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노애락을 담은 모든 감정을 대사 하나로 표현하는 명연기자(!) 그루트가 그리웠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감독 제임스 건)가 개봉하는 2023년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면? 8월 10일 디즈니+에서 공개한 <나는 그루트다>(감독 커스틴 레포레) 단독 단편 시리즈를 주목해보면 어떨까? ‘귀염뽀짝’ 그루트의 어린 시절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찌는 듯한 무더위와 쏟아지는 폭우로 쌓인 불쾌 지수를 날려버릴 테니까!
“나는 그루트다(I am Groot).”라는 단 하나의 대사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그루트의 단독 시리즈는 총 5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한 편당 5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이동 중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OTT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 타임라인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서 오리지널 그루트가 자신을 희생한 뒤 베이비 그루트가 탄생한 직후로 설정됐다.
5분이라는 짧디짧은 러닝타임 때문이었을까? 제작진은 1편 ‘그루트의 첫 발자국’에서 MCU의 상징과도 같은 오프닝 시퀀스마저 그루트의 ‘빨리감기’ 버튼으로 스킵해버리며 웃음을 유발한다. 화분 속에 있던 베이비 그루트가 드디어 화분을 깨트리고 첫걸음마를 떼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주는데, 그 와중에 작은 팔을 휘두르며 온몸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깜찍함의 절정이다!
2편 ‘작고 소중한 분’에서는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을 깨고 나온’ 베이비 그루트가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며 맞닥뜨리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자고로 독립이란 어려운 법! 어느 황량한 행성에서 5분 만에 뚝딱(!) 집을 완성한 베이비 그루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은 거대해 보이기만 한 새. 자기 집을 차지한 새에게 베이비 그루트는 무려 32분간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 그 자리에서 똑같은 포즈로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커 보이는 새에게 분노했던 베이비 그루트도 누군가에게는 거인인데, 바로 그룬즈들이다. 역지사지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베리비 그루트. 이 꼬마 악동은 강자의 여유를 만끽하다가 그만 그룬즈들의 보금자리를 밟아 파괴해버리는데, 다행히도 그룬즈들은 무사하다! 이번 에피소드에 대해 커스틴 레포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개미집을 발견했을 때의 경험을 녹였다고 밝혔다.
어둠 속에서 어디선가 들리는 수상한 소리! 3편 ‘그루트의 수사’에서는 우주선에서 한밤의 고요를 깨는 소리를 찾아 수사에 나서는 베이비 그루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변기 뚜껑을 들추며 “나는 그루트다!”를 외치는 베이비 그루트는 액체 형상의 또 다른 그루트를 만나게 되는데, 둘 중 과연 누가 진짜 베이비 그루트일까? 진검승부는 다름 아닌 댄스 배틀이다! 잠깐이지만 외계 생명체와 공생할지도 모른다는 관객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트리는 건, 다름 아닌 베이비 그루트의 잔머리! 여러 번 되풀이 되는 “나는 그루트다”라는 대사가 가장 어울리는 에피소드.
4편 ‘그루트의 샤워타임’은 단연코 나무의 특성을 가진 그루트 본연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베이비 그루트는 진흙 목욕을 하면 풍성하고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들이 돋아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데, 마치 헤어스타일에 민감한 청소년처럼 베이비 그루트는 돋아난 나뭇잎으로 여러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마스크를 쓴 깜찍한 모습도, 잎사귀 드레스를 잎고 "나는 그루트다"라고 수줍게 말하는 모습도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 마법의 진흙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잎사귀가 돋아나는 속도만큼 빠르게 시든다는 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깃털을 뽐내는 새가 실망하는 베이비 그루트를 비웃는다. 자, 이렇게 그루트의 샤워타임은 비극으로 끝날까? 그럴리가! 해결책을 찾아낸 베이비그루트가 휘파람을 불며 의기양양하게 우주선으로 복귀하는 모습에서 한번 더 '악동'의 진면목을 확인하시길!
베이비 그루트의 귀여운 모습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면? 5편 ‘그루트의 마스터피스’에서 MCU와의 연결점을 찾아낼 수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베이비 그루트를 아버지처럼 보살피는 로켓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서 희생했던 모습을 베이비 그루트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이쯤해서 생기는 관객들의 궁금증. 베이비 그루트는 오리지널 그루트와 동일한 캐릭터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제임스 건 감독은 “베이비 그루트가 오리지널 그루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오리지널 그루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즉, 오리지널 그루트와 베이비 그루트는 일종의 부자 관계인 셈.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동일하게 배우 빈 디젤이 그루트를, 브래들리 쿠퍼가 로켓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다. 또한 실루엣이긴 하지만 샤워하는 드랙스의 모습도 잠깐 등장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또 다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출연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은 오는 12월 공개 예정이다.
<나는 그루트다>를 본 관객 중 일부는 이번 시리즈가 특별히 MCU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지 않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디즈니가 베이비 그루트가 청소년기에 겪는 질풍노도 시기의 에피소드 나열로 장사한다는 지적도 할 법하다. 그래서 뭐? 상관없다. 시리즈를 본 관객의 입가에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루트는 귀엽기만 하면 된다!
윤상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