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마블의 행보를 보면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장대한 세계관을 페이즈로 나누어 기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퇴장시키고 다음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간다. 이에 반해 라이벌 DC의 행보는 조금 아쉽다. 강력한 IP가 무색하게 DC 영화들은 연결성이 떨어지고 완성도 또한 일관적이지 않다. 이에 워너는 리부트와 크로스오버(두 개 이상의 작품을 엮는 행태)를 통해 변화를 모색 중이다.
영화 <플래시>는 변신이 절실한 DC 확장 유니버스(DCEU)의 야심찬 패다. 하지만 에즈라 밀러의 사생활 이슈가 워너의 야심에 제동을 걸고 있다. 과연 DC의 봄이 오기는 할까? 여기에 소니 픽처스가 제3지대를 노리고 있다. 마블•DC 히어로와 결이 완전히 다른 ‘원펀맨’이라는 카드를 들고 말이다.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히어로 영화/드라마 제작 관련 소식을 모아본다.
모발은 못 지켜도 사람은 지킨다!
‘원펀맨’ 실사 영화 감독이 된 저스틴 린
저스틴 린 감독이 ‘원펀맨’ 할리우드 실사 영화를 연출한다. 저스틴 린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스타트렉 비욘드>을 연출한 블록버스터 전문 감독이다. 시원시원한 액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촬영본을 꼼꼼히 확인하고 편집에 공을 들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액션에 몰두해 이야기를 놓치는 주객전도를 범하지 않도록 언제나 캐릭터에 중점을 두고 제작한다고 한다. 한편 달걀 같이 매끈한 두상을 자랑하는 ‘원펀맨’은 괴수들이 출몰하는 현대 도시에서 취미로 히어로 일을 하는 사이타마의 이야기다. 사이타마는 의욕 없어 보이는 표정과 달리 비현실적인 힘을 갖춘 인물로 그 어떤 괴수나 로봇, 심지어 외계인까지 주먹 한 방으로 날려 버린다. 세계관 최강의 힘을 가졌지만 촌스러운 외형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고 가난에 시달리는, 우리가 흔히 알던 먼치킨 히어로와는 다르다. 저스틴 린이 사이타마의 반전 매력과 원작의 코믹 요소를 어떻게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마블 판 수어사이드 스쿼드 ‘썬더볼츠’
마블이 ‘썬더볼츠’ 영화를 제작한다. 코믹스 속 썬더볼츠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슈퍼 빌런들이 테디어스 로스의 지휘 하에 정부 미션을 수행하는 버전이 그 중 하나다.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육군 장군이었던 테디어스 로스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국무부 장관으로 승격, 이어서 <블랙 위도우>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별명인 ‘썬더볼츠’는 그가 지휘하는 슈퍼 빌런 집단을 지칭한다. 한마디로 마블 판 ‘수어사이드 스쿼드’인 것이다. 썬더볼츠의 구성원 역시 코믹스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이미 마블 영화에 등장했던 제모 남작과 옐레나 벨로바, 태스크 마스터가 유력 후보로 언급된다. <블랙 위도우>의 에릭 피어슨이 집필을 맡은 사실도 해당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만약 테디어스 로스가 등장한다면 올해 3월 사망한 윌리엄 허트를 대신해 누가 배역을 맡을지도 관심사다. 감독에는 하이틴 로맨스 영화 <페이퍼 타운>을 연출한 제이크 슈레이어가 내정됐다. 2023년 여름 제작에 돌입한다.
혼혈 뱀파이어 헌터가 펼치는 피의 복수 ‘블레이드’ 촬영 시작
마블 스튜디오의 기대작 <블레이드>가 7월 촬영을 시작한다. 2019년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케빈 파이기 사장이 프로젝트를 언급한 이후로 3년 만이다. <블레이드>는 뱀파이어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뱀파이어 헌터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앞서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이번 리부트 작품에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마허샬라 알리가 주인공을 맡는다. 케빈 파이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으며 마블 페이즈 5에 속한다고 밝혔다. 페이즈 4가 작년에 막을 올렸는데 케빈 파이기의 눈은 페이즈 5에 가 있으니, 마블이 그려둔 청사진의 스케일이 궁금해진다. 마블의 기획력을 입증할 <블레이드>는 <모굴 모글리>를 연출한 바삼 터릭이 메가폰을 잡는다.
내부 반응 좋은 ‘플래시’에 찬물 끼얹는 에즈라 밀러
내년 개봉을 앞둔 <플래시> 솔로 영화에 대한 내부 반응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섬광처럼 빠른 히어로 ‘플래시’는 2014년 드라마로 제작되어 현재 시즌 8까지 제작됐고, <저스티스 리그>(2017)를 통해 DCEU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랜트는 <플래시>의 테스트 스크리닝 반응이 “놀랍도록 긍정적”이며 “DC 영화 중 최고”라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주연 배우 에즈라 밀러가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난동을 부려 두 차례 체포된 데에 이어 최근에는 미성년자 그루밍 의혹에 휘말렸다.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가 실제로 트러블 메이커라는 점은 관객의 몰입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 이로 인해 드라마에서 플래시를 연기한 그랜트 거스틴을 데려오라는 여론도 꽤 높다. 물론 2억 달러가 투입된 영화를 이제 와서 재촬영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거기에 <플래시>는 향후 DC 멀티버스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제작을 마쳤고 에즈라 밀러의 행동은 수위를 넘어섰다. 이제 DC가 할 수 있는 건 에즈라 밀러가 조용히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결국 워너 브라더스가 에즈나 밀러를 퇴출시킬 계획을 잡고 있어 <플래시>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의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원조 히어로가 어쩌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슈퍼맨 리부트
‘히어로=망토’ 공식을 세운 슈퍼맨은 히어로의 원조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이전에 슈퍼맨이 있었다. 2020년 조사에서 슈퍼맨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제치고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히어로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워너가 슈퍼맨을 리부트 하려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리부트작은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발표 외에 오랫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워너-디스커버리 인수합병이 있다. 합병과 함께 적잖은 고위급 인사이동이 펼쳐졌고 때문에 의사결정이 더디어졌다는 분석이다. 샤잠, 블랙 아담, 아쿠아맨 등 이미 제작에 돌입한 작품들이 대기 중이라 슈퍼맨은 더더욱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각본은 이미 완성된 상태로 20세기를 살아가는 흑인 클라크 켄트를 그린다고 한다. 반면 슈퍼맨 리부트 계획이 이대로 유보를 거듭하다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먼저 DCEU를 재정비한 후 추후에 슈퍼맨을 끼워 넣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갈 길이 구만리인 DC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