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죽을 뻔한 사고를 계기로 영웅의 길로 뛰어든 히어로들이 제법 많다. 남다른 인생,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슈퍼히어로 서사가 완성되는 것일까? 평범한 삶을 살다가 히어로가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편으로, 대체로 무언가 극적인 일들을 경험하는 것 같다. 가족 간의 갈등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로빈인 데미안 웨인은 세계 최고의 암살단을 이끄는 라스 알 굴의 외손자이자 탈리아 알 굴의 아들이다. 원래대로라면 가업을 이어 빌런이 될 예정이었지만, 아버지인 배트맨의 영향을 받아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친가와 외가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로빈처럼 범죄자를 부모로 두었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찾아 히어로가 된 케이스를 들여다본다.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거에요! 내 인생은 내 것입니다! 절 말리지 마세요!”를 외친 자식들의 패기를[?] 살펴보자!
마블
퀘이크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데이지 존슨은 쉴드의 국장 닉 퓨리의 총애를 받은 요원이다. 진동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인해 퀘이크라는 이름을 얻은 데이지는 퓨리의 비밀작전마다 투입되며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고, 덕분에 최고의 요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쉴드의 국장이 되고 어벤저스에도 합류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노련함의 부족으로 인해 국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런 데이지의 아빠는 괴력의 거한으로 변신하는 슈퍼빌런 미스터 하이드이며, 엄마는 인휴먼 혈통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이드라가 미국을 정복했을 때 미스터 하이드가 인휴먼들을 가두는 임무를 맡으면서, 인휴먼인 데이지는 아빠와 격돌했다. 하이드는 가족끼리 힘을 합치자고 설득하려 했으나 데이지는 단칼에 거절했다.
스탈링
스파이더맨의 단골 악당인 벌처는 아들이 아내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가자 미안함에 그들을 챙겨왔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돈을 훔쳤으며, 어린 티아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자랐다. 어느 날, 벌처가 티아나에게 자신의 것과 같은 날개 슈트를 만들어 주었고, 이를 입고 스탈링이란 이름의 모험가가 된 티아나는 마일즈 모랄레스와 피터 파커, 두 스파이더맨을 차례로 만난 뒤에야 할아버지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선한 마음씨를 가진 티아나는 할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마일즈의 팀인 챔피언스에 합류했다.
밤셸
지구-1610의 로리는 실험대상이 되어 손에서 폭발을 일으키거나 충격파를 발사하는 능력을 얻고 슈퍼빌런 밤셸이 되었다. 덕분에 로리의 딸 라나도 선천적으로 같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 엄마와 함께 강도질을 벌이다가 스파이더맨에게 붙잡혔다. 그럼에도 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가 이번엔 스파이더 우먼에게 잡혀버렸다. 어린 라나는 소년원에 보내졌지만,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참작되어 뮤턴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즈 모랄레스와 친구가 된 라나는 마일즈의 주변 인물들과 함께 지구-616으로 옮겨왔다. 감옥에 있던 엄마는 풀려났지만 범죄를 포기하지 못했고, 마일즈의 삼촌이 이끄는 시니스터 식스에 합류했다. 뿐만 아니라, 쉴드의 장비를 훔치기 위해 라나에게 돕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마일즈와 그의 팀 챔피언스가 시니스터 식스를 상대할 때, 라나는 엄마를 배신하고 히어로들 편에 섰다. 그 이후로 라나는 챔피언스의 멤버가 되어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다.
DC
아쿠아래드
엄마랑 둘이 사는 잭슨 하이드라는 소년은 어째서인지 어려서부터 물을 조종할 수 있었다. 킹 샤크의 공격으로부터 틴 타이탄스를 구한 잭슨은 그 팀에 들어가고 나서야 엄마가 아틀란티스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쿠아맨의 적수인 블랙 만타가 갑자기 나타나 엄마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잭슨의 아빠였다. 흉포하고 욕심이 많은 아빠와 달리 심성이 고운 잭슨은 틴 타이탄스와 함께 블랙 만타를 쓰러뜨렸다. 원래 아쿠아래드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이 아쿠아맨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아쿠아맨은 아쿠아맨의 이름을 공동으로 쓰자고 해주었다.
레이븐
레이븐의 부모는 다른 범죄자들과 그냥 수준이 다르다. 일반 빌런도 아니고 악마의 자식인 것이다. 많은 세계를 파괴해 온 악마 트라이곤은 지구 정복을 위해 반인반마인 외동딸을 훈련시켜가며 키웠다. 마법 잠재력이 뛰어난 레이븐은 아빠의 뜻대로 지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청소년 히어로 팀인 틴 타이탄스에 들어갔다. 겉으로는 트라이곤에게 대항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모두를 속이기 위해서였지만, 점차 동료들에게 감화되어 진정한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DC 타이탄> 시리즈에서는 1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의 도움을 받아 악을 극복하는 것으로 나왔다.
배트걸스
고담 시에서 활동한 빌런 클루마스터의 딸 스테파니는 아빠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부터 쫓겨 다녀야 했다. 믿었던 엄마도 아빠와 같은 편임이 드러나자, ‘스포일러’라는 자경단원이 되어 독자적으로 아빠에게 대항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배트맨과 손을 잡게 되었다. 후에 새로 배트맨 패밀리의 일원이 된 카산드라도 데이비드 케인과 레이디 시바라는 최강의 암살자들 사이에서 태어나 아기 시절부터 암살자 과정을 밟아왔다. 배트맨은 카산드라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었고, 카산드라와 스테파니는 원조 배트걸인 바바라 고든의 지휘에 따라 두 명의 배트걸로서 활동한다.
슈퍼걸
DC에서는 주요 캐릭터들 중에 나쁜 부모와 선한 자녀 구도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슈퍼걸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딸을 로켓에 태워 지구에 보낸 뒤 부모는 행성과 함께 사라졌어야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이야기가 몇 차례 바뀌면서 어찌어찌 살아남은 것으로 되었다. 지능적 빌런인 브레이니악에 의해 개조되어 사이보그 슈퍼맨이 된 아빠는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슈퍼걸의 몸을 재구성해 자신의 새로운 육체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지구인을 희생시켜 고향을 되살린 다음 딸과 함께 살려고 했고, 슈퍼걸은 당연히 아빠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겼지만, ‘사이보그 슈퍼맨의 딸’이라는 꼬리표는 슈퍼걸의 명성을 크게 훼손시켰고, 지구인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받기 위해 많은 고생과 노력을 해야 했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