 단독으로 등장할 법한 캐릭터는 아니나, 영희는 드라마 귀퉁이에 서서 극의 숨은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영희를 연기한 이는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는 정은혜. 드라마에서처럼 그는 실제로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는데, 결코 혼자는 아니다. 그림과 외로움을 연결 짓는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정은혜 작가는 그림과 함께 사람들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가 그리는 건 그야말로 ‘니얼굴.’ 손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보며 그림을 그린다. 옆에는 새 모양의 낙관을 찍고 서명하는데, 이때 쓰는 문구가 바로 ‘니얼굴’이다.
<니얼굴>은 ‘성인이 되어서도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던 27살 은혜 씨가 4천 명 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 작가가 되는 과정을 담는다. 만화가 엄마의 화실에서 잡지 사진을 따라 그린 게 발단이 됐다. 엄마인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 씨의 그림에서 “내가 따라 하기 힘든 선, 가르칠 수 없는 선”을 발견했고, 은혜 씨는 매달 북한강을 따라 열리는 프리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캐리커처 작가가 됐다.
카메라는 은혜 씨의 일상을 묵묵히 따라간다. 2016년 봄에 시작된 촬영은 2020년 봄까지 꼬박 4년간 이어졌고, 덕분에 영화엔 강변의 사계절 풍경이 소담하게 담겼다. “다음 달 마켓에도 참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어김없이 테이블이며 도구를 챙겨 들고 자리 잡는 은혜 씨. 천막으로 지붕을 지은 그의 자리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웃음소리를 남기는 작은 우주다. 겨울엔 난로의 온기가, 여름엔 찬 음료의 청량함이 함께 하고, 호기심에 다가왔던 이들이 즐겁고 정다운 인사와 함께 떠나가는 곳. 은혜 씨를 찾는 사람이 많아져 이제는 예전처럼 마냥 천천히 그릴 수 없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예쁘게 그려주세요.”라는 말을 좋아하는 ‘니얼굴 작가’다.
영화의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은혜 작가의 부모라는 사실은 영화에 흥미로운 층을 한 겹 깐다.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서동일 감독의 전작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2006)에서도 다뤄진 바 있는데, <니얼굴>에서는 이제 막 날개를 펴고 자립하기 시작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줄곧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모습에는 절로 눈이 간다. 은혜 씨는 엄마가 너무 챙겨주는 것도, 그림에 자꾸 한마디씩 얹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장차현실 작가는 종종 허탈하게 웃으며 마냥 어리지 않은 딸을 바라본다.
장차현실 작가는 정은혜 작가의 그림이 남들처럼 전체를 어림잡고 세부를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흐름을 따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그냥” 그리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익숙한 방식으로 가르칠 수 없고, 애초에 그렇게 가르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은혜 씨 그림에 대한 적절한 설명인 동시에, 부모란 결국 자식이라는 타인을 읽고 이해하는 해석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부모는 은혜 씨를 새로 발견했다. 부모의 진지한 인터뷰 하나 없는 영화지만, <니얼굴>은 자식과 함께 성장하는 부모의 시간을 담는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수많은 차별과 문턱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니얼굴>은 그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거나 무언가 발언하려는 영화는 아니지만, 장애인의 자립과 관련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정은혜 작가의 작업은 그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 한 명에 만 오천 원으로 셈해진다. 은혜 씨는 1,600명의 캐리커처를 그리고 번 돈으로 첫 전시를 준비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정은혜 작가에게 단행본에 들어갈 삽화 작업을 의뢰했고, 이후 전시회는 몇 차례 더 열렸다.
돈은 자립을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은혜 작가의 일화는 얼핏 ‘특출난 능력을 갖춘 소수자 서사’처럼 보일 법하다. 스스로 번 돈으로 큰 목표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촘촘하게 얽힌 사회의 그물망을 한꺼번에 응시하려 노력한다. 그것은 한편으론 장애인고용공단과 같은 공적인 시스템이다. 영화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은혜 씨의 모습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이러한 안전망 없이 홀로서기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영화는 조용히 읊조리는 것 같다. 다른 한편엔 은혜 씨와 함께 매일의 축제를 즐기는 친구들처럼 사적인 네트워크가 있다. 춤추고, 노래하고, 껴안는 이들은 일상을 생기로 물들인다. <니얼굴>이 포착해내는 자립이란 그 왁자지껄함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몸짓이다. 그 움직임이 참으로 예쁘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