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있는 6부작 독일 드라마 <향수>는 2018년작으로 비교적 오래된 드라마이다. 어쩌면 넷플릭스 청불 드라마의 원조 격이다. 드라마가 비교적 격렬하고 적나라하다. 장면이 더러 그렇기도 하지만 생각과 상상, 설정이 꽤나 대담하다. 청소년들이 보기에 어렵고, 그들이 본다 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전체 아우라가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렇게 산다고? 사람들의 마음 속 심연에 저런 괴물이 들어 앉아 있다고?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해법이 수학공식처럼 담겨져 있지만 인간 심리의 오묘함에 대해선 답을 주지 않는다. 그건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동기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거나 보는 사람들 스스로 추론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당연히 청불이다. 꽝꽝.
영화는 엽기적인 사건에서 시작된다.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 가수이고 무명이지만 은근히 추앙하는 남자들이 많은 K가 숨진 채 발견된다. 버려진 그녀의 시신은 근처에 사는 로만(켄 듀켄)의 어린 딸 아이가 발견하고 아빠와 엄마 엘레나(나탈리아 벨레츠키)에게 말해준다. K의 머리는 박박 깎여져 있다. 어떤 인간이 이런 식으로 여성을 죽인 걸까. 사건 현장을 본 여성 형사 지몬(프레데리케 베흐트)은 이게 당최 예사롭지 않은 사건의 시작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느낀다.
이후 이야기는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로 중층적인 구조로 펼쳐진다. 도무지 사건이 어떻게 이어질지 짐작하기 힘들게 한다. K에게는 네 명의 남자, 한 명의 여자, 총 다섯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이들 모두와 육체적, 정신적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로만과 부쳬(트리스탄 퓌터)라는 인물과는 그렇다. 부쳬는 깡패다. 그는 어린 시절 겪은 일들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크게 입었다. 그는 폭력적인 인물이지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성이 K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되자 그녀의 어린 딸을 보호하려 애쓴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폭력적이다. 로만은 와이프인 엘레나를 때린다. 엘레나는 13살 때 현재 남편인 로만과 부쳬, 또 다른 친구인 모리츠(오거스트 딜)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며 나중에는 부쳬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일종의 스톡홀롬 신드롬을 겪으며 이들 곁에 오래 남아, 친구처럼 살아간다. 친구 무리들 가운데 이빨 때문에 합죽이란 별명을 가진 다니엘(크리스티안 프리델)은 그런 엘레나를 사모한다. 다니엘과 엘레나는 어릴 때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켰으며 근 20년 넘게 비밀을 지켜 오며 살아가는 중이다. K를 죽인 자, 다른 여성을 죽인 자, 극 후반 정신상담 의사의 반신불수 누이동생을 똑같은 방식으로 죽인 자가 이들 가운데 있다. 그럴까? 정말 이들 가운데 있을까.
드라마는 명백하게 조향사 모리츠에게 범행의 포커스를 모아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정작 범인으로는 다니엘이 잡히지만 여성 형사 지몬은 그가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몬은 같은 경찰서의 유부남 반장과 외도 중이다. 그녀는 범인을 좇는 것인지, 범인의 마음을 통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애인을 포획하고 잡아두려는지, 혼돈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등장인물들 모두 엄청난 결핍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생존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이 드라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복제하는 척하지만, 그보다는 소설 속 주인공 그르뉘에의 심리를 맥거핀으로 삼는데 그친다. 소설 『향수』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로 사용되는 척, 사실은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숨기기 위한 속임수 장치라는 얘기다. 이 드라마에서 모리츠가 일생일대 진정한 향수를 얻으려고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맥거핀이다.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다. 어떤 거래를 위해 벌어지는 범죄인데, 보는 사람들은 그 점을 6부가 다 돼서야 알게 된다. 복기를 해 보면, 범인은 다섯 명 중 누군가인 한명에게서 다섯 명 전체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온 셈이다. 범인은 사연이 많은 이들 다섯 명을 이용해 자신의 모자란 인생의 무엇인가를 채우려 한다. 이들 다섯명이 어릴 때 저질렀던 일, 비정상적인 지금의 일상 때문에 경찰의 눈이 이들에게 쏠리게 한다. 이들 다섯 명은 어쩌면 범인에게 철저하게 이용된 셈이다.
최고의 향수는 없다. 최고의 향수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것 역시 찰라적이다. 사람은 인생을 완성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모자라다는 생각, 그걸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허상일 수 있다. 그 배부른 관념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고 사랑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킨다. 드라마 <향수>는 굉장히 자극적이지만 이야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철학적인 척해서 나중엔 뇌수(腦髓)가 자극되는 작품이다. 난해하다. 그런 점에서 당연히 청불이다. 청불 도장 꽝꽝!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