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U 전반 및 토르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페이즈가 한창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이제 '어벤져스' 원년멤버들은 거의 은퇴한 상태지만, 개중 유일하게 토르만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가족을 잃고 우울증에 휩싸이는 바람에 잃어버린 몸매를 되찾으려 자기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물론 이번에도 별 차이 없었다면 관객이 외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도 들린다. 거기에 오래 전 헤어졌던 연인 제인 포스터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재회한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토르 시리즈의 신작인 <토르: 러브 앤 썬더> 이야기다.

원년멤버 중에서 시리즈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때문에 솔로무비가 4편째를 맞는 캐릭터는 토르뿐이다. 솔로무비 시리즈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과히 평가가 좋았던 건 아니었던 데다가 MCU 세계관으로 들어오면서 상당히 너프당한 것 때문인지 어벤져스 초창기까지만 해도 다른 캐릭터에 비해 인기도나 인지도가 떨어졌던 걸 돌이켜 보면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부분 캐릭터들이 이제 히어로네임을 2대에게 넘겨주면서 명실상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MCU에서, 여전히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토르는 그만큼 정말… 정말 수많은 일을 겪었다. 이 세계관의 슈퍼히어로들 중 어느 누가 우여곡절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았겠냐만은, 토르는 유독 불행했고 유독 지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하게 유쾌해 보인다. 심지어는 아스가르드를 잃고 지구에 피난와서 꾸린 뉴 아스가르드의 집구석에 코르그와 함께 처박혀 있을 때도, 두둑한 뱃살을 두들기며 만취해 있을 때도 좀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쩐지 유머러스했다. 그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온(이 경우… 숙취를 이겨낸) 다음에는 강건하게 자기 할 일을 해냈으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더 강해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수한 전쟁광이었던 폐하

토르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토르: 천둥의 신>에서 두 번째 <토르: 다크 월드>를 거쳐 <토르: 라그나로크>에 이르기까지 토르는 성장을 거듭했다. 전쟁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투기 넘치던 아스가르드의 왕자는 평화의 가치를 깨달았고, 직접 아들을 지구로 추방했던 오딘으로부터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인정받았으며 아스가르드는 국가나 영토가 아닌 백성들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라그나로크를 견뎌내는 선택도 해냈다. 세 편 내내 고질적인 갈등이었던(그리고 관객을 가장 흥미롭게 했던) 이복동생 로키와의 관계 역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장을 거듭한 데 비해 불행은 계속되기만 했는데, 어머니인 프리가를 시작으로 아버지 오딘, 동생 로키까지 떠나보내고 아스가르드의 백성들도 잃게 되면서 토르에게 남은 것은 오직 복수심인 것처럼 보였다. 결국 복수귀가 되어 폭주하던 토르는 인피니티 워를 지켜봐야만 했으나 정작 허망한 복수에 성공한 다음에는 우울감에 휩싸여 몸매도 잃고(...) 게임에만 빠져 있는 슬픈 모습을 보여준다.

다들 기겁했던 그 시절 그 토르

물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여전히 좀...나사 빠져 보이긴 했지만) 숭고한 싸움에 동참했고 이 과정에서 로켓 라쿤에게 강렬한 싸다구를 한 대 맞기는 했으나 어쨌든 진정한 히어로로 다시금 거듭난 것처럼 보였다. 뉴 아스가르드를 발키리에게 맡긴 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의 우주선에 함께 오르는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토르가 합류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루머 대열에 오르곤 했다.

솔로무비 시리즈로는 네 번째인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예고편은 토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다음인 현재의 토르는 슈퍼 히어로로서의 과거에 안녕을 고하며 '진짜 내 모습을 찾겠다'고 말한다.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슈퍼히어로는 이제 안녕이라니, 뭔가 어색하긴 한데 흥미로워 보이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간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 다음 홀로 수련하고 있는 토르를 보니 어색하기도 한데, 1980년대 락스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토르 다음으로 등장한 사람이 다름아닌 '마이티 토르' 제인 포스터인 걸 보면 궁금해지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그나저나 나탈리 포트만은 다시는 안 나온다더니…

1980년대 스타일의 비주얼에 음악, 원작 코믹스에서 등장한 바 있는 장면들의 재현, 새로운 아스가르드와 그곳의 지도자가 되어 있는 발키리, 또다른 신 캐릭터인 제우스와 올림피아, 다시금 등장한 제인 포스터(그런데, 토르로…!)까지 원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팬이라면 흥미로운 지점이 꽤 많은 예고편이다. 거기에 '신 도살자' 고르가 메인 빌런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리즈의 스케일이 보다 확장되었음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비전>에서 완다 막시모프가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면서 MCU의 캐릭터들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기존과는 스케일 자체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모두 발현시킨 완다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염력을 사용하는 기존 능력은 물론이고, 가장 강력한 마법사였던 닥터 스트레인지조차 완다 앞에서 고전하게 했다. 거기에 멀티버스의 도입으로 인해 각각의 캐릭터들은 기존의 세계관에서 보여주지 않은 다채로운 능력을 지닌 채 새롭게 등장할 기반을 닦았다. 말하자면 어느 우주에서 어떤 캐릭터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작금의 MCU에서 볼 때 ‘이 우주’의 ‘지구’에서의 강력함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수준이 되었으며, 우주 전체를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멀티버스를 오가는 강력함을 갖추고 있어야만 이제 '강한 캐릭터'라고 명함이나마 내밀어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셈이다.

