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마지막 코뿔소> <비룽가> <씨스피라시>

픽션은 팩트보다 무섭지 않다

연출한 공포가 현실 공포를 넘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가공하지 않은 이미지를 영화로 끌어당겨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실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같은 주제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든 극영화도 있다. 둘은 어떤 의미에서 초현실주의로 평가받겠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에서 선명한 차이가 있다. 꾸밈없이 실증하는 이미지가 가지는 힘은 강력하다. 극영화는 아무리 잘 꾸며도 ‘연출’이다. 인류가 다같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며 위기를 이미지로 실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나서 ‘그래봐야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두고 관련 사람들의 호들갑이라는 주장도 있다. 적자생존이 자연의 법칙이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약육강식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에 따라 동물이 멸종하는 것 역시 대자연 순환의 일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것 같지만 인간 지성을 그렇게까지 신뢰해주는 근거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사고들은 인류에서도 엘리트라 부르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이 치명적 원인이었다. 원자력 사고, 기름 유출 사고, 그리고 전쟁까지도.

촬영 기술과 영화 문법이 발전하면서 환경 문제를 전보다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OTT 플랫폼에서 제공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코뿔소 The Last Male on Earth>(폴로르 판 더르 묄렌, 2019) <비룽가 Virunga>(올란도 폰 아인지델, 2014) <씨스피라시 Seaspiracy>(알리 타브리지, 2021)는 안일한 도덕률에 기대어 이야기하는 지구 온난화나 자원 낭비 문제 수준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설마 싶은 멸종이 실제 상황으로 진행중이고 인류 역시 그 먹이 사슬 안에 있다고 강조한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OTT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영화라서 가능한 리셋, <마지막 코뿔소>

이미지: Cinema Delicatessen

<마지막 코뿔소>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하다. 주인공 코뿔소 ‘수단’과 처지를 바꿔보는 역지사지다. 지구에 당신 혼자 남았는데, 당신보다 우수한 지능을 가진 다른 동물들이, 갇혀 있는 당신을 매일같이 보러 오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당신 가족과 친구들을 죽인 것도 다름아닌 그 동물들이다.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할까. 또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수단의 친구들은 총에 맞은 채 초원 한복판에서 발견됐다. 총에 맞은 코뿔소들은 하나같이 뿔이 잘려 나갔다. 묘비엔 그가 총에 맞아 죽었으며 뿔이 잘려 나간 채 발견됐다는 건조한 사실들이 기록됐다. 그 무렵 아시아 지역에서 코뿔소 뿔 수요가 급증했다. ‘인간 몸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바퀴벌레도 멸종할 것’이라더니 농담 아닌 모양이다. 영화는 유쾌하고 따뜻한 톤을 유지하지만,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다. 멸종 위기 동물의 마지막 1000일을 보여주는 영화 결말이 어떨지는 자명하다.

영화는 총에 맞아 생명을 잃은 코뿔소 묘비들을 보여주고 영화의 마지막을 오프닝 씬과 연결하는 수미상관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제부터라도 잘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연출 의도가 읽힌다. 그렇게라도 희망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감독 심정을 이해하지만 편집이 가능한 영화라서 가능한 리셋(reset)이다. 자연은 편집이 안 된다. 그렇게 손쉽게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왓챠)

고릴라가 ‘다이아 똥’ 싸지 않는 땅 <비룽가>

이미지: 넷플릭스

<마지막 코뿔소>와 마찬가지로 <비룽가> 역시 동물을 보호하려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살해된 동물을 묻은 무덤 비석을 영화적 장치로 사용한다. 영화는 자원 쟁탈전에 희생당한 대륙 아프리카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산악 고릴라의 마지막 터전이기도 한 콩고민주공화국 비룽가 국립공원은 석유 매장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원 쟁탈 전선이 된다. 영국 회사 SOCO가 석유 채굴권을 내세워 비룽가로 총부리를 겨눈다. 우린 잘 알지 못하지만 아직 아프리카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자행하는 자원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기자 멜라니는 SOCO가 협력하고 있는 반군세력 M23을 취재한다. 말이 반군이지, 영화만 보면 그저 정권을 빼앗아 각종 이권을 챙기려는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 그들은 멜라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릴라가 다이아몬드나 쇠똥을 싸지 않는 이상,

고릴라잖아. 누가 고릴라한테 신경을 써?”

비룽가 국립공원을 지키고 선 이들이 ‘고릴라’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 한다는 의심이다.그들의 의심은 틀렸다. 세상에는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있는 반면, 자연 보호만을 목적으로 총을 들게 된 집단도 있다. 기지 병력과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비룽가 야생 고릴라가 소위 ‘다이아 똥’을 사지 않더라도 고릴라들을 위해 죽겠다는 의지와 연대를 보여준다.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반군에 맞서 저항하다 감금돼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비룽가 국립공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끝나는 이 다큐는 물론 생태 다큐멘터리이고, 일종의 캠페인으로 참여 다큐멘터리 성격도 짙지만 내전 한복판에서 인간이 자행하는 자연 훼손을 탐사보도하는 성격도 짙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이 영화에 녹아 있다. (넷플릭스)

<씨스피라시>, 돈으로 연결된 어망

이미지: 넷플릭스

<씨스피라시>는 공개 당시 불거졌던 인터뷰 편집 논란과는 별개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다. 편집이 아무리 속이려 해도 카메라가 촬영에 성공한 화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씨스피라시>죽어나가는 돌고래와 카메라를 가로 막은 자칭 ‘어업인’들은 어떻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영화에 따르면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 46%를 차지하는 쓰레기는 어업에서 사용하는 어망이다. 사실 망망대해에서 쌍끌이를 하든 어업용 어망을 버리든 제대로 된 감시가 되기 어렵다. 믿기 어렵지만 이를 감시하는 옵저버들이 위협을 느끼거나 실제로 목숨을 잃게 되는 사례도 있다. 정말 그렇다면, 왜 정부나 세계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그게 포인트다. 감독 말이 그 말이다. “돈이 문제다. 돈으로 다 연결돼 있다.” 영화는 환경 단체가 대형 수산업체와 손잡고 친환경 인증 마크를 판매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물고기를 잡든 이 마크만 붙으면 소비자들은 쉽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고 생선을 소비한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이 이제 제법 시민 사회에도 뿌리내리고 있는 중이다. 고래가 죽기 떄문에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자는 말이 아니다. 고래가 죽으면 사람도 같이 죽는다. 고래는 인류가 사용하는 산소 대부분을 생산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생물이다. 그래서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해왔는데, 일본이 이 협정을 깨고 나간 뒤 그야말로 학살을 자행한다. 지구상에 남은 고래가 이미 많지 않다.

고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씨스피라시>는 상어로, 참다랑어로 한 번씩 주제를 옮긴 뒤 일반 어종의 상업 어업 문제로까지 담론을 확대한다. 쌍끌이 어업을 비판하는 시퀀스에서는 생선을 안 먹거나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씨스피라시>가 내세우는 주장은 한편 급진적이지만, 반드시 논의가 필요해보이기도 한다. (넷플릭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영화 칼럼니스트 신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