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성불(成不)영화는 성인 불가 영화, 그러니까 성인들은 다소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만큼 철저하게 청소년용 성장영화나 가족영화, 자연다큐멘터리만을 다루는 글을 의미한다. 이건 하나의 실험이다. 영화 글을 쓰는 데 있어, 청소년 정서에 저해된다고 생각하는 단어, 문장(심지어 상상력까지)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가를 시도해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기준은 1970~80년대의 시대적 정서이다. 유교적 정서와 전통적 가치가 높았던 때이다. 실험 시작. 꽝꽝!(청소년 법관의 망치 소리다.)
할리우드에서 숱하게 만들어지는 미식 축구, 곧 풋볼 영화는 사실 풋볼을 다루는 척만 할 뿐이다. 비교적 정면으로, 그러니까 경기의 내용과 선수들의 모습만으로 영화의 거의 전편을 채운 작품은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 정도이다. 하지만 <애니 기븐 선데이>도 결국 경기(세상의 모든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과도한 성취욕과 욕망에 대한 얘기이다. 그 과정에서 오가는 막대한 돈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풋볼은 경기 룰이 꽤나 복잡해서 그걸 일일이 영화의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꾸로 그게 더 지루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풋볼영화는 풋볼을 이길 수가 없다. 실제 경기가 주는 긴장감, 그 폭발적 재미를 따라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풋볼영화는 경기를 보여주는 척만 할 뿐이다. 경기보다는 경기에 앞선 훈련 과정, 거기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에 주력한다. 올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찰스, 대니얼 형제 감독의 가족영화 <홈 팀>도 마찬가지이다. 결국은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 부성(父性)의 이야기, 부자(父子)간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뉴올리언즈의 세인츠라는 프로 풋볼팀 감독 션 페인츠의 실화를 그린다. 실화라고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보는 사람들이 미루어 짐작할 터인데 아마도 감독과 제작진이 ‘윤색의 윤리학’을 지키며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허구의 비율을 얼마나 넣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는 현실의 비현실성, 비현실의 현실성을 교차해 가며 이야기를 직조(織造)하는 것이다. 흔히들 ‘정말 영화 같은 일이군’이라고 얘기할 때가 현실의 비현실성이다. 너무 영화 같아서 실감이 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저건 영화일 뿐이야’라고 얘기하는 건 비현실의 현실성을 느낄 때 대체로 그렇다. 영화일 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그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 영화이고 <홈 팀>도 그중 하나이다.
션 페이튼(케빈 제임스)은 NFL(National Football League 전미프로축구협회) 우승후보 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감독 직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신세가 됐다. 풋볼 도박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권한과 직무가 정지된다. 재판까지 약 1년이 진행될 것이다. 실망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않는 그는 시간도 남겠다,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 온다. 뉴올리안스나 텍사스 모두 미국 남부지방에 있고 대체로 보수적인 동네들로 구성돼 있다. 오로지 전진 패스만으로 영역을 확보하며 결국 골 인에 이르는 식의, 공격적인 전법의 미식 축구의 룰이 어울리는 곳이다. 몸으로 세게 부딪히고, 넘어트리고, 잡아 당기고 등등 격렬한 게임을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텍사스인들이다. 당연히 NFL에 대한 인기가 꽤나 높으며 심지어 유소년풋볼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션 페이튼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어쩌다 아들 코너(크리스 티튼)가 소속된 유소년풋볼팀의 훈련과정과 경기를 목격하게 되고, 또 어쩌다 이 엉망진창 팀의 감독이 된다. 와이 낫?(Why not?) 시간은 어차피 1년이나 남아 있다. 허송세월 하느니 뭔가라도 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과연 이 오합지졸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션 페이튼은 뉴올리언스 팀에서 했던 훈련 방식을 가져 오려다 실패를 맛본다.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건 헤어진 아들(션 페이튼은 아내와 이혼했고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동거중이다.) 코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아들의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남자다움, 풋볼스러움을 가르치려던 그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코너는 션이 떠난 것,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영화 <홈 팀>은 스포츠 정신이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그러니까 아이들 같은 약자에게서 조차 배워 나가되 그것을 통해 스스로 더욱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얘기해 주는 작품이다. 아우 지루하고 뻔할 것 같다고? 천만에 전처 베스(재키 샌들러)가 함께 살고 있는 남자 제이미(로브 슈라이버)는 요가 선생인데 이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가 포복절도할 만한 코미디를 제공한다. 아이들의 미식축구를 보는 것도 역시나 웃기는 면이 많다. 오죽하겠는가. 여자 아이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에 오히려 경기를 할 때마다 오금이 저려하는 아이나 몸집은 비교적 비대한데 상대팀 선수와 몸이 부딪히는 것을 겁내하는 아이나, 션 페이튼과 힘을 합해 연습과 경기를 해 나가면서 아이들 한명 한명은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해 나간다. 그 과정에 약간의 감동도 깔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최종 경기 스코어는?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기는, 이른바 졌지만 잘 싸우는 모습을 향해 영화는 나아간다. 그 전개가 괜찮다. 유소년 풋볼 팀의 원래 코치로 션 페이튼이 오기까지 고군분투, 아이들을 이끌고 나가는 청년 트로이는….. 맞다. <트와일라잇>의 바로 그 늑대 청년 테일러 로트너다. 청춘물로 반짝 스타가 된 이후 평범한 배우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청소년들이여, 정신 바짝 차리기를. 한때 잘 나갔다가도 금방 바닥으로 가는 게 인생이로소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