갑자기 가족영화 엔딩 같은 분위기

그래서 MCU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버텨낸(...) 캐릭터 중 하나가 된 토르 오딘슨이 여전히 데미갓이자 어벤져스의 올드비로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성장 혹은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전 우주를 주름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그게 어떤 결집력이든, 본인의 잠재력이든 간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토르는 힘이나 능력 면에서 어떤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기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을 더 강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로키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라든지, 아스가르드의 군주로서의 태도라든지, 타노스와의 싸움 그리고 히어로로서의 자각이 그랬다. 즉 토르는 싸움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성장한다기보다는 원래 갖고 있었던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힘을 드러내는 측면이 강했다.

크리스찬 베일이 맡아 화제가 된 '신 도살자 고르'는 예고편에서 신을 모두 죽이기로 한 이유에 대해 ‘신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어 다 죽이기로 했다’고 간략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토르에게만은 '너는 뭔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는데, 1편의 토르였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말이다. 그 모든 사건을 거치며 성장한 토르이기에 고르가 보기에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을 테고, 그래서(추측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번 영화에서 펼쳐질 고르와의 싸움은 지난 세월을 거치며 토르가 얻은 정신적 성장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씨익

장장 10년을 이어간 '인피니티 사가'의 마무리 이후 대부분의 히어로들과 그들의 기반은 새로운 2대에게 자리를 내줬다. 캐릭터가 교체되거나, 무대를 옮겼으며, 사이드킥으로 등장시켜 종장에는 이어받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준비를 했다. 물론 이번 영화인 <토르: 러브 앤 썬더>에도 새로운 토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메인 스토리는 토르 오딘슨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 같아 보인다.

이렇게 토르가 장장 4편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토르의 성장 스토리가 관객을 매료시킬 만큼 흥미로웠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우인 크리스 헴스워스의 강력한 의지도 한몫 했다. 다른 배우들과는 조금 다르게 크리스 헴스워스는 계속해서 토르 역할을 맡고 싶다는 발언을 계속해 왔으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솔로 무비가 시리즈로 이어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토르가 해내는 셈인데, 이런 지속성의 근거가 단순히 배우의 의지라고는 하기 어렵다.

MCU만큼 전세계를 아우르는 대형 프랜차이즈 입장에서, 단순히 배우가 역할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솔로무비 1, 2편이 그리 성공하지 못했으며 캐릭터의 매력포인트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지금 생각해 보면 MCU의 토르는 <토르: 라그나로크> 이전까지는 뭔가 캐릭터의 정체성이 불확실했던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장장 3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이 캐릭터가 인피니티 워의 복수를 끝으로 무대에서 사라져 버리는 건 여러모로 아깝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시…볼 수 있나?

거기에 완전히 리타이어한 듯했던 로키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복귀하고, 4페이즈의 주된 주제인 멀티버스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언젠가는 다시 로키와 재회(물론 그 로키는 아닐 것이고...여전히 티격태격하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이상 여기에서 토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관객 역시 그를 보내주기 시기상조인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토르는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관객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굳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그것도 슈퍼히어로 무비는 CG때문에 돈이 엄청나게 드는데) 영화를 제작하고 전세계에 개봉시킬 만큼 마블은 한가하지 않다. 덕분에 우리는 토르의 네 번째 솔로무비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다음 달이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뉴 아스가르드의 현재와 발키리, 코르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새로운 빌런인 고르까지 뉴페이스와 올드페이스들이 섞여 흥미로운 장면들을 예고편에서 선보이기는 했지만 이제까지의 토르 시리즈의 주축이었던 토르-로키 형제의 좌충우돌 애증(!) 싸움이 불가능해진 만큼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나름대로의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지옥의 다이어트

수많은 빌런 캐릭터들 중에서도-물론 완전히 빌런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졌지만-가장 인기 있었고, 배우 자신도 캐릭터에 꽤나 큰 애정을 보이면서 훌륭한 팬서비스로 보답했던 '로키'가 없는 첫 번째 토르인 셈이다. 물론 로키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을 테고, 로키와 쌓아 왔던 갈등은 비극적이기는 방식이기는 해도 어쨌거나 해결된 상태니 이번에야말로 좀 더 토르의 내면과 심경에 집중한 토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 놓을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보여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재기발랄한 유머러스함과 더불어 토르 캐릭터에 대한 신선한 제시이자 반격이 훌륭하게 성공했으며 이후의 팀업에도 영향을 끼쳤던 건 명확하다. 이번에도 토르 시리즈의 메가폰을 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별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동시에 토르의 성장을 다시금 목격할 수 있는 영화를 선보일 수 있길 바란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