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시리즈의 체코프 역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배우 안톤 옐친이 지난 6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경사진 도로에 세워놓은 옐친의 차가 급 후진하면서 벌어진 사고였다. 올해로 27세. 지난 16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 해 커리어를 쌓았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재능을 더 크게 인정받고 배우였기에 세상 수많은 영화인들과 팬들이 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안톤 옐친의 유작 <스타트렉 비욘드> 개봉을 기해, 아이부터 청년까지 자신의 성장을 쉬지 않고 스크린에 새겨온 안톤 옐친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그를 추모한다.
안톤 옐친은 1989년 러시아의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대계였던 그의 가족은 소련 내 유대인을 향한 탄압을 피해,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던 옐친은 2000년 9살의 나이에 드라마 시리즈 <ER>의 단역을 맡으며 데뷔했다. 그리고 불과 1년 후 영화 <하트 인 아틀란티스>(2001)의 부모의 보살핌 대신 이웃 할아버지와의 우정으로 통해 성장하는 바비 역을 맡아,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열연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더불어 41살의 정신지체자 파파스의 단짝 친구 톰을 연기한 <하우스 오브 디>(2004)로 로빈 윌리엄스와의 호흡을 보여줬다. 나이든 친구와의 우정과 또래 여자친구와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춘기소년 톰과 함께, 옐친은 아역배우의 틀을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었다.
에밀 허쉬, 저스틴 팀버레이크, 벤 포스터 등 스타 배우들과 작업한 <알파독>(2006)을 거쳐 앳된 얼굴을 점차 지워가던 안톤 옐친은 첫 단독 주연작 <찰리 바틀렛>(2007)으로 할리우드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한다. 명문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찰리가 자유분방한 공립고등학교로 전학해 킹카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 <찰리 바틀렛>은 잘 만든 청춘영화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자신을 다듬으려고 드는 어른들의 통제에도 전혀 휘둘리지 않는 찰리의 재기발랄함은, 당시까지만 해도 나약하거나 속 깊은 소년을 연기해온 옐친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만나 번듯한 모습을 얻었다.
2009년 5월은 옐친에게 더없이 특별한 순간이었다. 주로 소박한 규모의 작품들에 참여하던 그는 한 달 사이 블록버스터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이하 <더 비기닝>)과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선보였다. 흥미롭게도 각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서로 상극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미지가 달랐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는 존 코너의 아버지 카일 리스로 분해 남성적인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면, <더 비기닝>의 파벨 체코브는 첫 등장부터 강한 러시아 억양 때문에 번번이 음성인식에 실패하는 어설픈 항해사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귀여운 외모 때문일까, 곱슬머리의 파벨 체코브는 현재까지도 옐친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남았다. 재미와 흥행 면에서 전편의 성과를 뛰어넘은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까지, 그는 크리스 파인, 재커리 퀸토, 조 샐다나, 사이먼 페그, 존 조 등에 가려지지 않는 시리즈의 주역으로 언급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옐친은 작품과 역할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매해 다섯 작품 이상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와 <러덜리스>(2014)에서 그는 음악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뱀파이어인 아담(톰 히들스턴)에게 온갖 종류의 빈티지 기타를 가져다주는 이안과 과거의 상처를 숨긴 채 은신한 남자 샘(빌리 크루덥)에게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쿠엔틴 모두 주인공을 떠받치는 역할이다. <찰리 바틀렛>에서 꽤나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여준 그는 음악영화를 전면에 내세운 <러덜리스>에서도 직접 노래를 맡아 여러 방면에 걸친 재능을 뽐냈다. 실제로 그는 해머헤즈라는 밴드의 일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안톤 옐친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달이 지났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가 남아 있다는 것. <스타트렉: 비욘드> 이후, <위 돈 빌롱 히어>(2016), <포르토>(2016), <서러브레드>(2017) 3편이 남았다. 작품들이 공개될 때마다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 영화들을 기다리며 이 황망한 마음을 달래볼 수밖에.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