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말복'도 지나 더위도 한풀 꺾인 듯하다. 여름방학과 여름휴가가 끝나가는 지금, 온 가족이 함께 안방에서 애니메이션 대작을 감상하며 이 계절을 마무리 하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디즈니+와 애플tv+ 독점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작품이자,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기 좋은 <메이의 새빨간 비밀>과 <럭>을 추천한다. 둘 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따끈따끈한 신작이자, 공개 전부터 영화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뚜껑을 연 두 작품의 이야기와 관전포인트를 리뷰를 통해 만나보자.

헐크가 아니어도 화나면 변신(?)하는 사춘기 소녀

<메이의 새빨간 비밀>

올해 초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2002년 캐나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주인공 ‘메이’가 가문의 비밀을 몸소 체험하며 벌어지는 사춘기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픽사의 신작이다.

중국계 캐나다인 ‘메이'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고 집에서는 가족이 운영하는 중국 사원을 관리하는 일을 돕기도 하는 등 착한 효녀다. 그런 메이는 어느 날 아침 레서판다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데, 알고 보니 이게 집안 내력이라고. 래서판다 변신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흥분하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그것으로 변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면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인 메이 앞에 이 같은 시력이 오다니, 인생 참 불공평하다. 더군다나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4타운’의 콘서트가 바로 코앞인데, 과연 메이는 이런 비밀을 감추고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을 래서팬다 변신으로 보여주는 유쾌함과 따뜻함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사실 아이들보다 오히려 지금 부모 세대에게 더 걸맞은 이야기인 듯하다. 작중 배경이 2002년 이기에 지금쯤 누군가의 부모들이 될 이들이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식들에게 내가 겪었던 고민과 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화는 중국계 이민가족을 통해 ‘가족’ ‘효’와 같은 동양적인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이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과 화합을 섬세한 터치로 따뜻하게 풀어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흥분하면 래서판다로 변하는 메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관련 굿즈를 당장 사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주인공 메이의 친구로 등장하는 ‘애비'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설정해, 흥분하면 한국어가 튀어 나오는 등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이 영화의 감독인 ‘도미 시’는 친구관계가 제일 중요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춘기 시절과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 소녀의 일상을 통해 세대 간의 이해와 화합을 그리고자 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와 정체성 고민 등 두렵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래서 판다의 변신으로 표현하여 극적 재미와 상징적인 의미 모두를 훌륭하게 잡아낸다. 감독을 비롯한 주요 제작팀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것도 눈에 띈다. 이 덕분에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더욱 디테일하게 표현했으며, 엄마와 딸의 갈등과 화합 등 작품의 핵심 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메이와 새빨간 비밀>에 등장하는 극중 보이밴드 ‘4타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인기 밴드인 ‘엔싱크'와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 속에, 이들이 부르는 3곡의 노래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이 작곡했다. 그룹 멤버의 특색 있는 묘사도 극의 재미를 더한다. 전체적으로 <메이와 새빨간 비밀>은 화가 나면 래서판다로 변하는 독특한 설정 속에 사춘기 소녀의 성장을 공감가게 그려낸다. 이 과정 속에 뭉클하게 다가오는 가족의 가치는 여름 방학을 맞아 자식과 부모가 함께 보기 딱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불운과 행운을 대하는 삶의 자세

<럭>

애플 TV+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럭>이 지난 8월 5일에 공개되었다. 앞서 소개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럭>은 성인이 된 소녀 ‘샘 그린필드'의 삶을 행운과 불운을 비추어 흥미롭게 진행한다.

일상이 불운의 연속인 주인공 샘은 18세가 되어 보육시설에서 독립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만난 동생 헤이즐에게 행운을 안겨주고 싶어하는데, 그러던 중 길에서 만난 말하는 고양이 ‘밥'이 흘린 행운의 동전을 따라 ‘운의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샘'과 ‘밥'이 함께 운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흥미롭게 그린다.

애플tv+판 <인사이드 아웃>? 불운을 통해 깨닫는 인생의 행복

<럭>은 행운과 불운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염연히 존재하는 가치를 독특한 설정과 시각화로 이야기에 밀착시킨다. 행운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귀여운 캐릭터, 보기만해도 황홀한 배경 묘사 등 <럭>이 주는 행운의 재미를 차근차근 담아낸다.

이 같은 모습은 여러모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 내면 속 감정이라면, <럭>은 인생을 좌우하는 ‘운’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만 빼면, 두 작품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가치, 이를테면 <인사이드 아웃>은 슬픔, <럭>은 불운의 의미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내어 놀라운 깨달음 속에 따뜻한 감동을 함께 건넨다.

<럭>은 <토이 스토리>, <카>, <몬스터 주식회사> 등 픽사의 걸작들을 내놓은 존 라세터가 ‘스카이댄스'의 제작자로 자리를 옮기고 내놓은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상대적으로 가족과 키즈 콘텐츠가 부족한 애플 TV 라인업에 큰 힘을 보탰다. 스카이댄스는 <럭> 이후에도 애플tv+에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감은 커져간다.

스카이댄스의 나쁘지 않은 출발 <럭>은 일정 이상의 재미를 건네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흥미로운 설정과 거대한 세계관에 비해 비주얼적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길 이벤트나 연출이 적어 보인다. 여기에 극 후반부 운과 불운에 대한 메시지가 어른들이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성급하게 다가온다.

바꿔 말하면 이런 아쉬운 점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같이 시청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영화에 관해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성인 취향의 비중이 너무 높은 OTT 오리지널에 이들 작품처럼 온 가족이 보기 좋은 작품의 등장은 그 자체로 반가울 따름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