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일수록 초인의 등장을 갈망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이 나타나 잠재워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 드라마는 히어로를 어떻게 등장시키고 있을까. 힘없는 백성들이 고통받던 조선시대의 의적부터 현실 고증을 녹여낸 현재의 열혈 히어로를 지나, 멸망과 재앙이 닥친 미래의 새로운 히어로들까지. 히어로 장르는 시대를 녹여내며, 동시에 시대를 구원한다. 한국 드라마는 ‘영웅’을 작은 구석에서부터 세계의 한복판까지, 우리 가까이에 늘 머물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한국의 히어로들을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보자.
스위트홈 – 괴물이 될 것인가 영웅이 될 것인가
왜곡된 인간의 욕망이 괴물의 모습으로 발현되고, 낡은 아파트 주민들은 괴물들에게 고립된다. 이 절망 속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소년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동명의 서바이벌 스릴러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국내 첫 공포 크리처 시리즈로, 죽어버리거나 혹은 괴물로 살아남아야 하는 극한의 생존 게임을 스릴 있게 그려냈다. 극의 초반에서 주인공이자 히어로인 소년 현수는 삶에 희망이 없는 모습으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이웃들과 함께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인간의 왜곡된 욕망과 탐욕이 괴물을 만든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크리처 장르의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생생한 괴물의 구현까지. 특히나 시각적인 면에서 강렬하고 거대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한국 크리처물의 진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첫 시즌은 불완전하지만 강인한 히어로의 탄생을 그렸고, 차기 시즌 제작도 확정된 상태이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 – 말랑말랑 유쾌발랄 퇴마 히어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겸 퇴마사 안은영이 고등학교의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 선생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 가는 학원 명랑 판타지 시리즈. 장르문학에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이경미 감독과 정유미 배우의 만남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유쾌 발랄 히어로물을 탄생시켰다. 요술 야광봉과 비비탄총으로 젤리 따위를 무찌르는 존재도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본작은 그렇다고 말한다. 신비한 심장 모양 젤리의 존재는 부조리, 아픔, 욕망의 흔적이자 영적인 존재로, 오염된 젤리는 인간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독을 가진 동식물이 아름답고 화려한 것처럼, 젤리는 유해할수록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색을 지닌다. 무엇이 무해하고 유해한지 모를 혼란의 시대 속에서, 히어로 안은영은 상처를 가진 연약한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언뜻 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수많은 안은영들의 외로운 분투가 있었으리라. 현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일지매 –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의적 히어로
조선 중기 인조 시대, 양반들의 권세와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맞서 싸우는 의적 일지매가 서민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향한 통쾌한 복수,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의 등장이 모든 백성들의 염원이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감성적인 로맨스와 폭발적인 액션을 함께 선사해 한국 액션 사극계의 걸작으로 불린다. 바람처럼 날아와 매화를 하나 남기고 가는 괴도의 활약을 보고 있자면 확실히 카타르시스가 전해진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며 개인적인 상처를 가졌다는 성장 배경과 정의롭지만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다크 히어로라는 특성은 배트맨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노비로서의 신분, 가난하고 힘없는 영웅, 권선징악을 품은 서사라는 점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더 돋보인다. 한 폭의 그림처럼 흩날리는 매화 또한 동양적인 매력을 극대화하는 요소였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당시 시청률 30%를 돌파했으니 여러모로 드라마로 만나는 한국 히어로물의 걸작이다. 현재 웨이브, 왓챠에서 서비스 중.
열혈사제 – 지금까지 이런 신부는 없었다 이것은 괴짜인가 영웅인가
악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분노조절장애 신부가 은사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코믹 수사극. 반군 테러단의 트라우마를 가진 신부가 부정부패한 권력의 카르텔을 일망타진한다는 점에서 영웅 서사를 따른다. 색다른 점이라면, 이 모든 활약이 성직자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사람 가려 받고, 혼낼 일은 혼내고, 속세의 정의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현대 종교가 가져야 할 새로운 정의관이라고 말한다. 인류애가 느껴지지 않는 괴짜 신부는 죄를 짓고 속죄함으로써 스스로를 용서하는 인간들을 혐오하며, 결국 악의 세력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단한다. 수도자에서 안티 히어로로 거듭나는 전개가 흥미롭다. 평범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조용한 악인들을 등장시키며, 우리가 일상의 작은 부패들에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 뜨거운 정의관을 가진 한국형 안티 히어로의 활약을 지켜보자. 현재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서비스 중.
무빙 – 믿보 작가 강풀 유니버스가 선사하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 강풀 작가가 13년에 걸쳐 내놓은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그가 직접 집필까지 한 드라마이다. 2022년 4분기에 공개될 예정으로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등의 출연이 확정됐으며, <킹덤 시즌 2>의 박인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5공화국 시절 안기부, 국정원 요원, 북한 군인과 공작원 등 부모 세대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조명하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질 듯하다. 부모 세대의 초능력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회복하는 재생 능력, 초인적인 오감, 비행 능력이며 자식들은 그 초능력을 물려받았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본작을 일종의 연대기라고 말한다. 세대를 오가며 유전으로 초능력을 공유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고 정겨운 한국형 히어로물의 탄생을 예고한다. 한국적인 정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웹툰의 영상화에서 좋은 행보와 성적을 보여주는 강풀 작가의 유니버스 확장을 기대해본다. 2022년 4분기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 예정.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