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본 건가. 택시 뒷자리에 타고 있던 나는, 조수석 헤드레스트에 설치된 모니터 하단에 흐르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눈을 비볐다. “계엄령 발동 직전 내린 ‘6.29 선언’...한국 초유의 위로부터 민주화 혁명” 비비고 다시 봐도 똑같았다. 6월 항쟁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었던 김용갑 전 의원이 한 보수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란다.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선언은 국민들의 의사를 수용해 위로부터 민주화를 이뤄낸 혁명이라고.

허탈한 마음에 굳이 본문을 찾아보니 더 가관이다.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정권의 수뇌부와 노태우를 포함한 민정당 수뇌부 모두 직선제 개헌에 반대했으나, 민정수석이었던 자신만큼은 정국의 지엄함을 알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설득해 결국 계엄령 발동이 아니라 6.29 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노라고. 결국 ‘한국 초유의 위로부터 민주화 혁명’이라는 그 대단한 6.29 선언을 결단하고 설득해 낸 지혜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자기 자랑은 못내 역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부정선거와 독재, 정적 사법살인 등을 일삼던 이승만은 (당시) 국민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모두모두 나서서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 4.19 혁명의 결과로 권좌에서 쫓겨났는데, 보수 진영은 이를 “국민들이 강하게 요구하자 끝내 그 열망을 수용해 평화적으로 하야한 국부의 결단”으로 포장한다. 더 끔찍한 발포, 더 지독한 독재가 아닌 것을 감사하게 여기라고, 이승만은 국민들이 원하니 결국 하야할 만큼 민의를 받드는 사람이었다고… 정말 민의를 받드는 사람이었다면 정적을 사법살인하거나 부정선거를 일삼는 일은 안 했겠지만, 보수 진영의 세계관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저항을 포기하고 하야한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떠받든다.

6.29 선언에 대한 김용갑 전 의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직선제 개헌은 일부 학생운동 진영이나 민주화세력 진영만의 요구가 아니었다. 운동과 거리를 둔 채 생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시민들과 넥타이 부대를 포함한 시민사회 전체의 요구였다. 6월 항쟁은 ‘위로부터의 민주 혁명’도 아니고, 특정 진영의 정치적 승리도 아닌, 명백하게 ‘온 아래의 민주 혁명’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가장 열심히 탄압한 사람들이, 이렇게 뻔뻔스레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할 일인가? 하긴, 이순자도 그랬다던가. 직선제 개헌을 결단한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당시 집권세력이 계엄령을 운운했다고 해서 정말 결단할 수 있긴 했을까? 때는 한때 사형수로 몰렸던 김대중을 구명하기 위해 미국 정계가 모두 한 마음으로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던 무렵이었고, 무엇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에서 여는 88 올림픽을 간신히 1년 남겨둔 시점이었다. 폐허 위에 눈부신 한강의 기적을 써내려 간 걸 자랑하기 위해 마련한 무대를 앞두고, 민주화 요구를 하는 시민들을 때려잡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도 보수 세력은 마치 계엄령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걸 자신들이 대국적인 결단을 내려서 막아낸 것처럼 포장하기 바쁘다. 왜, 총칼을 충분히 들이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나? 딱 그만큼만 잡아가고, 그만큼만 고문하고, 그만큼만 죽이고 말았던 은혜에 감읍이라도 해야 하는가? 아무리 보수세력이 정권교체를 이뤄낸 세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뭐 조금이라도 말 같은 이야기를 해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거 아닌가.

장준환 감독을 향한 애정과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경탄에도 불구하고, <1987>은 조금 비릿한 영화다. 온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정치적 승리의 순간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환전해 낸 특정 세대 정치인들이 떠오르는 것도 불편했고, 그 무렵 활발하게 활동했던 여성 활동가들의 활약이 거의 무(無)에 가깝게 지워진 것도 의아했다. 영화는 6월 항쟁 이후 이어졌던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선 조금의 힌트도 남기지 않았는데, 그 자체로 노동자 대투쟁은 왜 충분한 연대를 받지 못하고 고립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1987>에는 연희(김태리)가 있었다. 영화 내에서 관찰자이자 화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여성 캐릭터 연희의 설정은, 개봉 당시 갑론을박을 불러왔다. 정치에 관심 없이 살다가 잘생긴 남자 선배(강동원)에 의해 계몽되는 무지한 대학 새내기 역할 아니냐고, 가뜩이나 부족한 여성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밖에는 묘사하지 못하냐고. 그러나 연희는 무지한 캐릭터가 아니다. 연희는 이미 외삼촌(유해진)이 노조를 조직하려다가 고초를 겪고 동료들에게도 배신당한 것을 목격했고, 그렇기에 운동을 냉소하게 된 인물이었다.

연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다가 다친 이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지도 알며, 심지어 때론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했던 동료들에게서 버림받고 고립되는 일을 겪는다는 것도 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만큼 알고 있기에 더더욱 운동을 냉소하고 외면하고 싶게 된 사람. 연희는 바로 그런 사람조차도 참지 못하고 끝끝내 투쟁에 나서게 만든 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였다. 권력의 폭압이 극에 달해, 체념과 패배주의를 학습한 이조차 이 악물고 떨치고 일어나게 만든 야만의 시대.

어느덧 2022년, 제6공화국이 출범한지도 34년이 지났다. 1987년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이제 예전만큼 뜨겁진 않다. 87년 체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사실상의 양당제로 인해 책임정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당하고,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외면으로 시작된 87년 체제가 경제적 양극화를 잡지 못한 건 필연이라 말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난다. 더구나 왕년의 민주투사들이 그 정치적 자산을 사유화한 채 정치적 보수화를 경험하거나,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비리를 저지른 역사들이 누적되면서, 1987년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래도 시들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6.29 선언은 위에서부터의 민주 혁명 같은 게 전혀 아니었다고. 비록 지금은 더는 뜨겁지 않은 역사가 되고야 말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어디까지나 아래에서부터의 혁명이 일궈낸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알만큼 알고 지칠 만큼 지쳐서 운동을 냉소하게 된 연희 같은 사람조차도 끝끝내 팔뚝질을 하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쳐서, 그렇게 온 아래가 한 마음이 되어 만들어 낸 결과였다고. 그 타도 대상이었던, 독재체제의 일부였던 이들이 뻔뻔스레 제 덕인 양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