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정도의 나라가 떠오른다. 국내 곳곳에서 이주노동자로 힘들게 일하는 이들도 언뜻 생각이 난다. 영화에서도 단역 배우들을 조금 본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게 남아시아의 다가 아니다! 한국방글라데시영화제가 주최, 주관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제2회 서울남아시아영화제>가 ‘컬러풀 남아시아’(Coloful South Asia)를 주제로 내걸고 남아시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는 KT&G 상상마당 홍대에서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 간 진행한다. 개막작이자 월드 프리미어 작품인 인도 영화 <분쟁>을 비롯해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네팔, 부탄에서 최근 제작한 17편의 장단편 영화를 선보인다.
1999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가 귀화한 이마붑 서울남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이번 영화제를 론칭한 주역이다. 여러 장단편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고, 연출 경력도 있는 그는 한국 영화와 인연이 깊다. 백진희 배우의 연인 역으로 공동 주연한 <반두비>(감독 신동일, 2009)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부문에서 관객평론가상과 CJ CGV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상을 수상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 서먹했던 기억이 있다.
<은밀한 유혹>(감독 윤재구, 2014)에서는 임수정, 유연석, 박철민, 진경, 이경영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이경영 배우에게 얻어맞는 씬을 찍고는 “족발 한번 먹자”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직 먹지 못했다. <로니를 찾아서>(감독 심상국, 2009)에서는 유준상 배우에게 연기를 배웠다.
<씨네플레이>는 감독 겸 배우 이마붑 서울남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인터뷰를 독점 공개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미지의 문화로 여겨지는 남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서울남아시아영화제가 2회를 맞았습니다. 잘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국내에 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이 20만 명 가까이 돼요. 이분들은 자국 영화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어요. 그나마 인도 영화는 가끔 상영되는데, 발리우드풍 영화들이거나 상업영화 중심이에요. 아시아권이라고 해도 일본 중국, 대만 영화 정도 수준에서 상영하지 남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죠.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고, 국내에서 남아시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을 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영화제입니다. 2019년에 1회를 열었고,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올해 2회를 개최하는 거죠.
남아시아라고 하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은 않아요.
남아시아 국가에는 인도를 포함해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등 8개 국가가 있어요. 예전에 방글라데시영화제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요. 예전에 방글라데시 영화제를 한 적이 있어요. 막상 해보니 이주민을 대상화하고, 일회성으로 그쳤어요. 재미도 없었고요. 이주민의 한 사람으로 아쉽더라고요. 물론 이주민을 대상화하는 사업이 나쁘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에요. 이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가 더 의미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다른 나라의 이주민들은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고 행사도 이주민 중심으로 많이 열려요. 방글라데시 설날 행사도 정말 의미 깊고 재미도 있거든요. 다양성을 좀 더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가 의미가 있다고 봐요. 처음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도 받았습니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가 ‘컬러풀 남아시아’(Colorful South Asia)입니다.
남아시아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식 등 여러 측면에서 굉장히 다채롭고 화려해요. 특히 문화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남아시아의 다양성을 좀 더 알리고 싶어서 이렇게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남아시아 영화를 좀 더 자수 소개하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최신작 17편을 상영합니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먼저 카불 걸스(감독 사예드 마수드 에슬라미, 아프가니스탄, 2020)을 추천드립니다. 함께 살고 있는 네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요. 코로나, 전쟁으로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다뤄 관심이 많이 가죠.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여성의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현실에 주목한 영화입니다.
<팔 밑에 나락>(감독 라비 므리다, 방글라데시, 2021)도 추천합니다. 데뷔작인데요. 방글라데시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을 한 가족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방글라데시는 에너지 소비국가가 아니면서도, 기온 상승으로 인해 수면이 높아지면서 국토 일부분이 물에 잠겨가는 상황입니다. 이슈를 보여준다고 진지하게만 하지는 않고요, 영화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봉했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교실 안의 야크>(감독 파우 초이닝 도르지, 부탄, 2019)도 있어요.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부탄은 사실 1년에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까 말까 한 나라에요. 그런 상황에서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풍경뿐 아니라 광활한 부탄의 자연 환경을 보면서 힐링할 수 있는 영화에요.
아참, 개막작을 빼놓을 수 없죠. 월드 프리미어 섹션에 출품한 <분쟁>(감독 사날 구마르 사시다란, 인도, 2022)입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미스터리한 작품인데요, 우주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분쟁들을 코믹하게 보여줘요.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고 오히려 리얼리즘에 가깝기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궁금하시다면 꼭 예매하세요!(웃음)
단편 중에는 <모기장>(감독 누하시 후마윤, 방글라데시, 2022)을 추천합니다. 파멸된 세상 속에서 밤만 되면 모기장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매 이야기에요. 우리가 지금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바이러스 걱정하면서 살잖아요. 팬데믹 시대를 풍자하는 영화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욕망의 잔해>(감독 인드라닐 러이조워도리, 방글라데시, 2020)도 보시면 좋겠습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합작 영화인데요. 인도 캘커타에서 사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오토바이를 훔치는 사람도 있고, 가사도우미 이야기도 있고요. 힘들게 경쟁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밀착해서 보여줘요. 우리가 흔히 아는 발리우드 영화보다는 삶을 좀 더 조명해서 보여주는 영화고,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좋아요.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이 유지되는 예술영화라고 할까요? 이번 영화제에서 유일하게 두 번 상영합니다.
감독님도 단편을 출품하셨더라고요.
네.(웃음) <코로나 시대의 이주민들>이란 영화에요.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코로나19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평등하게 다가왔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평등하지 안핬죠. 그 안에서 국가의 지원 손길에서조차 투명인간이 됐던 이주민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관객들이 어떤 점에 주목해서 영화를 감상하면 좋을지 힌트 부탁드립니다.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 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한국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은 좋은 영화를 더 만들어서 세계로 수출하기만 하면 된다는 접근은 좀 잘못된 생각 같아요. 이런 다양한 영화들을 볼 기회가 많아져야죠. 남아시아에서 제작한 영화도 상업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야 한 단계 성숙한 한국 영화계가 되지 않을까요? 누구나 다 블록버스터, 마블 영화를 좋아하지만, 다양성 영화와 같이 국경 없이 또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극장에서 접하는 거죠.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영화계도 덩달아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이번 영화제에서 그런 부분들을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영화제를 통해 한국인이 남아시아 국가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국내에서 이주민에 대해서는 아직 편견이 많아요. 무겁게 이야기하면 인종차별 문제가 되겠죠. 출신 국가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요. 방글라데시 출신 지인 중에 대학에서 연구원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원인데 한국 영주권을 받기가 힘들어서 결국 돌아갔어요. 유럽은 3~4년이면 영주권을 발급해주는데, 한국은 10년을 일해도 어렵다더군요. 저 역시 8개국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지구인 뮤직 밴드’를 결성한 적이 있는데요, 결국 비자 문제로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흐지부지하게 됐어요.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트랜짓>이나 제가 연출한 <코로나 시대의 이주민들>에서 이런 어려움들을 다뤘어요. 영주권, 비자 문제가 왜이렇게 까다로울까 등을 포함해 이런 인식들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건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요?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아직까지는 예산도, 사람도 부족해요.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제를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정말 작품성 있는 좋은 영화들을 골랐다고 자부하거든요. 남아시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또 할인도 많이 되니까 꼭 많이 오세요!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