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을 물리쳐준 고마운 장마가 끝나고 반갑지 않은 폭염이 몰려왔다. 매일 30도를 웃도는 더위에도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여름 휴가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날 때의 홀가분한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다시 악화되는 코시국에 여행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줄 OTT로 볼만한 영화를 모아봤다. 로케이션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부터 답답한 현실을 뒤로하고 떠나버리는 후련함이 있는 작품까지, 올 여름 이 영화를 테마로 휴가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련한 첫 사랑의 블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하 콜바넴)은 올리버가 주인공인 엘리오의 별장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둘은 나이와 성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 호수에서 수영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둘의 모습은 어떤 커플보다도 아름답다.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줘’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주인공 커플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며 감정을 쌓아간다. 얼마나 사랑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노래 가사 중 ‘넌 나고 난 너야’처럼 연인으로서 서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 과연 영원할 수 있을지 의문도 함께 건넨다. 이탈리아 크레마를 배경으로 촬영한 자연과 어우러진 별장과 주위 경관은 푸른빛을 띤다. 그래서 영화를 관람하면 마치 이탈리아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전한다. 특히 티모시 살라메의 마지막 장면 연기가 작품의 미장센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여행이 끝난 뒤 느껴지는 묘한 쓸쓸함 같이 다가와 작품의 진한 여운을 더한다. (넷플릭스, 왓챠)
<해피투게더>
웅장한 이과수 폭포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리마스터링을 통해 지금도 영화관에서 상영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특히 칸 영화제의 감독상에 빛나는 1997년작 <해피투게더>는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봐도 재미있고 아름답다. 영화는 이과수 폭포를 보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 보영과 아휘의 이야기를 그린다. 둘은 여행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해피투게더>는 만남의 설렘이나 달콤한 연애의 순간이 아닌 위태위태한 사랑의 끝을 조명한다. 그런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이국적인 배경이 영화의 풍미를 더한다. 스텝들의 로케이션 서치가 돋보이는 공동 주방을 이용해야 하는 방과 탱고 바는 연출에 힘을 보탠다. 이 작품을 테마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바 수르는 성지가 되기도 했다.특히 이과수 폭포는 원래도 관광지로 유명했지만, <해피투게더>를 보고 그곳을 관람한다면 장국영과 양조위가 마치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티빙)
<머더 미스터리>
신혼여행 가서 살인사건에 연루된 커플이 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발길이 닿는 대로 떠나는 즉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머더 미스터리>는 계획에서 출발해 즉흥으로 끝나는 여행의 오묘한 맛을 건네는 작품이다. 결혼 15년 만에 꿈에 그리던 유럽여행을 떠난 닉과 오드리는 비행기에서 찰스 캐번디시라는 억만장자를 만나 뜻하지 않은 요트 여행을 하게 된다. 찰스의 연인을 뺏은 억만장자 삼촌은 유언장 발표를 하던 중 사망한다. 이에 추리소설 매니아인 오드리와 매번 형사 시험에 낙방하는 닉이 연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기 위해, 이번에는 신혼 여행이 아닌 추리 여행을 떠난다. 작품은 전형적인 수사물의 방식을 따르지만 제니퍼 애니스톤과 아담 샌들러의 코믹 연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행은 계획에서 벗어났지만 일생일대의 에피소드를 획득한 부부는 추리물의 대명사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며 다음 이야기를 예고한다. (넷플릭스)
<리틀 포레스트>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한 달 살기, 귀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은 요즘, 코로나와 번아웃에 심신이 지친 직장인들에게 <리틀 포레스트>를 강력 추천한다. 영화는 남자친구와 함께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혜원이 본인만 불합격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혜원은 여기서 자급자족 식사를 준비하는데, 사계절을 지내며 직접 지은 농작물로 선보이는 다채로운 먹방은 보는 이들의 침샘을 자극한다. 혜원은 그렇게 일상을 보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바쁜 도시 생활에서 놓쳤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씩 깨닫는다. 마치 오늘도 힘겹게 출근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의 사계절을 담기 위해 경북 근위군과 의성군에서 1년 동안 촬영을 진행했다.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농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이번 휴가는 번잡한 유명 관광지 보다 조용한 시골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건 어떨까? (티빙,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러브 앤 젤라토>
여행을 통한 인생의 전환점. 사랑 그리고 자아 찾기!
<러브 앤 젤라토>는 배낭여행의 로망을 듬뿍 담아주는 작품이다. 리나는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모험을 떠나며 로맨스도 일어난다. 그 끝에서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며 리나는 한층 더 성숙한 어른으로 다음 미래를 향해간다. 주인공의 이탈리아 여행을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로마와 피렌체의 아름다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리나가 이탈리아의 작은 골목을 누비는 장면은 현지 분위기가 여기까지 전달될 정도로 생생하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렘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리나가 이탈리아에서 누군가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로맨스도 이루는 모습을 보며, 달달한 감정과 함께 하루 빨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할 듯하다. (넷플릭스)
<비포 선라이즈>
비엔나에서의 단 하루, 꿈같은 운명의 로맨스!
여행, 휴가를 소재로 한 영화에 <비포 선라이즈>를 빼놓을 수 있을까? 영화는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가 기차에서 우연히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비엔나에서 함께 내려 그림 같은 도시를 여행하며 꿈같은 대화를 이어 나간다. 아침이 되면 헤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두사람은 밤새 비엔나의 거리에서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 결국 태양이 떠오르고 둘은 6개월 뒤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이 때 느껴지는 짠한 여운은 밤잠을 설칠 정도다. 26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촬영지 비엔나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명한 여행명소다. 이 작품을 좋아했던 이가 비엔나로 떠났다면, 극중 주요장면인 LP가게, 녹색다리, 오페라하우스, 프라터 놀이공원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관람해야 할 가이드 북이 아닐까?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