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 '체'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2008)는 확실히 보기 쉬운 작품이 아니다. 아직 혁명에 투신하기 전, 낡은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는 의대생 에르네스토의 젊은 날을 낭만적인 투로 그려낸 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 같은 영화를 상상하면 안 된다. <체>는 어느 한 구석 넉넉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장면 없이, 내내 긴장과 초조함, 예정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무거움이 드리워진 작품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연기한 베네치오 델 토로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고, 체의 혁명에 긴장한 미국과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우익정부는 숨 가쁘게 쿠바와 체를 견제한다. 1부와 2부를 합치면 4시간 30분에 달하는 이 대작을, 소더버그는 웃음기 하나 없이 정색하고 풀어낸다.

그나마 쿠바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아바나로 입성하는 대목에서 끝나는 1부는 좀 낫다. 체가 거둔 가장 큰 승리를 목격하며, 관객도 체와 함께 고양된 감정을 느끼게 되니까. 그러나 체가 계속해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겠다고 쿠바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2부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의 정서를 황폐하게 만든다. 체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며 고립된다. 외국인이 혁명을 주도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헤게모니를 빼앗길 것이라 생각한 볼리비아 공산당은 체와 무장 게릴라를 지원하지 않고, 체가 불편했던 각국의 정부와 미국 정보기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체를 궁지로 몬다. 약속된 지원은 끊기고, 사방에선 숨통을 조여드는 가운데, 체는 곁에 있는 동지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간다. 고질병인 천식과 풍토병인 이질에 시달리고, 동지들을 잃고, 그렇게 쫓기고 쫓기고 쫓기다가 볼리비아의 깊은 숲 속에서 예정된 죽음을 맞이하며 끝나는 2부는 그야말로 쓸쓸하기 짝이 없다.

체 게바라

체도 이런 결말이 올 거란 걸 알았을까? 적어도 소더버그는 그렇게 연출했다. 체가 마련한 위조 여권을 보고 감탄하다 말고, 체의 동지인 피델(데미안 비치르)은 말한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지 않나?” 노골적으로 반소련 노선을 드러냈다가 브레즈네프에게 찍혀 끝내 쿠바를 떠나야 했던 체가, 피델은 못내 못마땅하다. 그런 피델에게 체는 대꾸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50년은 더 기다려야 돼.” 체의 대답은 곱씹어볼수록 희한하다. 체는 피델에게 혁명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위험하지 않을 거라거나, 승산이 있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50년은 시도도 해보지 못할 거라서 가는 거라는 의미다. 혁명은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체는 그 하나를 보고 정치적으로 복권될 기회도, 쿠바 시민권도 모두 포기한다. 지금이 아니면 시도조차 못할 걸 알아서.

미얀마 군부가 표 제야 또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전 의원과 활동가 초 민 유 등 4명의 민주화운동가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5일, 나는 문득 <체>의 결말을 떠올렸다. 마치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만 같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표 제야 또 의원이나 초 민 유 활동가가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비록 미얀마가 사형을 집행한 건 대규모 민주화 투쟁 8888항쟁이 있었던 1988년 이후 최초라고 하지만, 군부가 권력을 찬탈한 이후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도 죽고 광장에서도 죽지 않았던가. 군부의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체가 그랬듯 미얀마의 민주투사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들었다. 지금 저항하지 않으면 저항할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릴 걸 알았을 테니까. 저항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을 때, 그 공간 하나만 보고 스스로를 던진 것이다. 전 세계가 세계의 식량 생산기지이자 러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놓인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느라 자국의 투쟁에는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아도, 서방이 무기를 지원하지 않고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관심이라는 자원을 지원하지 않아도, 자국 내 복잡한 민족 구성도와 정파 분포도 속에서 때로 연대하지 못하고 고립되어도, 민주정부라고 뽑힌 정부조차 로힝야족 대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냐는 쓰라린 비아냥으로 외면당해도.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이니까.

체 게바라

<체> 2부의 마지막은 모두가 아는 체 게바라의 최후다. 체는 몇 안 되는 게릴라 부하들과 함께 생포되는데, 사형제도는 없지만 체를 살려두기는 싫었던 볼리비아 정부는 체를 불법으로 처형하고는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려 한다. 그러나 선뜻 체 게바라를 처형하겠다고 자원하는 병사는 없다. 선임하사가 묻는다. “아무도 없나?” 뒤에서 한 병사가 총을 들고 쭈뼛쭈뼛 나온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임하사는 나지막이 말한다. “목 아래로 쏴라.” 부도덕한 일을 명 받은 병사는 잔뜩 긴장한 채로 감금되어 있던 체와 독대한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체는 서서 죽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긴장한 병사는 인상을 쓰며 말한다. “앉아!” 그러나 체는 단호하게 대꾸한다. “쏴. 해버려.”

총알은 날아가 체의 육체적 생명을 끊었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체는 영원히 살게 됐다. 그 누구도 체를 생포한 자의 이름이나 체를 처형한 자의 이름 따위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할 혁명에 끝까지 매달려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체는 볼리비아에서의 최후로 인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심볼이 된 것이다. 표 제야 또도, 초 민 유도, 그리고 군부에 의해 죽어간 그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군부가 그들을 죽일지 몰라도, 역사는 이 시간을 군부의 시간이 아니라 죽어간 이들의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며 혁명으로 뛰어 들어간 이들, 지상에서의 시간과 맞바꿔 영원이 된 이들.

“혁명은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한다.”

-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타 텟 텟. 전직 체조선수. 전 미스 미얀마. 군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에 뛰어들 것을 선언하며 체를 인용하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