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진 모텐슨’이라는 본명을 가진 마릴린 먼로는 1926년에 태어나 마흔 살을 채 채우지도 못하고 1962년, LA에 있는 자택에서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수사 끝에 자살로 판정이 났지만 사망 정황을 둘러싼 몇 가지 의문점들과 사망직전 그녀가 가진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로 인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자살’은 의혹으로 남았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하워드 혹스, 1953), <7년만의 외출> (빌리 와일더, 1955) 등 마릴린 먼로가 남긴 작품들은 황금기 할리우드의 표상이자 스크린으로 재현되는 여성성 (female sexuality)의 화두를 던진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동시에 넘쳐나는 프린트 매체에서 상통한 그녀의 이미지는 – 가느다랗게 뜬 실눈, 반쯤 젖혀진 머리, 약간의 앞니가 보일만큼 벌어진 입술 등 – 순간적 엑스터시를 포착하는 전시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먼로와 함께 성은 대중적으로 포착되고, 제조되어 판매되었다.
영화학자, 리차드 다이어는 할리우드의 스타를 분석한 그의 저서 (Heavenly Bodies: Film Stars and Society)에서 마릴린 먼로가 “자연스럽고 무해한” 섹스 심벌을 탄생시켰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먼로는 앞선 느와르 시대를 지배하던 치명적이고 주체적인 팜므 파탈과 대비되는 온순하고 부담 없는 여성 성을 상징했던 것이다. 마릴린 먼로는 전후 미국사회에서 부상한 ‘건강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으며 앞으로 생산될 무궁무진한 성 상품의 모체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캐릭터가 ‘소비되는 여성의 성’만을 피력한 것은 아니다. 점점 고착화되는 본인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먼로는 나름의 사투를 벌였다. 모두를 놀라게 한 세기의 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도 이러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그녀의 작품의 선택과 연기의 톤에 있어서도 변화를 일으켰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했던 여성 시나리오 작가, 아니타 루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먼로는 부자를 쫓는 미녀, ‘로렐라이’를 주체적이고 영리한 캐릭터로 재해석해 성적 상품으로 소비되던 밤쉘 (Bombshell: 금발미녀)의 이미지를 전복했다. 유작, <미스핏츠> (1961)에서는 관습적인 결혼관계에 회의를 갖고 별거를 결심하는 로즐린 역을 통해 먼로의 섹스 심벌 이미지를 넘어선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먼로의 내외적 성장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지만 이 영화들 조차 그녀 자신의 ‘영화적’ 삶을 따라가지 못했다.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은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올해 개봉 예정인 <블론드>와 미쉘 윌리암스 주연의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2011)을 포함, 현재까지 50여편이 넘는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들이 마릴린 먼로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했다.
수많은 작품들 중,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마릴린 먼로 미스터리: 비공개 테이프> (에마 쿠퍼, 2022)는 아일랜드 출신의 퓰리쳐 수상 작가인 엔써니 서머스가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3년간 추적하며 수집한 650개의 테이프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LA의 한 지방검사에 의해 1982년 먼로의 사건이 재오픈 되면서 서머스는 그녀의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650개의 전화녹음 테이프에는 먼로의 정신과 담당의, 동료 배우인 제인 러셀, 그리고 산업관계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육성이 담겨있다.
그간 제작되었던 먼로 관련 영화들이 단순히 배우로서의 먼로의 활약을 조명하거나, 동료 배우들의 회고를 담은 다소 로맨틱한 접근을 택했다면 이번 다큐멘터리는 먼로의 이전 삶 보다는 그녀의 정치성과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죽음이 케네디 형제와 FBI에 의한 타살이라는 그간의 의문을 풀겠다는 서머스의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되는 내용들 중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이슈가 있다면 먼로가 당시에는 위험할 정도의 좌파적 정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FBI가 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케네디 형제는 종종 그들의 별장에서 마릴린 먼로와 정치적인 토론을 벌이고는 했는데 이 가운데 핵무기에 대한 이슈에 있어서도 먼로는 핵을 옹호하는 케네디와 정면으로 대립했다. 냉전시대의 정점에서 점점 ‘좌익화’되어가는 먼로와 꺾이지 않는 그녀의 대중적 영향력은 케네디에게도, FBI 에게도 위협이었을 것이다.
케네디 형제와의 정치적 정황에도 서머스는 먼로의 죽음이 그들 혹은 FBI에 의한 살인이라고 단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서머스는 먼로가 그 전부터 신경안정제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이 케네디와의 불안한 관계로 더 심해진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650개라는 어마어마한 증언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선별해 반영한 그의 ‘연구적’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결론이 궁극적으로 먼로 사건의 원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가 <마릴린 먼로 미스터리: 비공개 테이프>를 통해 증명한 것은 먼로가 섹스 심벌로 부상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그녀의 사망 이후 현재까지도 지속 되고 있는 대중과 매체의 편향된 인식이다.
산업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서머스는 어떻게 먼로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후 미국 사회가 요구했던 리버럴한 성문화의 아이콘으로 ‘제조’되었는지, 스타로 등극하게 되었을 때 할리우드는 여배우들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했는지, 그 가운데 먼로는 그녀에게 찍힌 거대한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정치적으로 탈출하려 했는지 밝혀낸다. 서머스가 100분 남짓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얻어낸 업적은 놀랍고도 시기적절하다. 그녀는 더 이상 과도한 섹스어필로 처형당한 비운의 섹스심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는 뛰어난 재능과 비상한 머리로 할리우드 황금기 내에서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아티스트였으며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시 몇 안 되는 여성 영화인이자, 미국이 해선 안 될 일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던 (잠재적) 액티비스트였다. 그녀가 지하철 송풍구 위에 서 바람에 날리는 치마폭을 붙잡는 모습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