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테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같은 대형 제작사 못지않게 뛰어난 퀄리티를 가졌기로 유명하다. 자본의 맛이 톡톡히 들어갔으나 대중적이진 않은 작품이 많다. 그 이유는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창작의 자유'가 애니메이션 장르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충분한 예산과 보장되는 자유. 창작자에게 편안한 환경을 선사하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유독 빛난다.
그래서인지 7월 8일에 새롭게 공개된 <씨 비스트>도 호평을 받으며 현재 로튼토마토 지수 100점을 기록 중이다. 앞으로도 이 기록이 이어질진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상황이다. 그간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없어 심심했던 이들을 위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씨 비스트>의 관람 포인트를 모아보았다.
<모아나>+<드래곤 길들이기>=<씨 비스트>?
<씨 비스트>와 <모아나>는 바다 탐험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독립적이고, 호기심 넘치고, 희망을 품은 어린이가 장엄한 바다에서 맞닥뜨리는 세계. 생각만 해도 재밌지 않은가. 그러나 <씨 비스트>는 <모아나>보다 더 현실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씨 비스트> 속 배경은 무서운 괴수가 바다를 배회하고 있는 시대. 바다 괴수 사냥꾼이 명예로운 직업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제이콥'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냥꾼으로, 어린아이인 '메이지' 또한 그를 동경한다. 바다 괴수 사냥꾼의 목적은 오직 괴수를 사살하는 것뿐이다.
어느 날 바다에 '레드'라는 거대한 괴수가 나타나고 '레드'를 죽이기 위해 사냥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제이콥'은 어떤 연유로 '메이지'와 동행한다. 그러다 바다 괴수 사냥꾼을 꿈꾸던 '메이지'가 갑자기 '레드'를 죽이지 말자고 '제이콥'을 설득하고 둘의 갈등이 시작된다. <드래곤 길들이기> 속 '히컵'과 그의 아버지 '스토이크'가 생각나지 않나. 비슷한 설정을 가졌기에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연상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세 작품 모두 각자만의 쟁점을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깊이를 지녔다. <씨 비스트>를 직접 감상한 후에, 세 작품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듯하다.
믿고 보는 '크리스 윌리엄스'?
<씨 비스트>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윌리엄스는 디즈니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감독이다. 무려 25년의 기간 동안 디즈니에 머무르며 <뮬란>과 <쿠스코? 쿠스코!>, <슈퍼 라이노>, <릴로 앤 스티치> 등의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크리스 윌리엄스가 처음으로 감독과 각본을 모두 도맡았던 작품은 <볼트>. 3D 애니메이션의 과도기라 불렸던 시절에 개봉한 <볼트>는 아직까지도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호평을 듣는 작품이며 따로 게임으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가 많았다. 첫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이끈 크리스 윌리엄스는 이후에도 소소하게 <겨울 왕국>의 냉정한 장사꾼 '오큰' 목소리 연기까지 맡았다. 저런 담백한 얼굴로 '우~후'를 뱉었다니. 안 어울려서 놀랍지 않나.
<볼트> 이후엔 <빅 히어로>의 감독을 맡았다. 사랑스러운 로봇 '베이맥스'와 가족이 되는 과정을 담은 <빅 히어로>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크리스 윌리엄스는 <빅 히어로> 이후에 <모아나>의 공동 연출로 활동했으며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을 마지막으로 디즈니를 떠났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디즈니를 떠나 독자적으로 <씨 비스트>를 제작한 이유를 묻자, 크리스 윌리엄스는 <씨 비스트>가 디즈니에 적절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라 답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비교적 <씨 비스트>와 비슷한 결을 가진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크리스 윌리엄스는 디즈니에서 공동 감독만 맡았으나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소니와 협업하여 만든 <씨 비스트>는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담고 있다.
귀엽고(?) 다양한 바다 괴물들
<씨 비스트>에는 보편적으로 귀여운 생김새라 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메이지'의 친구가 되어주는, 심해어를 닮은 '파랑이'와 거대한 '노랑이'와 '노랑이'의 아이들. 그리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레드' 등. (넷플릭스 번역상의 실수가 있었는지 '레드'를 자꾸만 '빨갱이'로 해석한다. 참고하기를.) 이 영화 속 동물들은 말 그대로 동물의 모습이다. 제 삶의 터전을 노리면 맞서 싸우고, 호의를 보이면 달리 공격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솔직하고 담백하다. <씨 비스트>는 뛰어난 그래픽으로 동물들의 실제 같은 피부 질감을 담아냈다. 현실적이면서도 귀엽다. 동물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씨 비스트>를 기분 좋게 시청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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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
'지피지기'. 적을 알고 나를 알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모두 아는 이 사자성어는 예로부터 전쟁에서의 승리 비법으로 불려왔다. 서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야 손쉽게 싸움에서 이긴다는 뜻으로, 전쟁이 자주 벌어졌던 과거에선 아주 효과적인 전술법이었다. 물론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말이다. 21세기인 지금도 무분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어디에서나 싸울 일 투성이다. 알아야만 살아남는 이 시대에 이토록 유용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략법이 아니라 상대가 정말 '적'인지 파악하는 것 아닐까. 더욱이나 생명에 관련한 싸움이라면. <씨 비스트> 속 '메이지'는 바다 괴수 사냥꾼을 꿈꿨음에도 불구하고 괴수들은 죽임을 당해야 할 침략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닫는다. 그들은 그저 예로부터 바다에서 살아온 생명이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모두의 집이자 고향이어야 할 바다에 소유권을 내민 건 인간이라는 사실을. '메이지'는 모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잘못된 먹이사슬을 바로잡고자 한다. <씨 비스트>는 현대사회에서도 팽배한 인간중심주의를 명료하게 짚어내는 영화다. 이 시대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거대한 몬스터 '레드'와 소녀 '메이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현재 넷플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