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부터 각종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동기 부여 영상’ 중엔 누적 조회수 수백만 건을 넘긴 콘텐츠들도 있다. 시원하게 욕 잘하거나 수험생보고 ‘빨리 집어치우라’며 직언하는 인강 영상, 연예인들이 강연 등 자리에서 한 이야기들을 편집해 모은 영상들이 밈(meme)으로 유행한다.
물론 보라고 올려 두었겠지만, 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신속하게 폰을 덮도록 만드는 영상들이다. 한두 번 시청만으로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도록 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을 대신해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동기 부여 영상’에 중독돼 오히려 할 일을 팽개치게 만들기도 할 정도다. 자꾸 보다 보면 재미도 있고 자극도 되는 데다, 유행을 크게 타지 않아 유튜브에서도 꾸준히 조회수가 누적된다. 다만 대체로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의 ‘말’들로 구성돼 있어,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불가능을 넘어서 한계를 초월했는지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던 어느 날.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한 상태로 평생 살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잊고 싶어 DVD방에 혼자 들어가 <록키 발보아>(실버스터 스탤론, 2006)와 <행복을 찾아서>(가브리엘 무치노, 2006)를 골라 보며 영화 속 주인공들에 이입하고는 DVD방 휴지를 다 쓸 일이었을까. 비슷한 시기 개봉했던 영화 <스타 이즈 본>(브래들리 쿠퍼, 2018)과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 2018) 속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위태로울수록 자꾸만 스스로가 겹쳐 보이던 날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전술한 극영화도 동기 부여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들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와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한 인물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메시지에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촬영 대상의 성취 여부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실제 인물의 갈등이 고스란히 촬영돼 기록적 가치도 높은데다 연출 개입 여지가 많은 극영화보다 설득력도 높은 편이다. 10여 분 남짓 동기 부여 동영상만으로 회복하기 힘든 슬럼프에 빠졌을 때 추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있다. 인간계를 초월해버린, 넷플릭스에서 살아 숨 쉬는 전설 세 사람을 소개한다.
거역하지 않는 경지
<리버 러너>
이소룡은 뛰어난 배우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했지만 탁월한 사상가 또는 명상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룩한 성취야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으니,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 가지는 무게도 남다르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 이소룡은 컵의 모양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물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환경 또는 자신의 변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쉽게 말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 모두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상대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먹을 수 있는 마음이다보니 그 경지에 도달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리버 러너>(러쉬 스터지스, 2021)는 4대강 정복에 도전한 카약 선수 스콧 린드그렌을 다룬 영화다. 물론 그 ‘4대강’은 아니고 세계 4대강인데, 이 선수가 한창 전성기에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게다가 린드그렌은 철저히 완벽주의자다. 자신의 약점을 배척하고 감추려던 린드그렌은 한때 팀원들과 갈등을 빚고 카약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표현 그대로를 빌려 “그 어느 급류보다도 무서운 인생의 급류”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은 그를 다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린드그렌은 뇌종양 앞에서 예전의 고집을 내려놓고 그저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노화도 수용한 채 자연이 무릎을 꿇리면 무릎을 꿇겠다는 자세로 나아간다. 죽어도 유감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감기만 걸려도 출근을 망설이는 수준에서 보자면 뇌종양은 카약을 그만두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핑계겠지만, 그는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으로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전할 강은 인더스 강. 오프닝 시퀀스를 장식한 무시무시한 급류가 인더스 강에 흐른다. 카약 위에서 오직 강을 거스르는 방법만을 배웠던 린드그렌은, 오히려 ‘흐르는 강물’이 되기로 하고 다시 인더스 강에 카약을 띄운다. <리버 러너>는 완벽에 스스로를 가두고 단련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급류에 맞서기만 하다가 삶이 괴로워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혼자 가지 않는 경지
<14좌 정복 : 불가능은 없다>
<14좌 정복 : 불가능은 없다>(토퀼 존스, 2021)를 올바로 보려면 익숙한 서사를 버려야 한다. 사실 산악 영화 중에는 <던 월>(조시 로웰, 피터 모티머, 2017)처럼 등반 그 자체나 등반가의 목표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영화에 익숙한 일반 관객들은 <14좌 정복>을 그저 도전과 성취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14좌 정복>은 시시한 영화가 된다.
주인공 님스 푸르자는 산악 환경에 익숙한 네팔 출신 산악인이다. 네팔인으로서는 최초로 영국 해군 특수부대에 합격했을 정도로 체력과 정신력 모두 갖춘 상태다. 그가 6개월만에 해발 고도 8000m가 넘는 산을 정복하겠다 선언했을 때, 님스 푸르자의 도전이 얼마나 확신에 차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그에겐 이미 14좌 정복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대륙의 무수히 많은 등반가들이 14좌를 정복하며 이름을 알리는 동안 무명의 세르파들은 그저 그들을 도운 ‘유령’ 비슷한 취급만 당했으므로, 님스 푸르자는 네팔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프로젝트 파서블’을 선언한 것이다. 도전 성공 여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를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겠다 마음 먹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파서블’이 그가 혼자 돋보이고자 시작한 도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님스 푸르자는 죽어가는 다른 팀 산악인까지 구조하고, 시체마저 보듬으며 봉우리 하나 하나를 그저 묵묵히 나아간다. 이런 경우 MBTI 검사는 해보나마나다. 님스 푸르자는 목표지향적이고 리더십이 강하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전형적인 ENFJ일 것이다.
그는 팀원들을 신뢰하면서도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전략과 방법을 취한다. 그러니 그의 체력이나 정신력 또는 14좌를 6개월 만에 정복했다는 점보다는, 그가 자신의 팀 뿐만 아닌 다른 팀의 성공까지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도전이 그 스스로가 아닌 어머니, 가족, 세르파 공동체, 네팔 국민들을 위한 것으로 확장해나간다는 것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14좌 정복>을 감상하는 시각적 경험은 단순히 인간 승리의 감동을 넘어설 것이라고 본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경지
<최후의 호흡>
<최후의 호흡>(리처드 다 코스타, 알렉스 파킨슨, 2019)은 전술한 두 영화와 조금 결이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험하기로 악명 높은 북해에 작업을 위해 투입된 잠수부 크리스 레몬스가 고립됐다. 물론 이 잠수부는 물리력으로 끊기 힘든 짱짱한 케이블로 배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배가 조류에 휩쓸려 표류하면서 점점 잠수부와 멀어지고 자동 정박 시스템마저 불통이라면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끔찍하다. 산소통의 산소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분 남짓이지만, 표류하던 배가 시스템을 수동으로 전환하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수준이니 크리스 레몬스는 사실상 죽은 목숨이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물론 잠시 애석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인터뷰했다. 방금 문장이 스포일러였는데, 독자들이 눈치 챘을지 모르겠다.
주인공 스스로 이 상황을 자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 곧 크리스 레몬스가 흑해 심해에 고립된 인간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도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물론 <14좌 정복>이나 <리버 러너>와 다르지만, <최후의 호흡>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 상식이나 과학이 가리키는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케이블이 끊어지고, 복귀해야 할 배는 수 킬로미터 밖으로 멀어진 상황. 자신의 죽음까지 끌어 안으며 삶의 존엄을 높인 주인공, 골든 타임을 훌쩍 넘겼지만 구조를 포기하지 않은 동료애, 수습한 크리스 레몬스가 죽었을 것이라 단정짓지 않고 불어넣은 ‘최후의 호흡’. 그래서 영화 <최후의 호흡>은 과학에서 말하는 불가능, 우리가 스스로 정하는 한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기록에 있다면, <최후의 호흡>은 불운한 사고에서 건진 소중한 교훈과 희망을 시각 유산으로 남긴 의미가 큰 영화다. 숭고한 가치를 일깨워 준 크리스 레몬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테일러콘텐츠 / 영화 칼럼니스트 신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